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종류의 선택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해야 하는 것, 내가 말할 수 있는 것

by 서수

이런 착각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뭔가 대단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철학의 주요 주제인 '인간'에 대한 문제의식은 신기할 정도로 동일하며 비슷한 주제가 반복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각, 감정, 이성, 감성, 진리, 도덕, 종교, 아름다움, 존재, 죽음, 성, 언어, 기술, 사회, 국가, 공동체 등등 '인간' 자체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물리적 신체를 지닌 인간이라는 '종'이 보이는 특성에까지 다양한 주제 같지만 2,000년 이상 축적된 사유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방법론의 혁신적인 변화를 제외하고 주제 자체는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인간에 대한 고찰은 나아가 인간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 즉 사회와 국가에 대한 고찰로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고찰에 이르게 된다. 나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논문을 쓸 당시 우리나라의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상황, 불합리와 불공정과 비상식이 난무하는 엄청난 재앙 앞에 분노하고 있었으며 마침 읽고 있던 텍스트가 정치적인 것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관한 것이었기에 내 논문에 이러한 내용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당시 나의 논문 주제는 공동체에 근접해 있었다. 전체주의적 공동체, 반-전체주의적 공동체.


당시의 사회적인 정황과 맞물려 나는 논문에 자꾸 정의감에 불타는 나의 마음을 담아 그런 생각들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몇 년 뒤에 읽으면 이불킥을 할 법한 그런 글들을. 쓸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나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쓸 것인가,

내가 말해야 하는 것을 쓸 것인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을 쓸 것인가.

이 셋 중에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내가 좀 더 자기애가 강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그리고 누가 봐도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가감 없이 썼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무언가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내가 말해야 하는 것을 나의 양심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석사학위를 늦지 않게 무사히 받고 싶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므로 최대한 절제하여 내 능력에 맞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을 쓰는 것으로 선택을 했다. 어쩌면 내게는 이 선택지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 능력의 범위 내에서, 오만하지 않게.

어쨌든 나는 박사가 아니라 석사이며, 주제 넘게 오버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 자기애에 취해 내 글인데 뭐 어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타인의 죽음에 대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 논문을 위해 함부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고민한다. 나중에 내가 내 글에 대해 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때 나는 무슨 글을 쓰고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해야 하는 것? 내가 말할 수 있는 것? 그때는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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