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버티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왜 지쳐 있으면서도 국민취업지원제도 직업상담사로
남아 있는 선택을 계속 반복해 왔을까.
쉬어야 했지만 쉬는 방법을 잘 몰랐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만두는 방법도 몰랐다.
피곤하다고 말하며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주어진 일이 앞에 놓이면 결국 해낼 수밖에 없었다.
쉬어야 할 순간에도 해야 할 일을 꾸역꾸역 해내다 보니 느리지만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되었다.
특별히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하다 보니,
눈앞의 순간을 버텨오다 보니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버티고 싶어서 버텼던 건 아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자주 했다.
'이것도 못 버틴다면 내가 다른 곳에서는 어떤 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참여자에게 '조금만 더 해봅시다'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다.
그 말은 나에게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정말 하기 싫을 때도 "하나씩, 그래 하나씩 해보자"라고 생각하면 나는 결국 하나씩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어느새 그 순간을 지나와 있었다.
이전까지 함께 했던 팀장님은 이제 육아휴직에 들어가 있지만, 늘 내 옆에서 나를 지지해 주었다.
내가 힘들어 보일 때면 본인이 더 하겠다고 말하던 분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누가 되지 않는 팀원으로 남고 싶었고, 주어진 내 몫은 해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참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버티는 사람에 가까웠다.
남편은 다른 곳으로 이직을 권하기도 했다.
조금 더 수월한 환경에서 내가 여유를 찾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이 있었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 다시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일이 힘든 것보다 앞으로에 대한 막막함이 더 컸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지금 나는 그만 둘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그만두는 선택보다 남아 있는 선택이 덜 위험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 알아보지 않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힘들다.
그런데 '뭐가 힘든지' 조차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묵묵히 해내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계속 해내는 쪽을 선택해 왔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조심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