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마리오의 건축과 문화를 잇는 배관공사

by 가소로

지상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슈퍼맨의 비행이라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날아오르는 것은 슈퍼 마리오의 점프다. 밑바닥의 삶을 지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마리오의 점프가 갖는 의의는 지상의 삶을 천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에 못지않다. 배관공이 관리하는 상하수도 배관은 냄새의 파편을 미연에 수거함으로써 보통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보통의 삶 속에서 보통의 사람은 특별할 것 없지만, 내가 출퇴근길 버스에서 마주하는 냄새를 생각하면 상하수 배관의 역할은 가히 영웅적이라고 할만한다.



건축이 건물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보다 건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문화에 대한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된다. 건축과 문화의 상관관계는 늘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주제였다. 늘상 문화의 일부로서 논해지는 건축 아닌가 싶지만, 건축을 순수한 기술로만 보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만큼이나 문화와는 무관한 분야일 수 있다. 건축 일을 하면서 오히려 기술적인 부분에 더 골몰하다보니 문화와의 접접에 소원해 지는 건지도 모른다. 건축 공간에 담기는 삶을 생각하면 건축 = 사람의 문화 그 자체, 이건만 구태여 저 등호의 얼굴을 확대해 들여다 보지 않고는 못배길듯한 마음이 된다.


그냥 건축은 다들 문화래, 하고 흘려들은 결론으로는 부족하다. 그 연관성을 증명하기 위한 단서들이 나에게 없진 않다. 두가지 단서를 몇주 전부터 들여다보는 중이었는데 - 우선 공간 속에서 사람의 냄새를 전보다 자주 맡게 되는 것, 그리고 웅성이는 대화의 잔상에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되는 것이 그 둘이다.


첫번째 냄새의 경우 공사현장 출퇴근길의 버스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러나 회의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버스에서의 평온을 깨뜨리는 냄새의 습격이 문화로서의 건축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른아침 몽롱하고도 비장한 출근길의 각오를 무너뜨리는 누군가의 냄새. 그리고 정신없는 현장일 뒤에 찾아오는 탈진과 아늑함 사이의 어딘가에서 젖어드는 몽상을 화들짝 깨고드는 그런 냄새.


두번째로 대화는 지난주 휴가동안 몇차례 방문해 오래 머물렀던 컬버시티의 북카페가 대표적이다. 출근을 해야하는 시기에는 루틴에 쫓겨 여간해선 들르기 어려운 컬버시티의 북카페는 여느 카페들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힘든 질서 같은게 공간 속에 감돈다. 그곳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앉으면 내가 잘 정돈된 세상과 튼튼한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런 후각적, 청각언어적 기억들이란 특별할것 하나 없는 평범한 기억들이지 않은가, 건축과도 거리가 먼 감각들. 냄새에 건축을 굳이 붙이자면 배관 디자인(Plumbing) 정도일 것이다. 냄새 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노숙인이라는 데에 있다. 그들은 일상적인 물공급과 하수처리 시스템의 혜택 밖에 있다. 그들이 몰고다니는 냄새는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날 수 있는 냄새다. 여기서 '보통' 사람이란 상/하수 배관 시설이 잘 갖춰진 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말하는데, 그들은 수도 배관의 도움으로 냄새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착실히 그 편린들을 다른 어디론가(하수처리장 같은 곳으로) 보내버림으로써 보통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슈퍼 마리오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마리오의 직업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릴적 하던 아케이드 게임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 마리오는 좌에서 우로 달려가면서 점프를 하며 벽돌같은 네모 천장을 박살낸다. 그러다가 점프를 해서 상하로 뻗은 파이프의 입구에 올라서면 장면이 전환되며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 두가지 인터페이스는 배관공이 실제로 하는 일을 거시적으로 요약한 요점정리와 같다. 첫번째로, 배관공은 주로 벽이나 천장 속에 있는 배관을 손보기 위해서 벽을 허물고, 천장을 뜯는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둘재로, 벽이나 천장을 개방하고 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미지의 파이프 공간 속을 종횡무진 헤집는다.


미국의 주택 내부의 파이프는 주로 2-4인치(약 5-10cm)로 얇지만, 도시 차원에서 파이프는 한 사람이 기어 들어가기 충분한 크기다. 그래서 슈퍼 마리오 게임에서 마리오 형제가 파이프를 통해 공간이동을 하는 인터페이스에는 실질적인 설득력이 있다. 게임 뿐 아니라 영화 역시 비슷한 고증을 스토리 전개에 활용한다. 1993년에 나온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는 이미 멀티버스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그들은 벽을 허물고 들어간 지하 배관 공간에서 차원을 이동해가며 모험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30분 이상을 보기 힘들만큼 재미없는 영화라 결말을 알지는 못한다는게 아쉬울 뿐.


마리오 형제의 영웅적인 활약에는 어떤 목적이 담겨있을까. 이 글의 논리에 기대어 추론해보자면, 배관공 마리오 형제의 활약은 보통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냄새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마리오는 스스로 지하에 매설된 배관 속으로 뛰어듦으로써 지상에서의 타인들의 삶을 구원한다. 마리오 덕분에 대중은 눈살 찌푸리지 않고, 의식도 하지 못한채 맑은 공기를 편안하게 들이마신다. 나아가 역시 냄새나지 않는 동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컬버시티의 북카페에서 그런 대화를 나눈다. 모든게 정돈된 공간에서, 커피향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불시에 냄새가 습격하기 일쑤인 출퇴근길 버스에서는 향유하기 어려운 대화들이다. 슈퍼 마리오의 직무수행, 배관공의 직업의식 덕분이다. AI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튼이 아들에게 배관공이 되기를 권하겠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AI에게는 냄새가 나지 않지만 사람은 하루이틀만 안씻어도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사람이 살아있는한 배관공이 필요하다.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 그것은 바로 배관공.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서 건축과 문화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 보자. 배관(Plumbing) 디자인이 건축의 일부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배관 디자인이 냄새없는 지상에서 대화의 문을 열어주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사람들의 대화속에 문화가 담긴다. 그렇게 보면 건축과 문화 사이에 아주 견고한 다리가 놓여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 다리가 아니라 사람이 드나들만큼, 마리오 형제가 드나들만큼 커다란 파이프로 이어져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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