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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May 17. 2023

끝내는 힘

지난 몇 년 간의 일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을 꼭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일을 이야기하실 건가요? 저는 첫 책을 쓰고, 출간했던 경험을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책 출간은 오랫동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쓰기는커녕 읽는 사람도 되지 못했던 제가, 읽고 쓰는 사람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은 '구태여 왜 사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고요. 책을 만들며 책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삶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몸 담고 있는 커머스 업계 외에 다른 직업인들을 만날 기회가 잘 없었거든요. 게다가 저는 갈 수 없는 곳을 제 책이 대신 가서, 곳곳에 독자들을 만나주었지요. 말로 다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의미 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책을 쓰며 끝내는 힘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작도 잘 못하지만, 끝도 잘 맺지 못하는 사람인데요. 둘 중 그나마 시작에 아주 쪼-오끔 더, 자신이 있습니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초반 스퍼트는 나쁘지 않거든요.


문제는 그러다가 금방 지쳐서 나가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시작 후 1 ~ 10% 지점까지는 순항해요. 그러다 이내 온 곳을 돌아보고 다시 되돌아가요. 뭔가 이상해서 다시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거든요. 그렇게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초반 진도율 10% 이내의 구간만을 맴돌다가 지쳐서 포기하는 게 제 패턴입니다.


그러나 책을 쓰는 과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시작한 문장은 꼭 끝을 맺어야 했습니다. 첫 단어를 쓰고 너무 멀지 않은 시점에 말이죠. 마치지 않은 문장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니까요. 어렵게 쓴 몇 개의 문장이 모이자 문단이 되었습니다. 문단이 되자 또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앞서 말한 저의 고질병...)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마다 되뇌었습니다. 이것은 초고일 뿐이라고,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닫고 나면 그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마감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에는 항상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마감을 딱 하루만 미루면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때마다 기다리는 편집자님과 협업자들의 얼굴을 떠올렸어요. 매주 그렇게 마감을 해가며 배운 것은,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문장은 지금 써 놓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 이 마감을 해낸 내가 내일 다시 쓰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주 맺어낸 '끝'들이 모여 책이 되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일은, 제게 끝내는 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마침내, 스스로 끝내는 힘이요.


요즘 혼자 하는 일이 많아지고, 홀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끝내는 힘의 중요성을 체감합니다. 아쉽게도 끝내는 힘은 근력과 같아서 계속 단련하지 않으면 손실되더라고요. 제가 매주 이렇게 퇴사원 주간보고를 부칠 수 있는 것은 끝내는 힘 덕분이고, 지속하는 이유도 끝내는 힘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매주 퇴사원 주간보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위해, 끝내는 힘을 잃지 않기 위해, 퇴사원 주간보고의 분량을 조금 적게 조절할 예정입니다. 한 주에 여러 개의 마감이 있고, 한 주에 써야 하는 글의 분량이 많아진 상황이거든요. 격주 발행을 할까도 고민했는데, 매주 구독자님을 만나고픈 제 욕심이 승리했습니다.


앞으로 퇴사원 주간보고는 '한 꼭지의 글' + '주간보고 요약' 정도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구독자님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오늘 새삼 느끼는 것은, 끝과 시작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끝내는 힘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도 할 수 있으니까요. 구독자님께 끝내는 힘을 알려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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