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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Apr 05. 2017

100% 인생 vs 0% 인생

글을 다시 시작한다



1.

30% 인생

예전 대기업 다니던 시절을 빗댄 말이다.

일주일 중 주말 2일을 위해 평일 5일을 저당 잡힌 삶.

일주일의 30%를 위해 70%를 버티며 사는 삶.

그것이 과거 내 회사생활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왜 우리 인생은 30%만 살아야 할까?

난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100%를 살 수는 없을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회사에 줘버리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시간들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여길 수는 없을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의 나다운 모습들 중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걸까?

이런 의문들이 삼십 대가 되고 나서 더욱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실험을 하고 싶었다.

100% 인생이 가능할지

30% 인생을 박차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보기로 했다.




2.

퇴사 후 2년이 지났고, 창업 후 1년이 다 되어간다.

오늘도 나는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정신없이 일을 하고 회의를 하고 미팅을 하고 컨퍼런스를 하고 리뷰를 하고 자료를 만들고 엑셀을 채워 넣고 택시를 타고 수업을 하고 숙제를 배부하고 내일 일정을 살피고 이메일을 회신한다. 그렇게 어제를 보내고 지난주를 보내고 지난 주말 토일 내내 일을 하고 또 지지난 주에도 지지지난 주 지난달 지지난 달 지지지난달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창업 후 1년이 다 되어 가는 이 마당에.

모처럼 4월의 봄비가 내리고, 밤늦게 11시 평소처럼 퇴근하면서

무슨 연유인지,

아마 오늘 4월의 글쓰기 수업 첫 개강일이어서,

10여 명의 직장인 학생들과 '왜 글을 쓰는가?', '무엇을 쓸 것인가?'와 같은 주제들을 논하면서,

이렇게 매달 글쓰기 수업을 하는 주제에 정작 나 자신은 제대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오늘 온 어떤 직장인 학생 분의 그 말.

"왜 글을 쓰고 싶으세요?"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요.

제대로 글을 써 본 적은 없지만, 예전 친구랑 여행을 갔을 때

우연히 서로 각자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할 일이 없어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글이나 써야지 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그때 무척 행복했던 것 같아요."

라는 그 말이 퇴근길 빗소리에 담겨 자꾸 뇌리에 쏟아지는 것이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요.

글을 통해 나를 기억하고 정리하고 싶어요."


그래 그랬었다.

사실 나도 2년 전에는 퇴사 후 3개월간 글쓰기에 몰입했었지.


출처 : 도서 <퇴사학교>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막막하고 두렵고 불안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글쓰기에 탐닉했었지.

내 마지막 동아줄인 것처럼.

여기서 내 스스로 완결을 하지 못하면, 난 이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치열하게, 그리고 온 정성을 다해 내 자신을 내던지며

순수한 고독 속에서 붙잡던 글쓰기를

어느새 잃어버렸던가.


그렇게 지난 1년여간 창업이라는 거대한 지상명령 앞에

난 글쓰기를 단지 수업으로만 여기며

또는 페이스북에 바이럴을 내며 공유하거나 홍보할 거리가 있을 때에만 글을 억지로 썼었지.

그렇게 내 창업에 사업에 스타트업 운영에 도움이 되는 글들만 가끔 공유하곤 했었는데.

어느새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나는 글을 잃음과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3.

이렇게 어제와 지난주와 지난달과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일하고 피곤한 와중에

지친 노구를 이끌고 굳이 퍼질러 자지 않고 아주 오랜만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유는


어쩌면 100% 인생을 살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0% 인생을 살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단 하루도 편히 쉰 적이 없다.

단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았고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을 때, 또는 가끔씩 봄비 소리가 들리거나 목련이 피어오르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나는 몇 프로인가?


그나마 대기업을 다닐 때는 내가 30%라도 가져가는구나 싶던 인생이,

이제는 몇 프로 인지도 셀 정신도 없을 만큼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조급하게 나를 얽매이는 듯

어느새 창업자의 강박이 나를 생존에 목매인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회사도 퇴사도 돈도 사랑도 인생의 기쁨도

그리고 이렇게 봄 비 내리는 봄 날도

나를 스쳐간다.



4.

비로소 이렇게 글을 쓸 때라야

나는 깨닫게 된다.

30% 인생이 싫어서

100% 인생을 찾아 떠난 내가

어느새 0% 인생의 현실을 살게 되었을 때,


사실은 말이지.

0%는 결국 100%와 똑같다는 것을.


오늘 이 하루를 글로 마감할 수 있을 때,
0%인 나의 하루는 비로소 100%가 된다는 것을.


기꺼이 기껍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날로 새로이 태어난다.

그것들을 남겨야겠다.


페이스북에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브런치에 공유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멋들어지는 글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잘 지내요 이미지 메이킹하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을 되찾기 위해.

창업도 사랑도 인생도

결국은 나 자신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다시금 복기하며.


글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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