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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 Oct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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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털 알러지에 의한 아나필락시스로 죽은 사람 이야기

사망 시간 : 2022년 08월 31일, 16:34:01


가족이랑 연을 끊은지는 오래됐다. 폭력적인 성향의 아빠와 그걸 방조하기만 한 힘없는 엄마 때문에 어린 시절은 고통스러웠고, 성인이 되면 돈이 있든 없든 무조건 독립하고 연을 끊기로 10대 때부터 계획을 세워 놓았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내가 길을 잃은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술에 취한 아빠가 뭘 이런 걸 데리고 왔냐며 창 밖으로 강아지를 던져버린 사건이었다. 강아지는 당연히 죽었고, 나는 그 충격에 몇 날 며칠을 고열과 몸살에 시달려 학교를 쉬어야 했다. 

성인이 되어 따로 살기 시작한 후부터 나는 유기견과 유기묘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일이 생각나서 강아지든 고양이든 입양해서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다 지역 커뮤니티에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러 다닌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사 오기 전 살던 동네에서 시작한 일이 이렇게 꾸준히 지속될 줄은 몰랐다. 전에 살던 곳은 서울의 중심 부였어서 길고양이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래서 길고양이들을 케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는 그들이 이미 배치해 놓은 사료통에 내 당번일에 사료와 물을 채워 놓기만 하면 되었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서울 근교의 한적한 동네여서 길고양이들이 거의 눈에 띠지 않았는데, 얼마 전 한 빌라 옆 쓰레기 수거장에 있는 박스 안에서 작은 아기 고양이를 발견했다. 어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며칠 동안 우유와 물만 주고 지켜봤는데 어미는 끝내 나타나질 않았다. 이대로 두면 위태로워 보였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고양이를 집으로 들였다. 

그게 화근이었다. 43살 평생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고양이 털이 내 호흡기로 들어가는 순간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왔고, 죽음에 이른 시간은 아마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죽기 직전 고양이 꼬리가 내 손에 닿는 느낌이 마지막이었다. 이름도 지어주지 못했는데. 


죽음 직후 깨어나자마자 나는 이 일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렸다는 사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동네 근처의 장례식장을 찾아본 뒤 전화를 걸었다.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마지막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가장 먼저 고민하고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처음 전화를 건 병원 장례식장은 빈소가 큰 데만 있다고 해서 작은 빈소가 있는 장례식장으로 예약을 했다. 장례식장 앰뷸런스는 정확히 24시간이 지난 시간에 이 집으로 와달라고 했고, 공동현관 비밀번호도 남겨 놓았다. 우리 집 현관문은 열어 놓을 예정이었다. 

어차피 부를 사람도, 올 사람도 많지 않았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상조회사에는 미리 가입해 놓았었다. 상주로 부를 사람이 마땅치 않았으므로 장례지도사가 모든 걸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입한 상조회사는 1인 가구 전용 상조회사로, 몇 해 전부터 급속 성장한 회사였다. 1인 가구가 많아짐에 따라 발인뿐 아니라 화장까지 마무리해주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내가 사망한 사실을 전화로 알리자 바로 내 담당 장례지도사가 배정되었다. 그는 내게 매장, 화장, 자연장 중에 어떤 것을 할지 물었고, 나는 잔디형 자연장을 선택했다. 그게 가장 저렴했다. 

빈소는 3일장이 아니라 1일장으로 하기로 했다.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얼마 안 되는 연락처에 메시지를 남겼다. 대부분은 길고양이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내가 담당한 지역의 순번은 변경해달라고 커뮤니티 장에게 쪽지를 보냈고, 그의 조언대로 어제 데려온 이름도 없는 아기 고양이는 유기묘 센터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장례지도사에게 내 앞으로 들어오는 부의금과 내 통장에 있는 돈은 모두 유기묘 센터와 길고양이 커뮤니티에 기부해 달라고 부탁했다. 


장례 절차를 알아보고 계약하고 미리 돈을 이체하고 금융 거래를 마치자 저녁이 되었다. 나는 그제야 아기 고양이를 품에 안아 볼 수 있었다. 안고, 입 맞추고, 털에 내 얼굴을 부비고, 마음껏 고양이와 놀았다. 고양이는 내 얼굴과 손과 발을 핥아 주었다. 내 안에 결코 아물지 않았던 상처들이,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 홀로 앉아 있던 상처 입은 내 어린 자아가 그제야 치유되기 시작했다.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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