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선배와 안부를 묻던 중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뵙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선배는 아버지가 마흔이 넘어 낳은 늦둥이 막내아들이다. 40대 중후반의 아저씨에게 늦둥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어딘가 어색하지만 여하튼 늦둥이 막내아들이다. 연세가 있는 부모님을 돌보는 건 그나마 가까이에 있는 막내아들의 몫이 되었다.
90세 남짓한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긴 했지만 식사도 잘하시고 손주들과도 시간을 잘 보내셨다. 며칠 전 뵙고 올 때만 해도 좋았는데 3,4일 사이에 컨디션이 떨어졌는지 식사를 잘 못하신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기력을 차리는 것이 우선이라 얼마간 요양병원에 계시는 게 나을 거 같아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이었다. 더운 여름, 젊은 사람도 입맛이 없고 기력이 떨어지는 계절이니 아버지도 그러실 거라며 내 나름의 다독임을 전했다. 젊은 사람의 입맛 없음과 80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의 입맛 없음이 같은 의미일 수는 없지만 선배의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덜어보고 싶었다.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는 선배 말에 15년 전쯤 아빠가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드린 날이 생각났다. 늦은 저녁 술 한 잔 거하게 하고 들어와선 침대에 털푸덕 누워서는 우셨다. 살면서 아빠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을 처음 봤다.
선배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병원에 가셨으니 이제 괜찮아지실 거라는 안도감보다는 자식 노릇을 잘 못하고 있나 싶은 속상함,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도 자식은 자식이기에 괜스레 밀려오는 서러움, 어쩌면 아버지를 볼 수 있는 날이 길지 않겠구나라는 두려움이 마음에서 얽히고설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선배에게 ‘염려하지 마라, 아버지는 괜찮아지실 거다.’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컨디션은 지금까지처럼 물결치듯 오르락내리락하실 테고 어쩌면 그 간격이 예전보다는 짧아질지도 모른다. 조금은 매정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난 그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이치라고 생각된다. 바라는 것은 선배가 자식으로서 인생에서 겪어야 할 어떤 순간들을 물 흘러가듯 잘 지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부모님의 나이 들어감을 보고, 부모의 보호자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은 과연 최선인 건지 고민하게 되는 모든 시간들을 늘 그래왔듯 무던하게 잘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