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쓰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전 글은 아래 링크를 달았으니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봐주시면 이번 글이 더 잘 이해되실 겁니다^^
https://brunch.co.kr/@sugo30/192
https://brunch.co.kr/@sugo30/193
3편은 푸틴과 크렘린이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는 대전제 하에 작성되었습니다.
만약 정말로 푸틴이 미치광이이거나 오늘 당장 아마겟돈이 일어나 전인류가 멸종하거나 구석기시대로 돌아가도 상관없다고 폭주할 때 이를 막거나 제지할 참모진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고 생각을 전개한다는 뜻입니다.
비단 군사전문가, 국제관계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군필자로서 최소한의 군사지식만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전략핵은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민족을 지구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각오 없이는 사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국가, 상대민족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시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히틀러와 나치당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시도한 사례가 없습니다.
왜?
성공할리가 없으니까요.
또한 프로파간다로서의 선전전이나 강한 레토릭은 별론으로 하고 러시아의 전쟁목표가 러시아제국, 소련제국의 부활에 있지, 우크라이나와 그 민족의 멸절에 있다고는 전혀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핵무기 사용에 따른 후폭풍이 전술핵보다 훨씬 큰 전략핵을 사용할리는 만무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인용해 생각해볼 때,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말은 정치적 측면과 군사적 측면 모두에서 원하는 바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우선은 군사적 측면부터 고찰해보겠습니다.
ㅇ 우크라이나 주력군을 섬멸할 수 있을까?
우선 전술핵으로 우크라이나의 주력 야전군을 섬멸할 수 있다면, 군사적 측면에서 당연히 추구할만한 제1목표가 될 것입니다.
보통 현대전에서 주력 야전군이라 함은 일정수 이상의 기갑군단과 포병전력, 가능하다면 공격헬기 같은 항공전력까지 보유하여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여 적 주력을 섬멸하거나 전선을 우회, 포위기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집단군을 말할 것입니다.
일단 이러한 주력군이 섬멸된다면 남아있는 군으로 방어전을 전개하는 것은 몰라도, 적을 적극적으로 역포위 섬멸하거나 공세를 펼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니 주력군의 섬멸은 언제나 군사적으로 유효한 제1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술핵으로 우크라이나 주력 야전군의 섬멸한다는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첫째, 우크라이나 주력 야전군이 모두 한데 모여 "이 쪽에 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께요"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 상상이므로 주력 야전군 섬멸을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발의 전술핵이 필요합니다. 과연 러시아가 수십발이나 되는 전술핵은 사용할 수 있을까요? 또한 말씀드린 것처럼 우크라이나 주력 야전군이 기계화군단이라면 전술핵 수십발을 투하한다고 하여 모든 주력 야전군이 전멸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둘째, 설령 우크라이나와 앞으로 영구히 적대국가로 지내는 것은 각오한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 주력 야전군은 전선 근처에 배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술핵은 당연히 이번에 새로 병합했다고 주장하는 도네츠크주 등 현)러시아 점령지역에도 피해를 끼칠 것입니다. 내 나라, 내 땅(적어도 러시아 공식 주장으로는)에 전술핵을 쏘는 국가가 과연 존재할까요?
셋째,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서 전술핵 공격을 고려하였으나 실시하지 않은 전례가 있습니다. 아래 기사를 참조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들 아시다시피 산악지형이고 당시 중국군 주력은 보병이었음을 고려하면, 평야지대에서 전쟁을 하고 있으며 주력군이 빠르게 서방과 러시아(?)의 원조로 기갑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주력군을 섬멸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18756#home
ㅇ 적의 강고한 방어선 내지는 요새를 공격한다는 선택지는?
역사상 핵무기의 실제 사용사례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투하의 2번밖에 없지만, 견고한 적의 요새나 방어선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술핵을 사용한다는 선택지는 충분히 상황에 따라 고려될만 합니다.
다만,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그럴 일이 없습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죠.
현재 전쟁의 주도권은 우크라이나가 잡고 있으며 공세도 우크라이나가 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대내외적으로 영토의 완전한 수복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을 보더라도 지금 전선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견고한 요새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러시아 측면에서는 전술핵으로 공격할 견고한 방어선 내지 요새 자체가 없는 것이죠.
ㅇ 주요 군수공장 파괴를 통한 전쟁수행능력 약화
결국 푸틴과 크렘린이 군사적 측면에서 전술핵을 사용하는 목표는, 주요 군수공장 타격을 통한 전쟁수행능력 약화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제나 전쟁에서 보급은 단위 전투의 승패는 물론이고 전쟁 자체의 향방을 결정해왔습니다.
"로마군대는 병참으로 이긴다"라는 말이나 초한전쟁에서 파촉, 관중지방으로부터 소하의 쇼미더머니급의 무한보급이 전술적으로는 항우에게 판판이 깨지던 유방의 최종승리 원인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냉병기 시대에도 그랬을진데 하물며 현대전이겠습니까?!
제가 우크라이나의 주요 군수공장이 어느 지역, 도시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력 야전군을 섬멸하는데 드는 수십발은 아닐 것입니다.
많이 잡아도 1~20발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목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기보다 현실적으로 추진해볼 수 있는 군사적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측면에서 전쟁의 종결이란 결국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첫째, 상대방에 대한 제노사이드
둘째, 상대국 정부 등 수뇌를 제거하고 국민을 직접통치
셋째, 상대국 정부 등 수뇌와 협상하여 이익 확보
이 중 제노사이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유효한 선택지가 아니라 보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상대국 정부 등 수뇌를 제거하는 부분도 1편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키이우 전격전의 실패로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지입니다.
또한 현)젤렌스키 대통령 및 정부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지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낮아 보입니다.
"전술핵을 어떻게 사용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종전협상장으로 나올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전술핵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측면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이 저는 "항전의지의 상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니, 주력군이 보존되고 있고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데도 항전의지가 상실되었다고 전쟁을 끝내는 경우란게 있을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그런 경우가 존재함을 증명합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영제국은 콘윌리스 장군이 항복하는 등 타격을 입기는 했으나 본토와 식민지가 건재했고 영국 육군이 괴멸된 것도 아니었음에도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였습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제국은 만주에서 주력이 타격은 입었으나 여전히 전투 가능하였음에도 국민적 항전의지 상실로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만주와 한반도, 사할린반도 절반을 일본에 넘겼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은 주력이 궤멸되지도 않았고 개별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듭했으나 결국 북베트남과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났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서방의 지원이 있고, 주력군이 건재하더라도 국민들의 항전의지 자체가 상실된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종전협상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쓰다보니 긴 글이 되었네요 ㅎㅎ
결론적으로 저는 전술핵을 통해 러시아가 추구하는 군사적/정치적 목표 - 전쟁수행능력 및 항전의지 상실 -의 달성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ㅇ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한, 전쟁수행능력은 상실되지 않는다.
우선 주요 군수공장을 모조리 파괴당하는 것은 당연히 전쟁수행능력에 큰 타격이 됩니다.
또한 미국이 첨단무기를 지원하더라도 당장 전선의 보병이 사용할 소총탄이 없고 수류탄이 없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맞습니다.
다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미국'의 존재입니다.
지금도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연상시킬 정도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나가는 중입니다.
여기에다 러시아가 전술핵을 사용함으로써 명분과 실질적 필요성까지 제공한다면 우크라이나의 군수물자 지원에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우크라이나군에게 필요한 소련제 무기의 탄약보급 등은 인근의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이면서도 러시아와 척진 친서방 국가들에게서 조달하고, 미국은 첨단무기와 방공무기를 파격적으로 지원한다면 우크라이나의 전쟁수행능력은 상실되기는 커녕 강화될 것입니다.
ㅇ 일본과 달리 항전의지가 약화될 전황도 아니고, 속속 드러나는 전쟁범죄 정황 때문에라도 항전의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핵무기로 인해 항전의지가 상실된 유일한 사례가(애초에 핵무기 실전 사용사례가 1건이지만...) 일본입니다.
당시 일본은 연합함대가 사실상 궤멸되어 본토가 연합군에게 포위당한 상태였음에도 정신 못차린 육군이 1억 총옥쇄를 부르짖을 정도로 주전파의 입김이 강했습니다.
심지어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후에도 쿠데타를 시도하여 종전을 막고 전쟁을 계속하려고 기도할 정도였죠.
그러나 지금 우크라이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우크라이나 북쪽의 벨라루스는 사실상의 적국이라 할 수 있지만, 서쪽으로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는 우방국 내지 이에 준하므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일본과 달리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포위된 환경이 아닙니다.
일본이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일본과 소련의 중립조약도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전격적으로 만주의 관동군을 공격함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연합함대가 괴멸하여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함으로써 남방 자원지대와 만주, 한반도에서의 전쟁물자 보급이 끊긴 상태였지만, 지금 우크라이나는 EU와 미국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으며 보급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중일전쟁 당시 원-장루트를 통해 지속적인 영미의 지원을 받은 장개석의 국민당군을 일본은 끝끝내 패퇴시키지 못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탈환한 러시아 점령지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전쟁범죄 - 약탈, 고문, 강간, 학살 등 - 정황은 우크라이나 국민으로 하여금 적개심과 항전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요소입니다.
굽시니스트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일본은 진주만에서 미국을 맛깔나게 후려갈기면 미국이 "어맛! 나에게 이런 것은 네가 처음이야!"라고 하면서 강화하자고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 있으나...
만약 푸틴이 최종적으로 이런저런 검토 끝에 주요 군수공장이 있는 도시에 1~3발의 전술핵을 떨군다면, 그 목표한 바는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진주만 이후 항전의지가 꺽이기는 커녕 더욱 활활 불타올랐고, 그 이전에 존재하던 제2차 세계대전 불간섭 여론이 연기같이 사라졌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