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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Jul 18. 2017

무엇을 사랑하고 있나요

사랑. 누군가 말했다. 모든 사람은 사랑에 빠져 있다고. 나는 무엇과 사랑에 빠져 있나 고민해봤다.


한때 밤만 되면 나를 감싸고 놓아주질 않던 식욕인가. 빨간 맛, 노란 맛, 몽글몽글한 거품의 맛... 색색과 형형의 맛을 탐하게 한 그 식욕은 이제 없다. 종종 젓가락을 못 놓을 때마다 아직 식욕의 화신이 내 안에 있음을 느끼지만, 한 번 오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그를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무얼 사랑하는 걸까. 일인가? 그럴 리 없다. 그 반대면 모를까. (단호박)


Jordan Matter - Dancers Among Us

춤인가? 춤을 사랑한다기엔 고작 3개월을 못 채운 춤 솜씨는 아직 허공을 허우적대기나 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을 사랑하기는 하니, 반쯤 사랑한다고 해두자. 아주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시간인가?

누군들 이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시간, 좋은 대화를 무지 사랑한다. 종종 그 시간을 위해 하루의 주된 시간 동안 업무와 대화와 온갖 잡적인 행위를 하는 내가 고통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슬퍼진다.

그것이 원래 인생이라 해도, 난 그런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고로 이 사랑은 슬프다. 사랑할수록 슬퍼지는 사랑이다.   


사랑하고 싶다. 아무 걱정 없이, 격정만 있는 사랑이 하고 싶다. 메마른 두렁을 걷는 나에게 단비를 내려 물기가 가득해질 수 있도록, 물컹한 앵두처럼 단단하게, 또 무른 해갈의 마법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랑이 하고 싶다.


고 몰랑몰랑한 열매 속에
고 새빨간 살 속에
동글동글한 앵두 속에
돌보다 더 단단한 씨가 들어 있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 연하고 부드럽고 고운
쬐꼬만 알 속에
야무진 진실이 들어 있다는 것을......

- 이오덕의 시 <앵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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