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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로움 Oct 30. 2020

유해한 세상

엄마가 된다는 것은 유해한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

나의 세상은 임신을 알게 된 전, 후로 나뉘는 것 같다. 세상은 임산부로 살기에 온통 유해한 것들로 가득했다. 아기를 품은 엄마가 하루를 보내며 겪는 불편함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심지어 임신 5주 차인데도 말이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곧바로 좋은 생각들로 나를 채우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방어적일 정도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 위해 모든 세상의 중심을 나로 바꾸어버렸다. 이기적인 10달을 보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좋은 생각이란 건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마법을 지녔다. 어느 날은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나 머리 톤다운 염색하길 너무 잘했어, 마음에 들진 않았는데 이거 안 했음 뿌염이 시급한 임산부가 될 뻔했어". 또 어느 날은 우리에게 찾아온 아기가 복덩이임이 틀림없다며 모든 것을 핑크빛 안경을 쓰고 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임산부에게 유해한 것들 천지였다. 술, 안돼요. 담배, 안돼요. 이런 건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밖에 여자라면 상식처럼 알고 있는 카페인, 파인애플, 비타민A 등등 다양하게 피해야 할 것들이 있다. 나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큰 오산이었다. 


임신하고서야 깨달은 사실인데 거리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들에게 허용된 흡연공간이지만, 임산부에게는 숨을 참고 지나가야 하는 고통스러운 구간이었다. 간접흡연으로 인해 ADHD 발병 확률이 6배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접한 뒤로 담배연기는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내가 품은 아기를 위해 피할 수밖에 없는 유해 환경이 되어 버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카페에 가면 마실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커피를 못 마신다 = 다른 음료를 마시면 된다.'라고 생각하지만, 녹차, 홍차, 초콜릿에도 카페인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만 제해도 메뉴판의 90%는 날아가 버린다. 선택지는 결국 생과일 주스밖엔 남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전엔 커피 메뉴 외에 이상한 메뉴가 왜 이렇게 많은 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찾게 될 것을 알고 준비된 메뉴였다는 걸. 



이렇게 겨우 일주일 사이에 느낀 유해한 것들에 대해 남겨 놔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샤워를 하고는 BHA 성분의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다. 문득 이 성분은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어 검색해보니 BHA는 살리실산의 종류로 아스피린으로 잘 알려진 해열, 진통 성분의 화학물질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임산부는 BHA 성분은 사용하지 않기를 권장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나는 다시 세수를 했다. 화장대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가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한참 동안 생각했다. 



임신이란 건 본능적인 일이란 걸 깨닫는다. 본능적으로 내가 품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일들을 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유해한 것을 차단하는 것부터 모든 스트레스로부터 로그아웃하는 것 까지. 


그럼에도 내 안에 쌀알만 한 크기의 아기란 존재는 신기하게도 나를 행복하고 기대하게 만든다. 미래가 기대되고 설레는 감정은 사회 초년생 이후로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 같은데, 사실 비교가 안될 만큼 기대감이 몽글몽글 샘솟는다. 내 안에 그 몽글몽글한 희망이 자라난다니. 분명, 아기는 세상 모든 유해한 것들과 싸워서 지켜내 주고 싶은 그런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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