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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REE Mar 08. 2020

파도타기

말없이 안아줄텐데

 좋아하는 스킨십이 뭐예요? 

라는 질문에 잠시 망설였다. “다 좋아요”라고 말하기에는 당신이 이렇게 당연하고 싱거운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 걸 알기에, 다른 대답을 생각하다가 망설이듯이 대답했다. 

 “말없이 안아주는 거요. 손 잡는 것도 좋고 입 맞추는 것도 좋고 자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저는 말.없.이 안아주는 게 좋아요.”

 왜 방점을 찍으면서까지 말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든 표정을 보니 당신에게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해보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종류의 도움이 있겠지만 가장 원초적인 도움은 ‘위로’가 아닐까요? 마음으로 전하는 위로 같은 거요. 가정을 해볼게요. 나와 당신이라는 관계가 있는데 당신의 삶이 오늘따라 버겁고 고단한 거예요. 푸르스름한 아침이 오는 게 상쾌하기는커녕 닭살과 함께 소름으로 다가오고 붉으스름한 해질녘을 보면 찡한 울림보다는 숨이 막히고 먹먹한 거예요. 혼자서는 버거운 날, 그런 날에 당신은 내가 필요한 거예요. 나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막상 얘기거리가 없는 거예요. 일상은 평소와 다른 게 없고 그렇게 많이 힘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별거 아닌 거에 내 자신이 예민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막 그런 상태, 당신조차 당신이 어떤 상태인지 진단을 내릴 수 없는 그런 날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당신은 내가 필요하니까 일단 불러내어 만났는데, 조금은 서먹서먹하네요? 당신이 무슨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고 우왕좌왕하며 넋두리 같은 대화를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소연하고 있는 당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는 그냥 말없이 안아주는 거예요.”

당신은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애써 이해하는 척을 하며 끄덕거린다.

“ 흠... 말없이 안아주면요, 그 자체가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일방적인 대화가 오갈 수도 있고 소리 없는 대화도 오갈 수 있지만 말없이 안아주면 당신의 체온에서 나의 체온으로 옮겨오는 뭔가 그 묘한 기운이 느껴져요. 

 자 상상해봐요. 자연스럽게 눈이 감기고 나와 당신 사이에 오가는 온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들리지 않던 숨소리도 들리기 시작하고 겹겹의 옷 사이에 숨어있는 따뜻한 심장의 움직임도 느껴질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숨소리가 느려지기 시작하면서 나와 당신의 호흡을 맞추어 같은 박자 속에 존재하는 우리가 되고, 같은 공간 안에 속해있는 우리가 되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우리가 되는 거예요. “

눈을 감고 상상하고 있는 당신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고인다.

 “ 또 하나 더 상상해 볼게요. 당신과 내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데, 당신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은 거예요.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내가 옆에 있으니 울지는 못하겠고, 물주머니를 꽉 채운채로 흘리지 않기 위해 바둥바둥거리고 있어요. 그렇게 버티고 있는 당신을 알아챈 나는, 말없이 당신을 안아주는 거예요. 안아주면요, 주변이 캄캄해지고 나와 함께 있던 공간이 당신 혼자 있는 공간이라는 착각이 들면서, 꽉 찬 물주머니를 내가 껴안아 흔들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당신의 슬픔을 왕창 쏟아내는 거예요. 얼마나 큰 물주머니였는지 내 옷이 다 적셔질 만큼 우네요. 그렇게 울다가 울다가 모든 것을 부어내고 공허함이 밀려오면 내가 뻗은 팔을 베개 삼아 몸을 오므리고 새액-새액- 잠드는 거예요. 포근함은 이렇게 말없이 안아줄 때 생겨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없이’ 예요.”

눈을 뜨며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여는 당신. 

“말을 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자, 당신이 안겨있는데 내가 ‘왜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물음표를 뱉으면 당신은 물음표에 대답할 마침표로 된 문장을 생각하겠죠? 그렇게 되면 당신은 내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잠시 동안 말없이 바라본다. 지금 당장 내가 당신에게 소리 없이 안기고 싶다는 말을 머금은 채, 말없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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