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죽은 회사원 이야기
사망 시간 : 2019년 11월 15일, 12:46:23
"꺄아악!"
주위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아스팔트에 고무 타이어가 밀려서 내는 시끄러운 마찰음으로 회사원 김 씨는 그의 죽음을 알았다. 신체적인 고통은 아마 그다음이었을 것이나 그걸 미처 느끼기도 전에 그는 죽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회사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한 채 달려오는 트럭에 정면으로 부딪혀서.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었던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죽고 난 뒤에 잠시 정신을 잃은 그는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업무가 생각나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그가 주재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 회의에는 상무님과 전무님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조금이라도 늦거나 회의 자료가 어긋나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먼저 팀장에게 전화해 자신의 죽음을 알렸다. 아니, 보고했다. 그리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 창원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자신이 죽었으니 얼른 짐을 챙겨서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말했다. 기차표를 끊으면 카톡으로 몇 시에 서울역에 도착하는지 남겨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마도 회의 준비와 인수인계로 정신이 없을 테니까.
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망연자실해했다. 그중에는 그가 트럭과 부딪히는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충격을 받고 한동안 사무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사자는 이미 들어와서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자기 자리에 돌아와서 일단 회의에 쓸 자료들을 출력하고 PPT 파일을 드라이브에 올렸다. 회의는 팀장이 대신 진행할 것이므로 팀장에게 간략하게 회의에서 짚어야 할 중요한 안건들을 보고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후임으로는 옆 팀의 박 과장이 올 거라고 했다. 박 과장은 김 씨보다 직급이 높았고, 일을 꼼꼼하게 하는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최대한 인수인계 자료를 자세하게 만들어야 했다.
"자기, 인수인계 파일을 만드는 건 좋은데... 그래도 어머니 뵈러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아 네, 과장님. 어머니는 지금 올라오신다고 했어요. 저도 이것까지만 만들고 가보려고요."
"아유... 어떻게 된 게 그 트럭 운전자는 운전을 그 따위로, 참... 너무 안타깝게 됐어. 아니, 그걸 그렇게 자세히 작성하는 중이었어? 우리 김 프로 일하는 거 진짜 후배들이 다 보고 배워야 된다니까. 이렇게 일 잘하는 사람이 너무 일찍 갔네. 이건 진짜 우리 회사의 큰 손실이야, 회사가 뭐야, 나라의 손실이지. 대충하고 들어가."
"네, 과찬이세요. 다 되면 메일로 보내드리고 문자 넣겠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밖은 벌써 어둠이 내려 있었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졌다. 그는 아차 하고 휴대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가 수도 없이 와 있었고,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어머니는 끝내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했다고, 기차표도 버스표도 서울 가는 건 다 매진이었다고 했다. 오늘은 금요일이었고, 금요일엔 서울 가는 기차가 일찍 매진되니까. 그제야 김 씨는 짐을 챙겨서 회사를 빠져나왔다. KTX 어플로 창원 가는 기차표를 찾아보니 막차는 일찍이 마감되었고, 새마을 호 한 대가 남아 있었다. 그는 그 길로 서울역으로 향했고, 새마을 호에 올랐다.
지금 시간 저녁 7시 30분, 도착 예정 시간은 0시 9분이었다. 어머니가 주무시지 않고 계셨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서울로 올라올 일은 없으니 고향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고봉밥을 먹고, 마당에 있는 강아지들이랑 놀고, 아버지 산소에도 한번 올라 가 뵙고, 창원에 있는 친구 녀석들 얼굴 좀 보고, 고등학교 때까지 다니던 교회에도 한번 가 봐야지.
고향 가는 기차 안에서 그는 눈을 감고 밀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