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농업인
‘도시 농업인’ 체험장에서 우리는 만났다. 농사를 지어보거나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 나처럼 텃밭에 관심 있는 초보적인 사람도 있다. 들판에 펼쳐진 상추와 갖가지 농작물을 보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옛날 농사짓던 시절 수박이 먹고 싶어 아버지가 기르는 밭에서 몰래 수박을 먹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텃밭 가꾸기’란 공통점으로 열린 마음이 된다.
팀을 나누었다. 팀원끼리 테마를 담은 텃밭을 만들기로 하였다. 텃밭 제목, 설계, 꽃과 상추 배치도까지 완전한 텃밭을 꾸미기에 몰입이 되었다. 우리 1팀 열 명은 내가 제안한 ‘엄마의 정원’으로 제목을 정했다.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라면 작물이나 사람이나 쑥쑥 자랄 것이라는 마음을 설명했다. 사랑을 담은 심장 하트를 중앙에 만들고 메리골드로 채웠다. 하트가 돋보이도록 주변에는 허브와 꽃으로, 잎채소인 상추는 밭 입구에 심기로 기획을 하였다. 모종 심기가 시작되었다. 일심동체가 되어 그림을 그린 땅 위에 한 송이씩 모종을 심었다. 엄마의 심장 하트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2팀은 ‘아기자기 쑥쑥’ 밭이다. 튼튼하게 자라서 아기자기하게 꽃을 피우며 쑥쑥 자라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밭에 가면 옹기종기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제목을 생각해서 그런지 서로 키를 재는 듯 다정하게 속삭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팀은 ‘향기 나는 와이셔츠’ 밭이다. 옛날 와이셔츠 입고 근무할 때를 그리면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현실감도 있고 추억을 생각할 수 있는 기발한 착상이다. 텃밭도 와이셔츠와 넥타이. 단추까지 표현하고. 애플민트. 로즈메리. 방아. 상추 콜레우스. 멜리 포리 움으로 꾸며 놓았다. “오늘이 제일 젊다.”라고 하는 글귀가 생각난다. 누구에게나 지난 시간은 추억으로 남아 옛날이 그립다. 많은 사람들 공감대가 형성된 아이디어가 좋아 보였다.
폭염에도 몇 개의 선풍기에 의존해 비닐하우스 안에서 이론 수업을 듣는다. 수업 끝나면 밖에 나가 풀을 뽑고 농작물에 물을 준다. 배움에 대한 열기로 어느 누구도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론 수업과 풀 뽑는 시간이 끝나면 김치에 두부 막걸리 먹는 시간이다. 밭에 가서 어린 상추를 따서 씻은 적이 있다. 그런데 집에 나눠가져 가려고 상추를 따던 사람들이 “상추를 딸 줄 몰라 목이 달아났다.”라고 한다. 누군가가 “내가 상추 솎음했는데요.” 하니 웃음보가 터졌다.
작업은 넓은 밭에 풀 뽑는 일부터 시작한다. 감자밭에서 풀을 힘껏 당기니 성질 급한 어린 감자가 바깥세상을 보러 왔다. 아직 이르다고 알려주고 제자리에 깊이 묻어 주었다. 열심히 풀을 뽑고, 물은 고랑을 만들어 흘려 내려가도록 하였다. 풀을 뽑고 나니 감자나무가 웃고 있다.
흙냄새, 풀 향기가 좋다. 흙이 주는 특유한 냄새를 음미하며 풀과 친구가 되려 한다. 풀과 감자는 자리다툼이 심하다. 풀을 다 뽑아도 일주일 후에는 어느새 풀이 자라 흙이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밭고랑 위에 검은 비닐로 멀칭을 한다. 멀칭 위에 홈이 파인 막대로 고구마 순을 담아 흙에 묻으니 쉽게 고구마가 심어진다. 고구마 순을 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 고구마 철이 오면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한 잎 크기, 고구마에 배추김치를 얹어 한 입에 쏙 넣어 주시던 엄마가 생각나 울컥해진다.
차츰 텃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햇발을 즐기는 오이, 수박과 연지곤지 찍고 뽐내는 방울토마토, 튼튼한 감자나무 싱싱한 잎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하트에 담긴 꽃들과 상추는 잘 자라고 있을까, 열무에 벌레가 붙어 구멍이 숭숭 뚫렸지만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작물들은 땅 위를 헤집고 푸르른 세상을 향해 행복을 준다. 꽃과 식물은 키우는 과정은 힘들지만 어린싹과 잎, 꽃, 열매를 보는 재미가 행복을 준다. 생명력이 있는 것은 적응력이 좋다. '상추와 방울토마토를 심어볼까' 마당에 작은 스티로폼 박스를 준비해서 작은 텃밭을 만들려고 한다. 잎채소인 상추 자라는 모습, 빨간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만 생각해도 즐거움이 와닿는다. 마음은 이미 상추와 방울토마토 수확을 눈앞에 둔 농부 심정이다.
농사짓는 농부들 마음을 헤아려본다. 농산물 가격도 한해 수확량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다. 어느 해는 양파 값이 폭등을 하는가 하면 또 배추는 밭을 갈아서 엎는 한 해 피와 땀방울이 없어지는 해도 많다.
요즘 시골에는 노는 땅이 많다고 한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농기구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알지만 시골에 젊은이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재물 보기를 길바닥에 굴러 있는 개똥 같이 보고, 땀 흘려 농사짓는 생활에 자족했었다"’하는 <토지>에서 본 글이 생각난다. 세태 변화를 실감한다.
색체만으로 아름답다. 무엇을 더하지 않아도 다양한 색 조화와 사람 향기가 자연과 어우러진 밭이다. 상추를 한 잎 따면 하얀 물이 고인다. 내가 수확한 채소와 상추에 밥 한술 얹어 입 안 가득 쓴맛과 탄수화물 조화가 어우러진 맛을 즐기고 있다. 오이 넝쿨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 삶도 식물과 같다. 어린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사람들의 손에 열매를 안겨 주고 나면 제 할 일을 다 한다. 그리고 식물은 시든다.
여름을 담고 알곡 영그는 소리가 들리는 날, 텃밭 가꾸기도 마무리된다. 자연은 노래한다. 계절이 익어가는 삶의 향을...
텃밭 사랑이 끝나고 그림 같은 들판을 보면 더운 열기와 함께 한 사람들과 텃밭이 그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