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비용

선택과 포기

by 김작가입니다

세 명의 자녀를 둔 언니는 산후조리를 다 친정에서 했다. 덕분에 나도 육아를 아주 조금 경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아마도 둘째를 낳고는 우리 집에 있었던 기간인 듯하다. 세 살 터울이니 첫째가 4살이었겠다. 당시 첫째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거실에는 첫째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늘 널려있고, 책장에는 동화책이 한가득 있었다.


블록을 한참 가지고 놀다가 금세 자동차로 눈길이 갔다가 어느새 공룡을 가지고 논다거나 놀이가 변화무쌍했다. 거실 바닥에는 첫째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책들이 가득했다. 조카를 쫓아다니면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치우기 바빴다. 아이들이 잠든 밤마다 책장에 마구잡이로 꽂혀있는 책들은 번호 순서대로 다시 꽂고 장난감은 다시 정리해 두었다.


그렇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게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낮 시간 동안 조카를 쫓아다니며 장난감을 치워봤자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어지르고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 동안은 절대로 깨끗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책도 마찬가지다. 번호 순서대로, 색깔별로 꽂아놓는 것은 나의 만족감일 뿐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는 아이가 꽉 찬 하루를 끝내고 잠에 들고나면 몰아서 장난감을 치우고, 책은 그냥 정리를 하는 것 정도로 스스로와 합의를 봤던 것 같다.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때의 합의점을 얼마 전 냉장고를 보면서 다시 떠올렸다.


2년 전만 해도 엄마의 주방이었기에 냉장고 정리도 주도권은 나에게 없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엄마가 편한 자리가 제자리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주방은 자연스레 나의 것이 되었다. 오래된 것들은 버리기도 하고, 밥솥의 자리도 바뀌었고 그릇의 위치, 정리 방식도 소소하게 바뀐 것들이 많았다.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해오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미세하게 바뀐 것들이 있다. 제일 윗 칸은 아침으로 먹는 샐러드, 드레싱 등이 있고 눈높이에 있는 둘째 칸은 주로 먹는 반찬들이 있다. 아래로 갈수록 장 종류, 야채, 식재료 등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문 수납장도 마찬가지다. 손이 가장 쉽게 가는 곳에는 아빠가 드시는 물이 한 줄 가득 꽂혀있고 밑으로 각각의 양념장들이 꽂혀있다.


반찬을 하거나 사 오는 날에는 냉장고 정리를 자연스레 하게 된다. 각을 맞춰서 질서 정연하고 깔끔하게 들어가 있는 반찬통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아빠가 식사를 한 번 하고 나면 정리해 둔 냉장고가 어느새 뒤죽박죽이 되어있다. 자주 먹는 반찬통이 저 밑 칸이 내려가 있다거나, 왜 여기에다 이걸 담아놨을까 싶은 경우도 종종 있다. 얼마 전에는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아오셔서 냉동실에서 테트리스 한 판 제대로 한 적도 있었다. 나름 질서가 있었던 냉동실이었는데 무질서의 상태, 일단은 넣고 보자는 상태가 되어있었고 그걸 이렇게 저렇게 다시 정리했다. 흐트러진 냉장고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불현듯 10년 전 조카 장난감을 치우던 때가 생각났다.


'이건 내가 포기해야 하는 거구나. '


나의 아침이라곤 출근길에 입에 넣고 가는 삶은 달걀 하나, 점심 대부분은 밖에서 먹고, 저녁에 당직까지 있는 날에는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없다. 그에 반해 아빠는 삼시세끼 대부분을 집에서 드신다. 얼마 전부터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밥 솥에 밥이 맛있게 지어져 있을 때가 많다. 낮 시간 동안 아빠가 밥을 해 놓으신 거다. 내 손으로 밥을 한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 밥 물은 아빠가 더 잘 맞춘다.


엄마를 보내고 2년이 넘도록 주방의 주도권과 주 사용자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한 주방이었기에 내가 정한 위치에 그릇들이 놓여 있어야 했고 수납장과 냉장고도 내가 만들어 놓은 질서에 맞게 정리가 되어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정한 자리가 제자리라고 생각을 했다. 주 사용자는 아빠인데 말이다.


나는 인덕션 옆 싱크대에 아무것도 올려놓고 싶지 않은 데 아빠는 소금, 후추, 식용유, 식초를 늘 거기에 둔다. 다 사용한 프라이팬은 잘 씻어서 싱크대 하부장에 넣었으면 좋겠는데 아빠는 늘 싱크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게 아빠가 편한 장소인 것이다. 나는 주방의 깔끔함을 위해 아무것도 올려놓고 싶지 않지만, 아빠는 깔끔함 보다는 편의를 위해서 손이 쉽게 닿는 곳에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두셨다.


잘 정리된 냉장고와 깔끔한 싱크대를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전업주부가 돼서 아빠의 삼시 세끼를 다 차려주지 않는 이상 그건 내가 고수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약간의 현실직시를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삶에서의 기회비용이라 생각했다. 정돈과 깔끔함을 포기하고 조금의 가벼움을 얻었다. 비어 가는 반찬통에 대한 책임감은 피할 수 없지만 100%의 주도권이 아니란 것에 마음의 무게를 조금 덜어낸 것 같다.


선택의 연속인 인생은 크고 작은 기회비용의 계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하다. 26,000원이라는 돈을 썼지만 내 입을 즐겁게 하고 피곤한 저녁을 쉬게 해 준 치킨을 얻었고, 비 오는 늦은 밤 좋아하는 영화와 맥주 한 잔의 감성을 누렸지만 다음 날의 피곤함은 피할 수 없다.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선택한 것이다. 기회비용만 따지다가 선택을 미루다 보면 무엇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숱하게 생긴다. 그리고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는 그 행위는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회비용을 포기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keyword
이전 06화선망과 원망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