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신대도서관

2024.4.19.

by 인애

봄날, 평일 낮시간의 휴가는 교사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가능한 날이 있는데, 바로 학교의 생일이다. 개교기념일은 나에게 내 생일보다 귀하다. (생일날은 쉬지는 않으니) 이런 날을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낼 순 없지. 요즘은 통 가지 않았던 순천에 가볼까 해서, 검색해 보니 순천에 새로 생긴 도서관이 있다. 무려 전남 최대규모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마음이 확 움직이지 않았는데 한 사진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 도서관엔 물이 있는 중정을 볼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자, 가자.


항상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서 순천까지 직접 운전해서가는 것은 처음이라, 차가 많은 남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쉽지 않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선 길을 잘못 들어 까닥하면 논으로 곤두박질칠 듯한 아슬아슬한 농로도 지난다. 내 몸은 2시간 이상 운전한 것처럼 경직되었지만 한 시간 남짓을 달려,

앉고 싶었던 도서관 그 자리에 앉았다.

뭐 하러 난 여기까지 온 걸까? 답도 없을 질문을 한다.

나무는 움직이지도 않는데, 작은 바람에도 잔잔히 흔들리는 물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도서관 가운데에 위치한 물의 정원, 물의정원을 둘러싼 1층과 2층에 테이블이 넉넉하다.

그 자리에 앉아 오늘 신문을 본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마저 읽는다. 2층 쉼터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고 해서 집에서 가지고 온 사과를 먹는다. 밖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도서관 바로 옆에 딱 붙어서 초등학교가 있는데 운동장에서는 체육수업을 하고 있다. 자랑하고 싶다.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개교기념일이라 오늘 학교에 안 간다! 보통의 하루와 다른 오늘의 하루가 길었으면 좋겠다.

바로 옆 초등학교, 초록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싱그럽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신대도서관은 2023년 12월에 개관한 전남 최대규모의 도서관이다. 입구의 넓은 잔디밭, 넓고 높고 도서관 내부, 계단 형식의 좌석. 어른들도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듯하다. 평일 오전에 방문해서 공부하는 어른들만 있어 노트북 키보드를 치기 미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사람들이 많은 주말에는 개방된 공간이라 공부하기에 꽤 시끄러울 것도 같다. 하지만 도서관의 북적거림은 또 다른 의미에서 좋다. 아이들의 독서는 어른들의 독서와는 달리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층고가 높고 다 열린 공간이라 개방감이 좋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북적거릴 계단식 벤치.

어린이 자료실은 보통 18시에 닫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모든 자료실의 이용 시간이 9시부터 21시다. 휴관일도 매주 월요일이 아니라 첫째 주 월요일 매월 1회와 공휴일만 쉰다. 이런 부분이 이용자에게는 꽤 편리할 것 같다. 좌석도 다양하게 있어 도서관에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여러 자리를 돌아가며 앉아보니 2층 중정을 보는 자리가 의자도 편하고 제일 좋다. 2층 바깥을 바라보는 창가 자리는 햇볕을 쬐며 초록한 야외를 보기엔 좋았지만 책을 손에 들고 있어야 해서 오래 앉아 책을 읽기는 어려웠다.

다양한 좌석이 있어 여기 저기 자리를 옮겨 책을 읽어도 지겹지가 않다.

주차장도 넓고 모든 것이 편리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휴게실에서 국물이 없고 냄새가 나지 않는 간단한 음식만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자주 가는 우리 지역 도서관은 도서관에 들어가는 입구에 휴게실이 있어 들어갈 때부터 라면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늘 그 강렬한 냄새를 이기지 못해 도서관을 갈 때는 대출증만큼이나 컵라면을 챙겨 가게 된다. 하지만 분명 그 강렬한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2층 쉼터.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사과를 간식으로 먹어도 배가 고프다. 자, 이 낯선 동네를 즐길 차례다. 동네 맛집을 찾아보니 꽤 리뷰가 좋은 일본 음식점이 있다. 혼자 점심을 먹을 땐 자주 일본음식을 택하게 된다. 혼자 앉기 민망하지 않은 바(?) 자리가 있고, 일본 음식 또한 좋아한다. 강렬한 봄햇살과 봄바람을 맞으며 '코우텐동'을 향해 동네 주민인 척 걷는다.

자리에 앉아 메뉴 가장 위에 있는 대표 메뉴 코우텐동을 시킨다. 튀김은 파삭하고 밥의 간도 환상이다. 그런데 이 가게! 생맥을 판다. 낮술을 먹을 수 있다니. 이렇게 더운 날 맛있는 튀김과 함께 먹는 생맥주는, 행복의 끝이 아닐까. 그런데 먹을 수는 없다. 아주 잠깐 순천에서 집까지의 대리비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모든 간이 딱 좋았던, 코우텐동

차를 마실까 도서관에 다시 들어갈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냥 동네를 걷는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빵집이 있다. 모도리빵집! 이름도 귀여운데 사람도 꽤 많이 들락날락하는 걸 보니 동네 맛집이다! 이끌린 듯 빵집으로 들어간다. 아니 커피가 3500원이다. 이런, 완벽하다! 퀸아망과 아이스커피, 식빵을 샀다. 식빵은 며칠 먹을 수 있고 주민이 주로 사는 빵이니, 이 동네를 즐기고 돌아가기에 완벽한 기념품이다. 아이스커피와 다디달고 바삭한 꾸띠아망을 먹으니 커피를 끊고 밀가루를 줄이기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마치 내가 아니라 타인인 것 만 같다. 오늘은 괜찮다. 오늘은 특별한 학교의 생일이고, 모처럼 혼자만의 여행이니까.

커피와 퀸아망은 완벽했다. 식빵도 쫄깃해서 그냥 먹기에도 무척 좋았다.

다시 도서관으로 간다. 3시가 넘어서 바로 옆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지났을 거다. 또한 주변이 아파트 단지라 아이들로 북적대는 도서관을 보고 싶었다. 어린이 자료실로 들어가 본다. 아이를 보긴 했다. 1명. 그래, 아이들은 늘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스케줄로 바쁘지. 이렇게 좋은 도서관이 옆에 있는 이 동네 아이들이, 나는 너무 부러운데 아이들은 이런 도서관을 누릴 시간이 없다. 하지만 분명 주말엔 책 속에 깊이 빠진 아이들로 넘실댈 것이다.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곧 북적거릴 것이다.


오늘 하루, 혼자 떠난 도서관 여행이 꽤 만족스럽다. 평생 와 볼일이 없을 낯선 동네이지만 또 사람 사는 곳이라 어디든 익숙하기도 한 풍경을 걷는 것이 참 좋았다.

유명 관광지에 혼자 여행을 갔다고 생각해 보라. 걷다 보면 분명 어딘지 쓸쓸해진다. 어디 구석구석 살피기도 쑥스럽다. 이내 다음에 가족들과 다시 와서 더 자세히 둘러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도서관 여행은 어떤가. 혼자 오면 더 좋다. 언제 가냐며 몸을 비트는 아이도 없고, 괜찮다고는 말하지만 휴대폰만 보는 남편 때문에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있고 싶은 만큼, 있을 수 있다. 책을 고르다 보면 나에 취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오롯이 나를 들여다보고 쉬는데 도서관만 한 여행지는 없다. 물론 책을 좋아한다는 전제가 만족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겠지만.


회귀 본능인지, 오후 2시가 넘어서부터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본다. 때마침 수업을 마친 아들에게서 전화도 온다. 아침에 도서관에 갈 거라고 이야기했더니 아직 집에 있으면 지금 같이 도서관에 가자고 한다. 엄마가 이렇게 먼 도서관에 온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렇게 나를 찾는 아들과 키는 나만한데 늘 귀여운 딸과 아재개그를 해대는 남편이 있는, 내 집으로 간다. 집에 가는 길도 기분이 좋다. 한번 가본 길이니 돌아갈 때는 올 때보다 더 편안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늘 새로운 길에 도전해야 한다. 한 번 가봐야 그다음이 쉬워지니까.



<순천 신대도서관>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좌야로 71 (061-749-4374)

-휴관일: 매월 첫째 주 월요일 / 일요일을 제외한 공휴일

-운영시간: 09:00~21:00

-대출 권수 및 기간: 1인당 1관당 최대 20권(통합 30권) / 2주간 대출

-따로 공부를 하는 열람실은 없으나 개방적인 구조로 좌석은 아주 넉넉하다. 여러 가지 체험이나 영상을 볼 수 있는 시설이 많아 도서관 행사를 즐기기에 매우 좋다.

-주변 동네는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라 깨끗하고 활기차며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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