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행 비행기 안에서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는 기장의 경고방송과 함께 승무원들을 부산하게 만들었고, 식사를 하던 아이들은 바짝 얼어버렸다. “맑은 하늘인데도 무섭게 왜 이래?” “야 기류라잖아 기류. 날씨가 아니라 공기의 흐름.” 제법 많이 아는 듯 한 중학생이 된 큰 아이의 표현에, 아이의 과학교과 진도가 어느 정도 나갔을지 대략 유추해 보게 된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전에 출발한 비행기는 베이징을 거쳐 중국내륙 상공을 지나가고 있고, 목적지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12시간의 비행이 남아있다. 스페인에 도착하면 모든 예약을 내가 한 덕에 이 무리를 이끌고 정신없이 내비게이터와 플래너의 역할을 해야 하기에, 꼼짝없이 자리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 이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근속 10년이 지난 후부터는 ‘언제 이 회사를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와 ‘선배들처럼 근속 20년 포상 명목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 ‘는 모순되는 두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불쑥불쑥 번갈아가며 튀어나왔다. 초반 10년 근처일 때는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가 튀어나왔지만, 17년 즈음되었을 때는 회사와 나는 한 몸이 되어버렸고 “3년 뒤 엄마 아빠 둘 다 회사에서 근속 20주년 여행지원이 나오면, 그때 너희들은 제법 클 테니 온 가족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자!” 라며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올 것 같지 않았던 긴 시간이 지나서 어느덧 남편과 내가 각자의 회사를 다닌 지 20년의 시간이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사표나 버티냐의 수많은 기로에 섰지만 ….
막상 출발하려니 귀찮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기대하는 아이들과의 약속, 그동안 잘 버텨낸 우리에 대한 포상, 그리고 지금이 온 가족이 긴 시간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여행준비를 마쳤다. 청소년인 아이들은 당장 이번 방학이 끝나면 대한민국 입시프로그램에 들어가 주말에도 학원가와 독서실을 왕복하게 될 것이고, 그 시간이 용케 잘 지나가 대학에 가고 나서는 아마도 각자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지금보다 더 나이 들고 약해진 부모에게 긴 시간을 내어주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고 나면, 짝을 만나거나 일을 시작한 아이들을 뒤에서 말없이 응원해야 한다. 내 부모가 그러했듯이 나도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뭐 아무튼 이런 감성적인 생각까지 엎어서 이번 긴 여행의 당위성을 내세운다. 그렇게 자그마치 18일짜리 우리 가족의 스페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연히 지인의 여름휴가 계획 위시리스트를 듣고 나도 다음에 거기 가봐야겠다고 했었는데, 그녀의 여행 일정이 마침 올해가 되었고 나는 큰 고민 없이 가족들에게 ‘20주년 기념 장기간 여행은 스페인 말라가!’입니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예상치 못한 긴 일정과 낯선 장소명에 남편의 동공은 흔들렸고, 아이들은 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인생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여행지로 온 가족을 데리고 떠나는 모험이 오늘 시작되었다.
총여행일 18일의 시간 중 2주는 말라가에 머물며, 아이들은 오전 시간 동안 International summer camp에 참여할 예정이고 아마도 우리 부부는 두 사람만의 여유로움을 즐기게 될 것이다. 주말을 이용해 바르셀로나-그라나다 여행을 하고, 평일에는 말라가에서 유유자적 로컬 문화를 찾아다니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 마음이 드는 곳은 재 방문을 하며 일출과 일몰의 장면을, 그 동네 골목들을 지날 때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향기와 소음을, 테라스에서 즐기는 그날의 여유로운 바람 같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돌아오고 싶다.
이제 시작한 여행의 설렘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