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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May 30. 2023

러시아는 전쟁 중

한국행 비행기가 사라졌다고?

전쟁 이후에 뉴스에서는 러시아를 향한 세계 각국의 여러 제재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 가치는 곤두박질치며 빠르게 하락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빵과 물을 사재기하는 사람들로 마트 곳곳에서는 식료품 칸이 비어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은행과 현금 인출기는 언제 휴지 조각이 될지 모르는 돈을 안전 화폐로 바꾸기 위한 사람들로 긴 줄을 이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나름 오랜 유학 생활한 아내에게 가장 큰 걱정은 환율도, 식료품도, 경제 제재도 아닌 바로 테러였다.


“여보, 당분간 사람 많은 곳이나 쇼핑몰, 마트는 가지 마!”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러시아에서는 크고 작은 테러들이 일어나곤 했기에 아내는 될 수 있으면 밖에 다니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고 실제로 일어나진 않았지만 종종 모스크바 시내의 큰 쇼핑몰과 지하철에서는 테러 의심 신고 소식이 들리곤 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국으로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잠시 한국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매한 다음 날 우리에겐 또 다른 소식이 업데이트 됐다.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편이 모두 중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비행기표를 예매한 바로 다음 날 들린 소식이라 충격은 더욱 컸고 이러다 러시아를 못 떠나는 건 아닌 지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또 다른 길은 있는 법. 항공 사이트를 뒤져가며 다른 경로를 찾아 헤매던 우리는 두바이를 경유해서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잠깐이지만 처음으로 밟아본 두바이 공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직항이었으면 9시간이면 도착할 거리가 대기까지 합쳐, 꼬박 21시간으로 늘어났지만 시간이야 아무렴 어떤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사실 우리 인생에서 직항이라는 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돌고 돌아 때로는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지조차 헷갈리는 경유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도 예상치 않았던 복잡한 인간관계를 경유하기도 하고, 한 번도 계획한 적이 없던 인생의 여정을 경유하기도 하며, 가슴 아픈 이별을 경유하기도 한다.


아무리 열심히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준비해도 단번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수없이 돌고 도는 경유를 통해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경유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 또한 경유가 아니었다면 살면서 한 번도 두바이를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중동의 분위기와 공항에서 흘러나오는 이슬람 풍의 노래는 분명 이색적인 경험이며  하나의 추억이었다. 인생의 경유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한 번 삶을 돌아보자.


만약 경유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깨달음, 성장과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우리를 단순히 목적지로만 인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은 경유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추억과 기억을 안기고 때로는 우리는 성장시키며 하나의 목적지로 인도한다. 그러니 조금은 돌아간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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