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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Jun 29. 2023

2023년 6월 7일 수요일 21시 43분

엄마와 긴 이별을 했다

2시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엄마 병원에는 동생이 월요일부터 보호자로 지내고 있었고 나는 마침 출근 전 병원 근처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동생에게 근처에 있는데 필요한 게 없냐고 물었더니 엄마 입술에 바를 바세린이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옆에서 엄마가 덧붙여서 간호사 선생님들 줄 과일도 조금 사 오라고도 했다(엄마는 아픈 와중에도 늘 정이 많았다). 근처 백화점에서 맛 좋아 보이는 체리를 사서 병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어디야?"

"병원 근처야. 금방 가.”

"엄마가 좀 안 좋은데 올라와야 할 거 같아."


병원 근처에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좁은 병실엔 알 수 없는 기계가 들어와 있었다. 엄마의 얼굴이 벌게져 있었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반쯤 앉은 상태로 있었다. 선생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계에서는 맥박이 180을 넘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의 심장이 이렇게까지 빨리 뛸 수 있구나 싶었다. 갑자기 부정맥이 온 것이다. 심장내과의 협진을 받아 우선은 부정맥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약을 투약하기로 했다. 1차적으로 약을 투약했더니 맥박이 90까지 떨어지다가 금세 다시 150까지 맥박이 올라갔다. 2차로 약을 투약하고는 이틀정도를 지켜보자고 하셨다. 지켜보자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병원을 나와 조금 늦은 출근을 했다.




직장에서 나의 부재가 언제, 얼마나 될지 몰라 업무 인수인계 내용을 꾸준히 정리하고 있었다. 주말엔 큰 행사가 있었지만 왜인지 나는 없을 것 같다고 몸이 직감적으로 느낀 것 같다. 다른 동료들에게 업무를 전달하고는 슬슬 퇴근 준비를 할 때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가 온 걸 봤지만 다른 일을 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러곤 엄마 폰으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이었다. 울고 있었다.  


"누나 엄마한테 인사해~ 지금은 의식은 없는데 맥박은 남아있어. 엄마 지금 듣고 있으니깐 엄마한테 인사해~ "


엄마의 생이 이미 끝났다는 말인지, 아니면 미세하게 남아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엄마한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엄마 딸이어서 너무 고마웠고 행복했어. 사랑해. 고마워. 천국에서 만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아 오열을 하며 겨우겨우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 없었다.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는 겨우겨우 병원으로 갔다. 차는 왜 이리 더디게 가는지, 조금이라도 더 숨이 남아있을 때 온기가 남아있을 때 엄마를 보고 싶었다.


병실에 도착하니 낮 동안 병실에 가득했던 기계들과 수액 주사들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엄마는 침대에 곱게 누워있었고 얼굴 위로 하얀색 천이 덥혀져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 5분 정도 전에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렇게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서있었다.


"누나 엄마 손 잡아줘. 아직 체온 남아있으니깐 엄마 손잡고 인사해."  


하얀색 천을 걷어내고 엄마의 손을 보니 청색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도 차갑지는 않았다. 머리는 아직 따뜻하다는 동생의 말에 엄마의 얼굴을 덮고 있는 천을 치우고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엄마는 평소 깊이 잠이 들며 나오는 그 표정으로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따뜻하게 온기가 남아있는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엄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엄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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