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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 Oct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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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 가스 폭발 사고로 죽은 사람 이야기

사망 시간 : 2018년 01월 20일, 23:14:45


평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차렸다.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극도의 섬세함과 예민함을 동원한 완벽한 정성으로. 그런 삶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신경질적인 성격과 마른 몸, 그리고 불면증이 전부였다. 아, 막대한 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펜트 하우스에 살 만한 재력과 함께. 그렇지만 이 넓고 완벽한 집에 내 육신이 머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는 일상,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만 하는 직업의 특성상 정작 이 집에 거주한 시간보다 내가 죽은 레스토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사망 원인은 가스 폭발로 인한 사고사였다. 레스토랑은 많이 낡았지만 전통과 역사가 있는 건물 1층에 자리했다. 낙후된 가스 배관이 문제였다. 다행인 것은 사고 당시는 영업시간이 아니었고, 여러 식재료들을 연구해서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나의 오래된 습관 때문에 오밤중에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생긴 사고였다. 사망자는 1명. 그 자리에 손님들이 없었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 영업 중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그렇다고 나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는 희생적인 인간도 아니었다. 한 번의 실패한 결혼 생활을 통해 그 사실을 늦게 알았다. 전 남편과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1년 여 정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둘 다 적은 나이는 아니었으므로 연애도 결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이었고, 서로의 직업과 재산, 양가 부모님들의 수준이 비슷하고 딱히 대화를 함에 있어서 막히는 것도 없고 아주 잘 까지는 아니어도 통하는 부분이 많았으므로 무난하게 결혼을 했다. 연애 기간 동안에는 크게 싸운 적도, 크게 부딪친 적도 없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정도 나이에, 그 정도 연봉에, 그 정도 직업이면 조금 거만하거나 자기주장이 세거나 고집이 있을 만도 한데, 오히려 겸손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사에 나를 존중해주었고, 웬만한 부분은 나에게 다 맞춰 주었다. 다만 내 안에 끝없는 갈증과 갈구의 늪을 그가 메워줄 수는 없었다. 그는 밑 빠진 독 같은 나의 영혼에 그의 사랑을 부었다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용량인 것을 확인하고는 나가떨어졌다. 그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서 그를 닮은 아이도 낳아 기르며 충분히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 때문에 이혼 경력이 남은, 겉보기에 결혼 실패자처럼 보이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 죄책감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밤중에 레스토랑을 찾은 거였는데. 전처의 사고사는 그에게 또 얼마나 큰 상처를 주게 될까.


나는 내게 주어진 24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한 삼시 세 끼를 아주 정성스럽게 차려 먹으면서 보내기로 했다. 사고가 나 폐허가 된 건물 안에 아직 누워있을 때 든 생각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음식을 차린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없었다. 나도 남이 해 준 음식이 제일 맛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죽고 나서야 나를 돌아보니 나의 관심과 사랑에 굶주린 내가 보였다. 그런 나에게 가장 맛있고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해 먹이고 싶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제일 먼저 식재료를 사기 위해 집 앞에 있는 <죽은 사람을 위한 24시간 식자재 마트>에 들렀다. 아직 이른 새벽 시간인데도 머리 위에 하얀 링을 달고 다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마트인지라 마트 안에는 팥이나 마늘, 소금 같은 재료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채소, 과일, 해산물, 각종 고기류 등등은 산 사람을 위한 마트나 백화점에서 파는 그 어떤 것들보다 싱싱하고 비쌌다. 어차피 24시간 내에 먹어야 하고 돈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거라 사는 사람에게도 파는 사람에게도 이로운 시스템이었다.

머릿속에 구상한 아침, 점심, 저녁, 야식을 위한 재료를 담으니 카트가 금방 찼다. 나는 계산을 하고 배달 서비스를 요청한 뒤 집으로 왔다.


아침 메뉴는 오렌지 드레싱을 곁들인 지중해식 문어 샐러드. 와인으로는 알레그리니 소아베를 선택했다. 자숙문어를 찜기에 찌고, 방망이로 두드려 준 뒤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감자는 웻지 모양으로 썰어 올리브 오일과 로즈마리를 올리고 오븐에 구웠다. 채소는 적양파, 토마토, 바질을 사용했고 레몬즙 대신에 내가 개발한 오렌지 드레싱을 얹어 마무리했다.


    '내가 이 오렌지 드레싱으로 남자 여럿 울렸지. 다들 맛있다며 환장을 하며 먹었는데 나는 죽어서야 제대로 먹어보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로열 코펜하겐 블루 플레이트에 담아 와인과 함께 서빙했다. 집에 있는 홈웨어에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했는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드레스룸에서 편하지만 약간은 포멀해 보이는 원피스로 갈아 입고 식사를 했다.

점심은 부라타 치즈를 올린 무화과와 잠봉 뵈르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샐러드에는 트러플 오일, 꿀, 페퍼로 드레싱을 했고, 잠봉 뵈르에는 이즈니 생 메르 무염버터와 잠봉, 체다 치즈, 뮌스터 치즈를 넣었다. 해가 잘 드는 거실 창가에 놓인 티테이블에 서빙을 했고, 캐주얼한 식사였으므로 편한 청바지와 셔츠로 갈아입고 식사를 했다. 그 사람과 프랑스 여행을 가서 길거리에서 사 먹은 잠봉 뵈르 생각이 났다. 분기별로 프랑스로 출장과 레시피 개발을 핑계로 한 여행을 다녔는데 갈 때마다 잠봉 뵈르는 꼭 한 번씩 먹었었다. 아주 단순하지만 신선하고 정직한 재료로 만든 투명한 맛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안은 너무 꼬여 있어서 사랑하면 사랑한다, 좋아하면 좋아한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는 단순하고 정직한 표현을 할 줄 몰랐다. 늘 감정을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세련되고 교양 있는 거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것이 타인을 속이고,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속여서 내가 만든 거짓말에 갇혀 사는 줄도 모른 채.

저녁은 내 레스토랑에서 가장 인기 있고 매출 효자인 프렌치 랙 스테이크 코스 요리를 만들기로 했다. 전채는 차갑게 먹는 감자 스프와 따뜻한 크림치즈에 찍어먹는 바게트 빵을 냈다. 메인인 프랜치 랙 스테이크는 타임, 로즈마리, 마늘, 레몬 껍질을 갈아서 올리브 오일에 섞은 뒤, 프랜치 랙에 올려 오븐에 구웠다. 가니쉬로는 라따뚜이를 곁들였다. 옷은 그 사람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선물로 받은 지방시의 블랙 원피스를 입었다. 지금 입으니 마치 상복 같기는 했다. 그럼 나는 하루 동안 날 위한 제사상을 차린 걸지도 모르겠다.

야식으로는 채끝살을 올린 짜파구리를 먹기로 했다. 라면은 당연히 2개를 끓였다. 이제는 살이 쪄도 상관이 없고 다음 날 아침에 폭식으로 인한 죄책감을 느낄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계란 후라이도 올리고 마지막엔 접시 바닥에 남은 소스에 흰 밥도 비벼서 파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그리고는 굉장한 포만감이 밀려왔다. 내가 나를 배불리 먹였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스러운 느낌이었다. 나의 가슴에 난 구멍이 천천히, 촘촘하게 메워지고, 텅 빈 가슴에 풍성한 식사를 매개로 밀도 있는 애정을 부어 넣으니 자존감이 살아나고 스스로가 좋게 보였다. 내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 평생을 풀지 못한 숙제였는데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오기 전에라도 그 숙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배가 부르자 기분 좋은 졸림이 온몸을 나른하게 휘감았다. 그래, 배가 부르면 졸린 거였는데 이제까지 불면증을 왜 약으로 해결하려고 했을까. 순면으로 된 홀가먼트 룸웨어를 입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로 했다. 폭발사고로 불행하게 죽은 것처럼 여겨졌지만 실상은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내 시신이 발견되기를 바라면서.


주방에 산처럼 쌓인 설거지는 그냥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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