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서평-제임스 배리 / 비룡소 / 2004

by 인애

이 작품은 1904년 크리스마스 아동극으로 초연된 후 연극으로 공연되어 오다 1911년 제임스 배리가 줄거리를 다시 정리해 출판한 작품이다.


이 책은 어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피터 팬, 엄마가 되기를 원하는 소녀 웬디, 품격에 집착하는 후크 선장, 질투심에 불타는 요정 팅커 벨에 이르기까지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의 신나는 네버랜드 모험담이 주요 내용이다. 피터 팬 이야기는 다양한 장르에서 지금도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기에 모두가 알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 완역본을 읽어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완역본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자세한 인물 묘사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스토리에 덧붙여지는 설명들이 읽는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던져 주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어린이 같은 어른, 어른 같은 어린이

웬디의 아버지인 달링 씨는 아이의 출산과 함께 그의 방식으로 연필과 종이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각종 비용을 계산한다. 이웃과 똑같이 해야 안심이 되며 약을 잘 먹지 못하고, 넥타이를 잘 매지도 못하며 유모인 개 나나에게도 샘을 내는 존재다. 아이들이 사라지자 자책하며 우스꽝스럽게 개집에 들어가서 생활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아빠의 모습인데 이렇게 서술했다는 건 어른의 속물적인 면과 서툰 부분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른도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게 하며 친근감을 준다.


또 다른 어른인 후크 선장을 살펴보자. 그는 명문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품격에 집착한다. 품격이라는 것이 목숨보다 소중 할리 없는데도 후크가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서 어른이라면 마땅히 어린이보다 품격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후크를 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후크 선장은 어른인데도 아이처럼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엄마라는 존재는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지키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런 엄마가 피터 팬과 소년들에게 생겼다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그래서 해적들과 후크는 엄마인 웬디를 납치해 자신들의 엄마로 삼으려는 계략을 세운다. 아직 소녀인 웬디를 납치해 엄마로 삼는다는 생각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이제 어린이인 웬디와 피터의 모습을 살펴보자. 웬디는 네버랜드로 가서 소년들의 엄마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고민도 없었고, 당황하지도 않았으며 바로 엄마라는 역할에 만족해하며 소년들의 잠을 재우고, 식사를 챙기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의 역할에 심취한 웬디는 꼭 아기가 있어야 한다고 우겼고, 가장 나이가 어린 마이클을 아기처럼 억지로 바구니 요람에 재우기까지 한다. 아이들을 돌봐주느라 숨 돌릴 시간조차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낸다. 피터의 권위적인 행동에도 웬디는 자신은 성실한 가정주부이기에 소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피터에 대해 어떤 불평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실 이야기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웬디였다. 웬디가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은 이해가 된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소꿉놀이를 하며 엄마 아빠를 꿈꾸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러 명의 소년들을 돌보아주는 엄마의 역할을 행복이라 여기고 피터의 가부장적인 생각을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이 아쉬웠다. 이 이야기가 쓰인 것이 100년 전이니 그때의 시대상은 그랬을 것이다. 한 편으로는 현재에는 여성의 인권에 대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기에 이런 이야기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피터 팬은 이 이야기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물이자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다. 아직도 젖니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나이를 모르고, 건방지며 변덕이 심하고, 기억력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어른인 후크선장의 팔을 없애버릴 정도로 용감한 인물이다. 또한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죽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모험일 거야.”라고 말할 정도이고 단검을 들고 싸우러 갈 때는 행복감마저 느낀다. 후크가 피터를 평생 미워한 것도 어느 상황에서나 자신만만한 당당함이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자신이 갖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모습을 피터가 가지고 있고,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어른이 되는 것을 증오했던 피터도 후크와의 싸움에서 이긴 후 후크의 옷을 입고 선실에서 후크의 담뱃대를 물고 어른인 후크의 흉내를 낸다. 또한 피터가 인디언 소녀 타이거 릴리를 구해주자 인디언들이 피터를 “백인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에게 굽실거렸는데 피터는 이것을 좋아했고 더욱 자만에 차기도 했다.


피터도 이렇게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세상 모든 엄마를 경멸한다고 했지만 실은 엄마의 존재를 가장 원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아빠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데도 아이들의 아빠 노릇을 한다.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행동과 말이 실로 어른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장면이 여럿 있었다. 완역본을 보지 않은 채 혼자 그려놓은 피터 팬은 얼마나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이었던가.


어른인 달링 씨와 후크의 모습, 어린이인 피터와 웬디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과 어린이라는 경계는 그저 나이에 의한 것일 뿐 보편적으로 말할 만한 어른의 특성이라는 것과 어린이의 특성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엄마가 없는 네버랜드의 어린이들은 엄마의 존재에 유난히 집착한다. 엄마의 존재를 애타게 찾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없었기에 네버랜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인데도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다. 그러다 같은 어린이이기도 한 웬디를 엄마로 삼고 위안을 삼는다. 어린이들이 엄마에게 집착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후크 선장까지 엄마의 존재를 갈구하는 모습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엄마라는 존재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엄마와 아빠는 다 부모인데도 엄마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엄마라면 당연히 가져야 한다는 모성애와 연결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되기로 하면서부터 놀랍게 바로 생겨난 웬디의 모성애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현실로

웬디는 엄마인 달링 부인이 창문을 닫아두고 자기들을 잊었을까 봐 두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집에 돌아온 웬디와 동생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한 재회를 하는데 이 책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여행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고 하지 않는가. 꿈과 환상의 세계로 떠나지만 그 세계도 결국 현실로 돌아오기 위함이 아닐까. 현실로 돌아와 어른이 된 웬디는 피터와 다시 네버랜드로 날아가서 모험을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꿈에서나 경험할 법한 모험이 있었기에 현실에서의 삶도 견딜 수 있으며 힘들 때마다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아, 웬디. 네가 자라지 않고 영원히 지금 이대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링 부인이 웬디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달링 부인의 이런 마음에 공감할 것이다. 내 아이가 영원히 내 품에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이길 원하는데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는 자랄 것이고 어른이 될 것이다. 어른인 부모에게 피터 팬이기도 한 아이의 손을 놓아주는 일은 부모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마음속에 피터 팬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흔쾌히 그 손을 놓아줄 수 있어야 부모이고 어른일 것이다.


집에 돌아온 웬디는 일 년에 한 번 피터와 네버랜드로 가기로 하지만 곧 웬디는 어른이 되고 날 수 없게 된다. 결혼을 하고 제인을 낳았는데 엄마가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웬디는 어른이 되면 즐겁지도 않고 순진하지도 않고 제멋대로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피터는 자란 웬디를 보고 실망했지만 웬디의 딸인 제인을 엄마로 삼기로 하고 봄 대청소 때만 네버랜드로 제인을 데리고 간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걱정을 미리 하는 것이고 그래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나는 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날 수 있겠지만 이미 모든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고 단정 지어 왔기에 도저히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웬디와 다시는 네버랜드로 갈 수 없는 결말이 조금 쓸쓸하기도 했지만 피터 팬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있기에 다행스럽기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쓸쓸하지만 그것이 웬디의 인생이고 피터가 어른이 되지 않는 것 또한 피터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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