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마음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도 괜찮아

by 이수진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항상 에너지를 과하게 쏟게 된다. 물건을 살 때는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지 아닌지,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시간을 과하게 쏟는다.

나는 명확하게 세상을 정의 내리고 싶다. 내가 가는 길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무조건 옳은 길을 찾아야 할 것만 같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정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달렸고, 구불구불한 길을 걷고 있다고 느껴질 때면 불안해졌다. 불확실성을 끌어안기에는 그동안 너무 많이 넘어져서 그런 걸까?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하나 둘 나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끔 내가 만들어낸 기준은 나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저 사람은 위험해.', '저기는 안전한 곳이 아니야.'하고 말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혼자의 공간을 만들었다. 나의 공간은 안전했지만, 두려운 마음은 커져만 갔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무한한 사랑을 주고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싶었다. 내 마음은 늘 맑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순간은 자주 찾아왔다. 세상은 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내가 품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났다. 자주 상처 받던 마음은 벽을 쌓기 시작했다. 음의 벽은 점점 두꺼워졌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시를 드러내기도 했다.

뽀송한 마음에 검은 물이 들기 시작하면 내 마음을 망가뜨린 사람에게도, 무너져버린 내 모습에도 화가 났다. 그리고 그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음이 늘 맑을 수만은 없는데, 조금 회색 빛깔이어도 괜찮은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흰색 마음은 착한 사람, 검은색 마음은 나쁜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었지만 회색빛 마음을 볼 때면 혼란스러웠다. 과연 착한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한데 나의 기준으로 내 마음을, 주변 사람들을 정의 내리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하루에도 수없이 변화하는 내 마음의 상태를 마주하며 일상 속 회색빛 마음을 조금씩 아들이고 있다. 불쑥 찾아오는 정체모를 마음은 나를 당황시킬 때도 있지만,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다채로운 마음의 색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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