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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수 Nov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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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범죄자의 죽음

사망 시간 : 2018년 07월 15일, 20:13:56


김 형사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도 자신의 동기들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리를 박차고 나와 폼나게 출동하고 싶었다. 사건 현장을 덮치거나, 치밀하게 범인의 동선을 파헤쳐서 딱 마주친 범인과 육탄전을 벌이다가 그 손에 수갑을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인원 충원이 안 돼 몇 명 안 되는 인원이 전부인 썰렁한 경찰서 책상에 앉아 죽은 사람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육상 선수 출신에 합기도 9단인 김 형사에게 책상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주된 업무는 죽은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머리 위에 하얀 링을 단 사람들이 자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신고하러 오면 그들을 돕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경우가 면식범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한 여러 증거물들을 가지고 와서 특정 사람을 범인으로 신고하러 오는 것이었고, 간혹 가다 익명의 가해자에 의해 피해를 입어 사망 경위를 직접 설명하러 오기도 했다. 전자의 경우엔 일이 매우 간단했다. 피해자가 범행 현장에서 가해자의 얼굴을 봤거나 그의 지문이나 타액 같은 것을 묻혀 오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피해자는 죽고 나서 깨자마자 경찰서로 곧바로 오기 때문에 범인이 범죄 사실을 은닉할 시간이 부족해 범인 검거율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물론 물적인 증거가 없이 피해자의 진술로만 범인을 특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그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적이어서 99.9%의 확률로 범죄 사실이 인정되지만 아주 간혹 가다 피해자의 진술이 거짓인 경우도 있어 이 때는 무고죄가 적용되어 허위로 진술한 사람은 유치장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한편, 익명의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어 경찰서를 찾는 후자의 경우엔 일이 매우 복잡해진다. 물론 피해자의 진술은 구체적이고 일관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해 24시간 내에 범인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에 사건은 일반 경찰서로 이관되거나 합동 수사를 하게 된다. 범죄자는 언젠가 잡게 되겠지만 24시간 내에 검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오기 전까지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워하는지를 김 형사는 너무 자주 봐 왔다. 그래서 더 일반 경찰서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김 형사는 하품을 쩍쩍 해대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때 딸랑-하며 문에 달린 방울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어김없이 머리 위에 하얀 링을 단 남자가 들어왔다. 얼굴 표정이 매우 처연한 것이 딱 봐도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게 틀림없었다. 김 형사는 남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한숨을 짧게 쉬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세요. 무슨 일 신고하러 오셨어요?"

    "아, 그게 저..."

    "편하게 말씀하세요. 사고로 돌아가신 건가요, 아니면 특정인에 의해 돌아가신 건가요?"

    "저, 사실 자수하러 왔습니다."

    "네? 아니, 무슨 사건에 대한 자수요?"


김 형사는 의자에 기대어 비스듬하게 앉았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수라니. 여기서 근무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죽은 사람이 자수하러 온 적은 처음이었다. 물론 종종 죽고 나서도 헛소리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와서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긴 해야겠지만 보통은 자신이 죽고 나서는 경찰서에 시간을 허비하러 오지는 않으니까.


    "형사님, 저는 죽기 전까지 도벽을 못 끊었어요.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보육원 원장님 지갑에 손을 댔죠. 학교에서는 잘 사는 것 같은 애들 운동화나 지갑을, 대학에 가서는 핸드폰이나 노트북을요. 사실 자전거랑 스쿠터도 훔쳤어요. 졸업하고 운 좋게 취직이 됐는데 제가 돈을 벌면서도 도벽을 고치기는 힘들더라고요. 직장에 여직원들이 명품백을 들고 오면 훔쳐서 중고명품 사이트에 팔았고, 수법이 더 대담해져서 여러 사람 자동차를 훔쳐서 중고차 시장에 팔았어요. 어떤 날은 직장 동료가 결혼을 해서 집들이를 했는데 그 집에서 서로 예물로 주고받은 명품 시계와 보석을 훔쳐가지고 나오기도 했어요. 돈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습관적인 도벽이었어요. 이것도 나름의 병이었죠. 

도벽이 번져 도박이 되었고, 도박을 하려면 돈이 필요해서 도박빚을 졌어요. 갚을 능력은 당연히 없었고요. 도박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진짜로 장기를 매매하는 꾼들이 있었고, 제 장기를 담보로 빚을 냈어요. 그 결과는 지금 보시는 바와 같지요. 저는 그 사람들을 신고하러 온 게 아니에요. 사실 너무 어둡기도 하고 아는 얼굴도 아니어서 신고랄 것도 할 수 없는 사정이고요. 

그냥, 저 때문에 속상하고 슬프고 화나고 힘들었을 사람들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딱히 방법이 없어서 찾아오게 됐어요. 비겁하게도 살아 있을 때 자수하지 않고 죽고 나서야 자수하러 여기를 찾아왔네요. 

형사님, 저는 연고가 없어서 24시간 이후에 제 시신을 처리해 줄 사람도 없는 놈이에요. 죽고 나서 돌아보니 제 인생이 참 비루하고 가엾고 애달프고 그렇네요. 어떻게 장례 하나 치러줄 사람 없이 살았는지. 제가 연고가 없다고 가족을 만들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그 사람이 결혼하자고 할 때 그냥 할걸, 그랬네요. 내가 뭐라고 나 좋다고 하는 사람을 거절하고 상처 주고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형사님, 여기 제가 자란 보육원 연락처예요. 저를 돌봐주신 원장님은 이미 돌아가셨는데, 선생님들은 아직 살아계실 거예요. 혹시 저를 기억하시는지, 사랑으로 돌봐 주셨는데 그렇게 크지 못하고 이런 못난 모습으로 커서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폐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제 장례를 치러줄 수 있는지도 알아봐 주시겠어요? 물론 찾아올 사람도 없겠지만요. 아주 잘하면 제가 다니던 직장 사람들이 와줄지도 모르고요. 

형사님, 물론 저는 도벽에 사로잡힌 도둑놈에 사기꾼이고 아주 잡범 중에 잡범이에요. 저는 왜 생전에 이걸 정신질환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치료할 생각을 못했을까요. 저에게는 아주 깊은, 채워질 수 없는 그런 결핍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물건들로 채우고 싶었고, 도둑질이라는 방법을 활용했던 거죠. 제가 그 사람들 물건을 훔치고 나서 그들이 속상해서 울기도 하고 너무너무 괴로워하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봤거든요. 그런데요, 그 마음에 제가 공감을 못하고 있더라고요. 미안해하지도 않더라고요. 그런 제 모습이 끔찍한 괴물 같았는데, 평생 제 마음의 소리에도 귀를 닫고 산 사람이니까 타인의 마음은 더더욱 알 길이 없었겠죠. 

형사님, 저를 벌해 주세요. 저는 벌을 받고 싶어요. 지금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이런 마음을 품고 이제 떠나야 하는 게 정말 괴롭습니다."


김 형사는 매우 난처했다. 이런 경우에 피해자들이 신고를 했다고 해도 이미 가해자가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김 형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벌을 받겠다고 찾아온 범인이 실은 그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비난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자신의 죗값을 치를 기회를 영영 놓쳐서 죄책감을 덜지 못한 상태로 생을 마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김 형사는 그가 애처롭기도 했다. 그가 시작하고 싶어서 개시한 인생이 아니었음에도 갓 태어난 연약한 존재에게 주어진 인생의 짐이 너무도 무거웠다. 범죄자에게 감정 이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였으나 죽은 뒤에 갈 곳이 없어서 찾아온 데가 고작 경찰서였고, 그의 가엾은 영혼에 대해 아무 권한도 없는 경찰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할 수밖에 없는 그가 안돼 보였다. 


그래서 김 형사는 그를 돕기로 했다. 그의 장례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그가 알려준 보육원에 연락해서 그와 같은 시기에 같은 보육원에 있었던 선생님들과 지인들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고 장례식에 와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그의 학교 동창들에게도, 대학 동기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도 동일하게 연락을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말한 도난 사건들의 조서를 일일이 찾아서 그 피해자들에게 이제야 밝혀진 가해자의 장례식에 와 줄 것을 요청했다. 조의를 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정 사진에 대고 침을 뱉거나 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져도 된다는 말을 추가적으로 전했다.

그가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와 함께 떠난 뒤 김 형사가 준비한 그의 장례식 당일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상주에 이름을 올린 김 형사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팔에는 완장을 차고 조문객들을 맞았다. 첫날에는 대부분 보육원 사람들과 학교 동창들, 직장 동료들이 다녀갔다. 그의 개인사를 몰랐던 사람들은 가족석이 비어 있고 전혀 뜬금없는 사람이 상주 역할을 하는 데에 적잖이 놀랐다. 

둘째 날이 될 때까지 김 형사가 생각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피해자들이 와서 장례식장을 엎거나 난리를 피우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장례식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 형사가 예상했던 대로, 혹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문을 했다.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들어와서 국화꽃을 영정 사진 밑에 휙 던지고 간 사람도 있었고, 자기 지인들을 여럿 데리고 와서 밥만 먹고 간 사람도 있었고, 그에게 도난당한 물건의 사진을 가지고 와서 국화꽃 대신 놓고 간 사람도 있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아주 정중하게 예를 표하고 상주인 김 형사에게도 절을 하고 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열에 아홉은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해줄 법한 욕설을 조문의 방식으로 승화시켜서 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장례가 다 끝나고 그의 바람대로 화장을 마친 뒤 김 형사는 담배 하나를 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경찰서에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가 오는 경우를 대비해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작성해서 상위에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 고마웠다. 매너리즘에 빠진 김 형사에게 그는 새로운 일거리를 주고 간 것이다. 담배 연기를 뱉으며 김 형사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봐요, 마음의 짐이 좀 덜어졌어요? 피해자들은 당신의 죄를 비난했고, 당신을 알던 사람들은 당신을 기억하고 찾아왔어요. 당신이 바라던 모습이었지요. 다음 생이 있다면 말이지만, 다음 생에는 결핍 없는 곳에서 태어나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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