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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Apr 16. 2023

엄마의 두 번째 골절

발 좀 씻겨줘

혈액암 환자 9년 차인 엄마는 병의 특성상, 그리고 나이로 인해 뼈가 많이 약해져 있다. 60대 중반의 많은 여성분들이 그렇듯 뼈 곳곳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오랜 기간 지속된 항암 치료로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도 늘 낮게 나온다. 이 말은 기침만 조금 심하게 해도 갈비뼈가 부러질 수 있다는 뜻이고, 작은 상처에도 큰 출혈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작년 연말쯤, 엄마는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디스크의 문제라 생각하며 동네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며칠간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서 상급병원으로 갔다. CT를 찍어보니 허리에 작은 골절이 생겼다는 것이다. 보조기를 맞추고 허리를 많이 쓰지 않도록 안정을 누리는 것이 치료 방법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고 엄마의 뼈는 붙은 듯했다


그러다 2주 전쯤 엄마는 허리가 다시 아프다고 했다. 통증이 심하지 않은 듯했는데 하루 사이에 거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일찌감치 병원에 가보니 또다시 골절이라고 한다. 지난번에 다친 허리보다 조금 위에 있는 척추 뼈가 살짝 내려앉아 있다. 통증이 등 전체에서 느껴져 이번에는 유독 힘든 것이었다. 정말 기침만 해도 골절이 되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는 깊은 통증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 것도 힘들어졌다. 몸에 힘이 들어가는 모든 움직임이 힘들어진 것이다. 여태껏 기본적인 가사활동은 가능했었지만 지금은 엄마 스스로의 몸을 가누는 것이 가장 큰 수고가 되어버렸다. 허리를 굽히는 것이 힘들어 혼자서 머리를 감는 것이 힘들어졌고, 양말 하나를 신는 것도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오랜 투병생활을 했음에도 나에게 부탁의 말을 잘하지 못하지만 골절이 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나를 찾는 순간이 많아졌다. 엄마의 부탁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발을 씻겨 달라고 나를 부를 때이다.  


허리를 굽히지 못하는 엄마 앞에서 나의 허리를 굽혀 엄마의 발을 마주한다. 물의 온도가 뜨겁지 않은지 살피고 아프지 않을 정도로 발마사지를 해준다. 수건으로 곱게 물을 닦아내고 양말까지 신기면 마무리가 된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굽혀 엄마의 발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이 나에게 큰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2년 전 엄마가 고관절 인공관절 수술을 했을 때도 그랬다. 그땐 발뿐만이 아니라 샤워를 해줘야 했다. 욕실이 춥지 않은지, 물의 온도는 괜찮은지, 의자는 불편하지 않은지 살피고 엄마를 씻긴다. 샤워를 마치면 수건으로 엄마의 몸을 닦아주고 머리까지 말린다. 어찌 보면 자식으로 아픈 부모에게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의무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나에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특권처럼 여겨졌다.


자식이 살면서 부모의 몸을 씻기고, 발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 순간은 분명한 특권이고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부모님이 준 사랑과 섬김에 비하면 정말이지 발톱크기만큼도 안 되는 사랑이겠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엄마의 발에 고단한 긴 세월에 만들어진 굳은살이 보인다. 치료 탓에 발이 퉁퉁 부어있는 날도 있고, 건조한 날씨엔 푸석해진 엄마의 발도 마주한다. 엄마의 발에 조심스럽게 끼얹는 물이 긴 세월의 고단함을 다 씻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겪고 있는 몸의 힘듦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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