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루에만도 수십, 수백번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선택은 아주 사소한 선택이 훗날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제 삶으로 한 가지 예를 들어 드리자면....
변호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제 인생은 지금과는 분명히 달랐을 것입니다.
단순히 직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로스쿨 동기를 통해 소개받은 지금의 와이프를 만날 수 없었을테니까요.
와이프의 출신학교, 전공, 활동영역 등 로스쿨 동기가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시나 로스쿨에 입학했어야 하는데, 로스쿨 1기생에 지원하였으나 불합격하고 앞날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4년간 남들이 다 해놓는 취업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전공을 살려 취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스쿨은 학벌, 학점, 스펙은 이미 정해져서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저 리트점수가 좀 올라갈 수 있는 정도로 재수를 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잘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어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일본 교환학생 시절 지도교수님에게 실수로 지메일 채팅을 걸게 되었고, 교수님께 지금의 제 상황과 걱정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네가 법조인이 되겠다는 것이 겨우 그런 것이었냐?"란 말씀에 바로 다시 한 번 준비하겠다고 결심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재수를 시작했습니다.
만약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지 않았더라면 법학에 흥미를 갖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설령 로스쿨이 생긴다는 말에 지원을 했더라도 지도교수님이 아니었다면 떨어지고 나서 그대로 인연이 아닌가보다하고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또 작은 우연이 있었습니다.
JLPT 1급을 교환학생을 지원하는 바로 그 시점에 갖추고 있지 않았더라면, 일본 교환학생을 갔더라도 제가 다녀온 대학으로 가지는 못했을 것이고 바로 그 대학이 아니었다면 법학부로 배속받을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과 달리 그 때는 JLPT를 1년에 1회만 치렀습니다.
당해년도 시험 접수는 해놓았으나, 일문과 입학 전 1급 시험을 보았으나 합격기준인 280점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별도로 시험준비를 많이 하지도 못해 시험을 보러갈까 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당일 시험장 입실시간 30분을 남겨놓고 '안 될 때 안되더라도 가서 시험은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마침 시험장이 집에서 가까웠기에 제 시간에 입실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해 시험 결과는 커트라인에서 9점 오버한 아슬아슬한 합격이었습니다.
명색이 일문과를 다니는 이상 언젠가는 JLPT 1급에 도전할 것이고 딸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그 타이밍에 1급을 따두지 않았더라면 일본 교환학생을 가더라도 제가 다녀온 수준있는 대학에, 그것도 법학부로 배속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없었더라면 법학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아니면 로스쿨 1회 입학지원하고 떨어진 뒤 그대로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변호사가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 와이프를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오게 마련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공부, 만나는 사람들
모두 가벼이 보지 마시고 작더라도 꾸준히 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대배우, 대감독이 된 두 분,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의 일화가 좋은 예입니다.
만약 봉준호 감독이 오디션에 떨어진 무명배우일 뿐이었던 송강호에게 메세지를 남기지 않았다면?
송강호 배우가 봉준호 감독 영화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할지라도, 첫 번째 영화 실패 후 그대로 포기했다면?
반대로 계속된 실패로 좌절한 끝에 송강호 배우가 배우의 길 자체를 접었다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의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고,
내가 삼시세끼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를 음으로 양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런 의미에서 제 브런치가 독자분들께 참고가 되거나, 잠시 읽는 재미있는 읽을거리이거나, 생각할 점을 제공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