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수 Nov 01. 2020

10

죽음 이후의 영생을 포교하러 다닌 종교인의 죽음

사망 시간 : 2019년 12월 31일, 23:59:09


그녀는 어릴 때부터 늘 죽음 이후가 궁금했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뛰어난 문명을 일구어 왔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서 살기보다는 더 잘 살기 위해 쉬지 않고 무언가를 개발하고 혁명을 이루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단순히 수십여 년을 살다가 수명을 다하고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거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분명 인간에게는 죽음 이후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고, 이런 그녀의 확신은 그녀를 매우 종교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은 종교 중에서도 성경을 근간으로 하는 유일신 사상에 입각한 종교에 천착하게 되었다.


    "저기요, 혹시 CGV 가려면 여기서 어디로 가야 돼요?"


그녀의 하루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냥 다짜고짜 죽음 이후에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아시냐고 묻게 되면 10명 중에 10명은 그녀를 혐오하는 눈빛으로 쳐다본 뒤에 휙 지나쳐 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길을 물으면 10명 중 서너 명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녀에게 길을 알려 주었다. 그러면 그녀는 감사의 뜻으로 캔커피를 선물하였고, “죽음 이후에는 영생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작은 책자를 건넸다. 책자의 한 귀퉁이에는 그녀의 이름과 연락처가 인쇄된 라벨이 붙어 있었고, 혹시 성경에 관심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책자를 건네면서 그녀는 십자가의 도를 아느냐고 물었고, 모르면 같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물론 멈춰 서서 그녀의 얘기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전에 길거리 전도를 마치고 나면 점심을 먹고 그녀는 본인이 사는 지역구에 있는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 그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했다. 매번 어느 교회의 전도사가 참석하여 공부를 이끌어 주었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뛰어나게 잘한 건 아니었지만 필기 하나는 열심히 했던 그녀는 공책에 빼곡하게 성경 말씀과 그날 배운 내용들, 성경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점 등을 시커멓게 써 내려갔다. 적용점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더 열심히 전도하고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과 이익은 철저하게 내려놓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짧게 길거리 전도를 이어서 하고, 근처 교회 예배당에 가서 기도를 한 뒤 집으로 귀가해서 성경을 읽고 잠이 든다. 이것이 그녀의 보통 일과다. 길지 않은 29년의 인생 중에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쭉 이런 삶을 살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그저 성경에 나온 말씀 한 구절을 의지하여 광야에 외치는 자의 모습처럼 금욕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살다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사는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가 원인이었다. 한밤중에 곤히 자고 있던 그녀는 차마 빠져나오지 못했다. 


숨이 멎은 뒤에야 깨어나서 빌라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머리 위에 하얀 링을 단 채 한참을 빌라 밖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드디어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해왔던 대로 죽음 이후의 영생에 한 발자국 가까이 온 셈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그녀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든 보내야 했고, 24시간을 기다리면 영생에 접어들 것이었다. 


    "저기, 학생."

    

멍하니 앉아있던 그녀에게 어떤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같은 빌라에 혼자 살고 계시던 할머니였고, 할머니 역시 화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학생, 미안한데, 내가 다리가 불편해서 그런데 이걸 옆 동네에 사는 내 딸한테 좀 전해줄 수 있을까?"

    "이게 뭐예요?"

    "내가 나라에서 나오는 돈을 조금씩 모아둔 건데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긴 힘들 것 같아서 그래. 학생 혼자 쓰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는 거 알지만, 이 늙은이를 좀 도와주겠니?"

    "..."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원래 그녀가 생각한 계획은 평소와 다름없이 길거리 전도를 하려던 것이었다. 머리에 하얀 링을 달고 전도를 하면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산 자의 말보다 죽은 자의 말을 더 신뢰하는 법이니까. 할머니의 부탁을 들으려면 일정 부분의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할머니는 옆 동네라고 했지만 들어보니 버스로 30분 이상 가야 하는 동네였다. 


    "네, 알겠어요. 제가 전달해드릴게요."


원래 같았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양보할 일 없는 그녀이지만, 화재로 인해 같은 날 죽은 처지여서인지 할머니가 유독 안돼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할머니의 쌈짓돈과 딸의 주소를 받아서 호주머니에 넣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딸의 집은 오래된 다세대주택 1층이었다. 1층이었지만 약간 지대가 더 낮아서 반지하에 더 가까웠다. 초인종을 누르자 인상이 좋은 중년 여성이 나왔다. 그녀는 딸에게 할머니의 일을 설명했고 돈을 전달했다. 딸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당장 할머니 집으로 가야겠다고 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다했으므로 뒤돌아서서 집을 나오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저기요,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사실은 지금 근처 지하철 역에서 노숙인들 아침식사 봉사를 가야 하는데 아침 봉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제가 안 가면 진짜 큰일 나요, 그 사람들 굶어요.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 대신 잠깐만 가서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저기... 이미 고인이 되신 것 같아서 이런 부탁이 너무나도 송구하지만, 제가 가는 길에 전화 해 놓을게요. 무례한 부탁인 거 알지만 한 번만 도와주세요. 죄송해요."


죄송하다고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그 여성은 그녀를 남겨두고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다. 혼자 남은 그녀는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는데 이상하게 그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지하철 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 역 앞에는 이미 천막이 쳐져 있었고 아침 식사를 하려는 노숙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준비하던 봉사 단원 중 한 명이 나와서 연락받았다면서, 어떻게 죽고 나서도 이런 봉사를 하실 생각을 다 하셨냐며 정말 복 받으실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답을 못하고 어물쩡하게 있다가 건네주는 앞치마를 받고 밥과 국을 퍼서 노숙인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화재로 죽었구먼."


노숙인 중에 한 명이 그녀를 보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녀의 몸에 나 있는 화상을 보고 한 말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내 딸도 자네랑 비슷한 나이었을 거야. 내가 못난 애비가 되어가지고 그날도 술 마시느라 집에 늦게 들어갔지. 그렇게 집이 홀랑 다 타버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내 딸은 지 애비 원망하느라 24시간 동안 나를 보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갔다네. 망할 것. 불쌍한 것. 나는 내 죄를 속죄하려고 죽기 전까지 이 모양으로 살기로 했는데, 그러다 보니 오늘 자네 같은 사람도 만나는구먼. 마치 먼저 간 내 딸이 지 애비 용서하려고, 지 애비 보려고 찾아온 것 같네그려. 고맙네. 그냥, 다 고맙네."


늙은 노숙인은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실거리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코에서 콧물이 흐르고, 입에서 침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계속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예, 예 하고 말았다.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이 다 돌아가자 남은 봉사단원들은 식기와 쓰레기를 치우고, 천막을 거두었다. 그녀도 앞치마를 반납하고 이제 집으로 가려는데 아까 말을 건넨 봉사단원이 다가오더니 혹시 지금 가능하면 보육원에 점심 봉사를 하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이쯤 되니 그녀는 참기 힘든 짜증이 올라왔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죽은 건 생각 안 하고 이기적으로 구는 건지, 죽은 사람한테 24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그 시간을 왜 멋대로 가져가려고 하는 건지. 


    "이제껏 제가 봉사활동을 30년이 넘게 해 왔지만 이렇게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봉사하러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그건 당연한 일이죠, 본인이 죽은 마당에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우러 오겠어요. 저라도 당연히 그렇게 못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 모습을 보면서 30년 이상 봉사활동 해온 게 무슨 소용인가, 누굴 돕는다고 하는 게 언제부터 내 약력에 한 줄 들어가는 게 되어 버렸나 싶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보면서 한없이 제가 겸손해지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붙잡혀서 그녀는 보육원까지 오게 되었다. 보육원 봉사까지만 하고, 길거리 전도를 하던 곳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보육원에는 이제 갓 태어난 무연고 아동도 있었고, 장애 아동도 있었고, 부모의 학대를 피해 맡겨진 아동도 있었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보니 약간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그녀는 사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4년제 대학 유아교육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꿈을 접었고, 마음이 힘들었을 때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사람을 만나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지금의 삶을 살게 되었다. 아주 버린 줄 알았던 그녀의 꿈이, 억눌러져 있던 오랜 바램이 비죽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쩌다가 죽게 됐어요? 죽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저도 나중에 죽게 되겠지요? 저는 나중에 천국에 가고 싶어요. 천국에는 눈물 흘릴 일도 없고, 아픈 일도 없고, 괴로운 일도 없다잖아요. 정말 그래요? 그런 거라면 선생님, 저는 빨리 죽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길거리 전도를 하면서 그녀가 사람들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자주 했던 말이 믿으면 천국 가지만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이었다. 지옥엔 꺼지지 않는 불의 심판이 있을 거라는 말도. 하지만 그녀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더 지옥 같은 현실을 경험해버린 아이에게는 더더욱. 


    "아까 보니까 그림을 엄청 잘 그리는 것 같던데,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니?"

    "어?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저기에 붙어 있는 저 그림 있잖아요, 그것도 제가 그린 거예요. 원장 선생님이 잘 그렸다고 저기 붙여 주셨어요. 저는 잘 그리는 건 모르겠고, 그냥 좋아서 그리는 건데 사람들이 다 잘 그렸대요."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아이들이 자랑하고 싶을 때 자주 쓰는 제스춰였다. 


    "그럼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음... 아니요, 그냥 시간 때우기 용으로 그리는 거죠. 음... 앞의 말은 거짓말이었고요, 네, 계속 그림 그리고 싶어요.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요."

    "그런 재능은 아주 귀한 거야. 너에게만 특별히 주신 하나님의 선물 같은 거야. 그 꿈을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 나중에 그 꿈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아, 그때 머리에 링 달고 온 선생님이 절대 포기하지 말랬지, 하면서 끝까지 너의 꿈을 현실로 이루길 바랄게. 천국은 그다음에 생각해도 돼."


그녀도 자신이 뱉은 말에 놀랐다. 자신이 이중인격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성경공부를 하면서 길거리 전도를 해 왔던 자신이 천국을 나중에 생각하라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아이 앞에서 그녀는 가장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얘기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 말씀을 핑계로, 종교적인 생각을 핑계로 내세우며 정작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뒤에 숨긴 걸지도 모른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오늘 선생님을 만난 게 행운 같아요. 크리스마스는 벌써 지났지만 뒤늦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이는 그날 본 얼굴 중에서 가장 환한 웃음을 지으며 놀이터로 갔다. 봉사단원은 보육원 봉사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보육원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보육원 간판에 이런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그녀는 그 구절을 보고 잠시 벙쪘다. 이제껏 자신이 해 온 길거리 전도가,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종교적인 삶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요란한 빈 수레같이 느껴졌다. "너는 나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삶의 신조로 삼아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건만 지금 돌아보니 남는 게 없었다. 일방적인 스피커였던 것이다. 진짜 사람, 그녀와 같이 숨을 쉬고 따뜻한 피가 돌고 만지면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사람,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한숨만 나오는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그녀의 옆집에 살던 할머니, 지하철 역에서 마주쳤던 노숙인,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그녀 주위에 있었다. 과연 그녀는 길에서 마주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건인지, 그들의 삶에 관심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자문했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오기 전에 그녀에게 이런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말을 걸어 준 옆집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러 다시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한 뒤에 그녀는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이런 모습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만한 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이전 10화 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