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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 Oct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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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맥시멀리스트의 죽음

사망 시간 : 2019년 04월 20일, 21:05:33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당근 거래를 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밤이었다. 그날따라 왜 맨날 쓰던 헬멧은 안 썼는지, 라섹 수술 이후로 야간 빛 번짐 현상이 왜 그날만 유독 심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단지 이번에 당근에 나온 매물 중에 그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원피스 피규어 '조로 대 미호크'가 올라왔다는 알림을 받자마자 바로 채팅을 걸고 서둘러 운전하다가 급커브 내리막길에 맞은편 차량의 하이빔에 시야가 하얘지자마자 핸들이 꺾였고 오토바이가 쓰러졌던 것. 뒤에 오던 차량들이 그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2차, 3차로 밟고 지나갔던 것. 그것이 전부였다. 


    '아, 그 사이에 누가 챗 걸어서 가로채가면 어떡하지?'


쓰러지면서도 들었던 생각은 오직 피규어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기다려온 건데. 판매자가 가격을 좀 세게 불러서 찝찝했지만 어차피 어떤 가격에든 수집하려고 했던 피규어 중 1순위였던 거라 아까운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걸 거래하러 가다가 죽게 된 것은 정말 아까웠지만. 

그는 쓰러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시동을 걸어 거래 장소로 향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어서 판매자가 집 앞에 나와 있었다. 원피스 피규어를 손에 들고.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아이고, 죄송해요. 급하게 오다가 죽었어요."

    "오다가 뭘 주으셨다고요?" 

    "아뇨, 오다가 오토바이 넘어져서 죽었다고요."

    "네??"


놀란 판매자를 뒤로 하고 피규어를 소중하게 안아 안장 아래 공간에 넣었다. 드디어 방 한쪽 벽면 전체에 위치한 원피스 피규어 진열장이 완성되었는데, 그 역사적인 날에 죽다니 그는 너무 슬펐다. 그럼 이렇게 애써 모은 피규어들은 다 어쩌란 말인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지금 살고 있는 자취방에 있는 부피가 큰 가구들부터 하나씩 당근마켓에 매물로 올렸다. 방 2개, 화장실 1개, 거실, 그리고 분리된 주방을 갖춘 20평대의 작지 않은 집이었지만 워낙 물건이 많아 이사 온 이후로 한 번을 편하게 다리 뻗고 눕지를 못했었다. 방 2개 중 하나는 오직 피규어들만 들어갈 수 있는 피규어 방이었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와 노트북과 아이패드와 전자 키보드와 기타와 디제잉 장비와 DSLR 카메라 장비들과 요가 매트와 바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잠은 주로 거실 소파 위에서 웅크리고 잤다. 거실에도 65인치 TV에 XBOX와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스위치 기계들이 서로 전선이 엉킨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오래돼서 많이 낡고 헤진 소파와 식탁, 식탁의자, 책상, 책꽂이, 컴퓨터 의자, 수납장 등은 무료나눔으로 올렸다. 생각보다 가구는 많지 않았다. 올리자마자 챗이 울렸다. 


    "저요."


문 앞에서 찾아가라는 메시지를 남긴 뒤 현관문 바깥에 가구들을 옮겨 놓았다. 가구는 해결이 되었는데, 문제는 첫 번째 방에 있는 피규어들과 두 번째 방에 있는 여러 디지털 장비들이었다. 디지털 장비들이야 하나씩 올리면 된다 치고, 피규어는 겉보기에도 수백 개인 듯한데 이걸 한꺼번에 올려야 할지 하나씩 올려야 할지, 한꺼번에 올린다면 캐릭터별로 묶어야 할지 라인별로 묶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는 가장 관심도가 떨어진 물건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운동 용품들. 카메라 관련 용품들은 매물 사진을 찍어야 하므로 가장 나중으로 미뤘다. 컴퓨터 모니터와 본체, 노트북, 아이패드를 팔려고 하니 지금 시세가 얼만지부터 찾아봐야 했다. 

    

    "어? 이게 이 가격에 나왔다고?"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애플사의 아이패드 에어 3세대와 애플 펜슬 1세대가 세트 구성으로 25만 원에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4세대가 출시되어 종전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된 듯했다. 그는 그가 죽은 게 먼저인지 매물을 잡아야 되는 게 먼저인지 고민하다 일단 판매자의 안심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이 상품에 관심 있어 연락드립니다.>

피규어 진열장을 여니 한숨만 나왔다. 너무 많아서라기보다는 자식새끼마냥 귀중하고 소중한 피규어들을 남의 손에 떠넘기고 삶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중에는 초등학생 때 학교 앞 문방구 자판기에서 동전을 넣고 뽑은 피카츄 피규어도 있었다. 그가 가진 첫 번째 피규어였다. 그때부터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 것이 30년이 지나고 보니 이렇게 쌓인 것이었다. 그는 피규어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을 모조리 다 기억했다. 피규어들은 그의 역사였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그의 캐논 카메라로 피규어들을 찍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눈물이 앞을 가려서 카메라를 놓고 눈물을 닦고 찍기를 반복하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사진을 다 찍고 난 뒤에는 당근마켓과 중고나라 사이트에 매물을 올렸다. 

피규어 사진 밑에는 간단한 설명을 달았다. 얘는 12살 생일선물로 받은 것, 얘는 수능 끝나고 간 첫 일본 여행에서 사 온 것, 얘는 옥션 사이트에서 경매로 샀던 것, 얘는 예전 여자 친구랑 커플로 들여왔던 것 등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 온 '조로 대 미호크' 피규어 밑에는 <이걸 사다가 죽었습니다. 그만큼 귀한 겁니다.>라고 달고 택포 40만 원에 올렸다. 

당최 집에 모셔놓은 물건들과 피규어들이 워낙 많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24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곧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상품에 관심 있어 연락드립니다. 조로 대 미호크 택포 30만 원 쿨거래 안될까요?>


그는 입 밖으로 진한 욕을 내뱉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문자에 대한 답은 미루기로 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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