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니며 미래의 모습을 그릴 때면 소소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소소한 삶은 절대 소소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소소하게 살고 싶다는 말은 내 삶을 소중히 여기며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다는 말이었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가치 있는 삶을 살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작은 회사에서도 여전히 스트레스는 심했고, 일은 많고 월급은 적었다.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고 스트레스로 인해 여기저기 병원 다니느라 몸과 마음은 점점 더 지쳐갔다.
취업 준비를 하며 입사하고 싶은 회사의 기준을 정해두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처음 합격한 회사에 큰 고민 없이 들어갔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내가 원하던 직무는 맞았지만, 회사가 원하는 디자인은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정반대였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주로 하던 나는 정적인 관공서 관련 디자인을 해야 했다. 의미를 담은 디자인을 하고 싶었지만 빨리 끝내버려야 하는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다. 디자이너라고 불렸지만, 어디 가서 디자인한다고 말하기 민망했다. 그래서 입사 초에는 나를 왜 뽑았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계속되는 야근과 업무 폭탄 속에서 내 삶을 지켜내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대충 때우고 SNS 조금 보다가 자면 다음 날 또 회사를 가야 했다. 소소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꽤 큰 노력이 필요했다. 좋아했던 그림 그리는 시간은 의무가 되었고 인정받고 싶은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점점 유명한 사람들이 부러워졌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것은 매력이 없어 보였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가치 있는 삶을 살겠다던 결심은 금세 초라해졌다. 반짝이고 싶었고 주목받고 싶었다. 점점 인정에 목말라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위로를 주던 시간이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나의 즐거움을 되찾고 싶었다. 빠르게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내 마음 살필 시간이 없었다. 힘들어하는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했고 더 빨리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목표지점에 도달했을 때 내 안에 즐거운 마음이 없다면 허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즐거움을 회복하자고 마음먹었다.
소소한 삶을 바랐던 이유는 작은 것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큰 성공을 하지 않더라도 오늘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한다면 더 행복해질 것 같다.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기보다 마음속에 빛나는 것을 찾고, 그 반짝임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