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공사와는 무척 다른던 밤공기
들이마시는 공기에서 단맛이 났다. 달디달디달디 달디달디달디 달디달디달디 달디단 밤공기였다. 단맛은 사실 6시가 넘어가는 저녁무렵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공기를 입으로 들이마실때면 솜사탕에서 나는 그런 단맛이 실제로 입속에 은은하게 퍼졌다. 오늘은 라 시에네가 거리를 갔다. 주말마다 LA에서 가보지 않은 동네 이곳 저곳을 돌아보기 시작한지 벌서 두달여가 됐다. 라 시에네가 거리에서 바로 옆 지하철역이 있는 컬버시티까지 걸어가는 길에 마신 공기였다.
디지털 기기에 쩔어 있어서 그렇게 부정적이고, 닫혀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낮의 태양은 무자비하지만 그래도 밖으로 걸어나가보면 LA에 살면서 외출하지 않는것만큼 바보같은 짓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마다 집콕 성향이 다른것도 사실이고, 어느쪽이 진실이라 단정하는게 꺼려지는것도 사실이지만 이 도시에서의 외출에 대해 방금 던진 말을 번복할 일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공사장에 일을 하러 나가는 평일마저도 이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LA의 외출은 첫번째로 늘 상상못한 새로움을 던져주고, 두번째로 전혀 모르는 타인과 적어도 한마디 이상을 주고받게 해주고, 세번째로 햇볕이 나의 어딘가를 녹여준다.
가장 가까이 오늘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오늘은 몸이 무거운 탓에 라 시에네가 거리에서 컬버시티로 이어지는 거리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가볍게 둘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마주한 볼드윈 파크의 언덕 샛길로 빠져서 대대적인 트래킹을 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지하철 30분 거리인 LA 다운타운은 물론이고 360도 전방위적으로 펼쳐진 도시공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를 경험했다. 멀찍이 태평양 바다 한쪽까지 시야에 걸려드는 전망좋은 언덕이었다.
오는길에 햄버거집에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테이블이 없었다. 그래서 4인석에 홀로앉은 흰수염 듬성한 아저씨에게 합석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고보니 단말마의 대화였지만 그래도 낯선 타인과의 대화는 대화였다. 문단도 단말마에 어울리는 짜리몽땅한 문단이 될것만 같다. 좀 더 써보자. 아마 내 얼굴에 뭔지모를 위기와 그에대한 불안의 기색이 없었다면 나에게 말을 걸어왔을 아저씨였다. 그러나 나는 때마침, 불현듯, 햄버거를 앞에둔 바로 그 시점에 올한해 남은 다섯달 동안의 예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예정에도 없었던 예산산정이었다.
예산을 생각하면 캘리포니아의 8월에도 한국의 12월같은 겨울이 찾아올 것 같다. 하지만 외출은 외출이다. 이번 나들이 역시 얼어있던 나의 어딘가를 분명히 녹여줬기 때문이다. 얼어있던 나의 어딘가가 녹았다는 말은 사실, 오늘 막 공사를 마친 주택 계단 설치 작업에 비하면 너무나 모호한 말이다. 모든 계산과 재단이 정확해야 계단이 완성된다. 계단은 어찌보면 하나의 가구와 같다 - 고 마크 소장은 말했다. 30도가 넘어가는 한낮의 공사장은 얼음 아니라 돌덩이까지 녹어버릴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녹아버려서 아쉽거나 안타까울만한 것들이 아니라, 녹기를 기다려왔거나, 기다렸을법한 그런 마음속 얼음도 녹여준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포항 집앞 바다에서는 아침해가 떴다. 하지만 여기 로스앤젤레스 라 시에네가 거리에서 이어지는 볼드윈 힐 트레일 코스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타모니카 해변의 바다위로는 저녁해가 진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도시의 아침과 저녁이다. 해가 어느새 다 넘어가고, 언덕을 내려와 컬버시티를 걸으면서 또 한번 양갱의 2%정도 될듯한 단맛을 느꼈다. 솜사탕을 사놓고 못먹는 벌칙에 걸려서 솜을 뜯진 못하고, 솜 근처를 낼름거리며 공기를 삼킨다면 날법한 단맛이다. 그렇게 달디단 밤공기. 달디달디달디단 밤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