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루틴

퇴사 후 일상

by 뚜작


Day 8


퇴사 후 필사적으로 루틴을 만드려 노력하고 있다. 게으르게 지나다가 허송세월을 보낼까 싶어 지레 겁먹었기 때문인데. 그동안 근무시간에 맞춰있던 강제 루틴에서 나 만의 뉴 루틴을 잡는다는 건 매우 어렵지만 좋은 방법이다.

습관이 들고 루틴이 되는데 보통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니, 난 이제 막 예비 루틴이 생겨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 내 하루일과. 즉, 예비 루틴은 이러하다.


8시: 월/수만 필라테스

9시: 독서 & 간편식(요거트+그래놀라)

10시: 카페(커피) & 글쓰기

13시: 영어필사

14시: 강의 듣기

17시: 독서

18시: 집안일

19시: 저녁준비


특히나 정확한 시간에 개근하고 있는 루틴은 월, 수 오전 8시부터 8시 50분까지 진행되는 필라테스 수업이다. 유일하게 월 수업료를 내고 얻은 유료루틴. (수입이 없을 때 유료루틴을 한다는 건 굉장히 큰 결심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운동이 너무 싫었기에 체력이 떨어지는 걸 몸소 느끼면서도 운동할 생각을 안했다. 퇴근 전/후의 시간을 쪼개 운동으로 채우는 것보다는 그냥 누워있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이득이라 여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필라테스에 등록해 수업을 나가고 있으니 체력이 얼마나 바닥인지는 굳이 수치로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총 정원이 7명인데 등록한 사람은 4명뿐이라 1:4 수업이 되었다. 3명부터는 폐강이라 마지막 등록자였던 나에게 선생님은 내 덕에 수업이 살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말은 나의 의지를 더욱 불태웠고, 빠지지 말고 꼭 루틴으로 자리 잡자는 다짐을 하게 해 주었다.)

1:4 수업이지만 정작 4명이 수업을 들은 적은 단 1번뿐이다. 빠지는 사람이 꽤 잦다. 돈을 내고도 빠지는 건 왜 그런 거지 하고 의문이 들었는데 요즘은 나도 눈을 뜰 때마다 가지 말까 하는 속삭임이 머릿속을 맴돈다. 주로 1:2 수업이 될 때가 많은데 처음에 자세를 엄청 잡아주시던 선생님이 점점 되는 데까지 하라고 말씀하시는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 물론 포기하지 말라는 말도 같이 해주시기에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몸이 맘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분명 눈앞에서 선생님의 자세를 보고 그대로 하려고 움직이는데 몸은 왜 같은 자세를 잡지 못하는 건지 의문이고, 잘 따라 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땀도 안 나는데 왜 매번 알이 베기는 건지도 의문이다.


7년 전쯤, 퇴근 후에 발레핏 수업을 들었었다.

기억하기론 월, 수, 금 오후 8시부터 8시 50분까지 주 3일 수업이었고 1년을 다녔지만 마지막까지 바른 자세를 찾지는 못했다.

그 당시 선생님도 처음엔 자세를 엄청 잡아주셨는데, 점차 다그치기 시작하시더니 (물론 화를 낸 게 아니라 매우 분위기 좋은 다그침이었다.) 마지막엔 거의 포기하셨었다. 그렇게 그 당시에도 찾지 못한 유연함을 몸이 더 굳은 이 나이에 다시 찾으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

오늘 수업에서는 유연성이 심각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뭔가 불안하다.

또 한 분의 선생님이 나를 포기하려는 느낌이 온다. (제발…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그다음으로 무료루틴이지만 빼먹지 않고 하려는 루틴은 글쓰기다.

카페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라도 조금이라도 뭔가 쓰려고 애쓰고 있다.

내가 퇴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몇 년간을 그토록 바라온 시간이기도 해서 더욱이 이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끄적여 보기도 하고, 기획안이랑 대본을 써보기도 하는데 여러 목표 중에 하나는 이렇게 어딘가에 하루에 하나씩의 글을 남기는 것이다.

루틴을 잡는데 걸린다는 3개월, 즉 90일간 매일 쓰고 싶은데 일단은 놓치지 않고 잘하고 있어서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퇴사하면서 또 달라진 점은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때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20살 이후로는 확실히 일기를 써왔다. (일기장이 꽤 쌓여있다.) 그러다가 요 몇 년 사이 일기장을 보면 비어있는 날이 꽤 많은데, 일에 치여서인지, 게을렀던 것인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으련다. (심지어 작년 일기장은 몇 달 치가 비워져 있기도 해서 일기장이 거의 새거다.)

아무튼 그 일기를 올해부터는 다시 꾸준히 쓰고 있다. 자기 전에 일기장을 편다는 것, 그리고 하루의 느낌을 적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 외에 영어필사, 강의, 독서 등은 하루이틀 빼먹기도 하지만 나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어는 그저 잘하고 싶고

오랜만에 듣는 강의는 몇 년간 자고 있던 뇌를 다시 깨우는 듯하고

독서는 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 든다.


부디 3개월 뒤에도 이 모든 루틴이 남아있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꽤 스윗한 어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