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보면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겠지

사람은 자신이 불편했던 방식으로 남에게 상처를 준다

by 김작가입니다

어린 시절 동네에 비디오가게가 하나 있었다. 간혹 사장님이 가게에서 영화를 보여줬던 것 같다. 가게에서 영화를 봤던 여러 날 중에 하루인지, 그냥 그날이 특별했던 날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독 아이들이 많았던 것만 기억이 나고 무슨 영화인지 왜 봤는지도 모를 그날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되게 재미있었던 영화였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해는 다 졌고 아빠가 퇴근하실 시간이 되었다. 몇 시까지 집에 오라던 약속을 내가 잊은 건지, 애초에 비디오가게에 간다는 얘기를 안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하튼 부모님이 걱정할 만한 시간에 집에 들어갔다. 아빠는 화가 나 있었고 벌로 아빠에게 꼬집혔다. 그날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의 체벌’이 있었던 날이기에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상처가 아니라 작은 이슈로만 남아있는 건 내가 명백히 잘못한 날이기 때문이다.


체벌이 그날이 유일한 것이지 아빠에게 혼나지 않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말 잘 듣는 아이이기보단 혼자 사부작거리다 사고 치는 일이 많았고,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빠 성격이 유하지도 않았고(나의 예민함은 아빠에게서 왔다.) 딸바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종종 혼이 나며 자랐다는 말이다. 아빠의 회초리는 말이었다. 눈에 보이는 매를 들지는 않았지만 늘 말로써 체벌을 했다. 아빠가 가족들을 소집하는 날은 30분이든 1시간이든 앉아서 아빠가 하는 말들을 다 받아내야만 했고 그런 날은 정말이지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았다. 아빠는 화가 풀릴 때까지 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다 내뱉어야만 끝이 났고 그렇게 내뱉어진 말들은 늘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정당한 이유로 매를 맞고서 몸에든 멍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도 않았다.


어릴 적에는 아빠가 무섭기도 하고 엄마가 방패막이가 되었기에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날이 많았다. 내가 나이가 들고 머리가 크고 나니 아빠가 하는 얘기들이 곧이곧대로 듣고 있을 만한 얘기가 아니란 걸 알았고 아빠의 말에 반박하며 대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아빠에게 유일하게 대든 자식이 되었고, 엄마는 언니에게 내가 아빠한테 대들었다고 신기해하며 얘기를 했다. 내가 아빠에게 대든 것은 말로써 내내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았고, 숱한 경우는 아빠의 논리가 틀리기도 했다. 논지에서 벗어나 말로 땔리는 아빠가 어떤 날은 무섭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불편했고 고스란히 상처로 남아있는 말들도 많았다.


그런데 얼마 전 인스타에서 흘러가듯 봤던 문장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사람은 자신이 불편했던 방식으로 남에게 상처를 준다."


'나는 머가 불편했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남에게 상처를 줬지?' 생각하다 보니 아주 크게 아차 싶었다. 말이었다. 내가 싫어하던 아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아있었다. 내가 하는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할 때고 있었고 모르고 할 때도 있었다. 명확한 것은, 속에 있는 말을 내 감정이 풀릴 때까지 글로든 말로든 내뱉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아빠에게 말로 받은 해결되지 않은 무의식의 상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상처가 남에게 상처를 내도 되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 것도 말이다.


나는 왜 속에 있는 말을 다 뱉어야 감정이 풀리는 건지 스스로를 향한 의문이 있었다. 그 행동이 건강하지 못한 반응이라는 것을 다행히도 인지하고 있었고 원인과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거란걸 알면서도 내 감정에 못 이겨 쏟아내놓고선 이내 내가 왜 그랬을까, 상대가 속상할 것에 다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반복했다. 그럼 다시 스스로 작아지고 위축되는 나를 보며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그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건강한 어른, 좋은 사람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주 큰 착각이다. 여전히 내 속에는 해결돼야 할 것이 많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유는 알았으니 이제 건강한 해결책을 찾아가면 된다. 뒤통수를 맞더라도 계속 발견하고 깨닫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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