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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May 14. 2022

아이가 없는 자(者)의 소소한 기쁨

공허함의 타개(打開)법

아이가 없는 부부로 생활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공허함이다. 우리 스스로는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물자만 낭비하는 소비충(蟲)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공허함이 늘어가는 가운데서도 살기위해 공허함을 피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도망이랄까, 회피랄까.. 여러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미안함과 쓸쓸함의 가운데, 어느날 문득 성경을 읽게 되었다.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매일성경]. 실제 교회에서 쓰는 성경책은 어느새 모두 사라져버렸고(교회에 가지 않은지 10년은 된 것 같다), 우연히 가까워진 신학교를 나온 사촌 언니의 권유로 읽게 된 그 책을 통해 필자는 삶의 공허함을 지우고 있다. 그 가슴쓰린 감정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기에 당분간은 그 책(성경)을 읽고 사고(思考)하고 기도하며 지낼 것 같다.  




아직 확실히 믿음이 생긴 건 아니다. 하지만 언니 말대로 맹목적으로, 그냥, 계산없이 기도하고 있다. 이 세상에 다른 어떤 존재가 계시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으니, 그냥 한번 계산없이 믿어보라는 그 말. 불교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기독교는 어렸을 때는 친구따라 그냥 다녔고, 어른이 되어서는 굳은 믿음, 신앙이라는 것을 가지려 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20일 정도 매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공허함은 사라졌다. 공허함을 잊기 위한 음주도 많이 줄였다. 왜 그럴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필자도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그러하다.


작가 공지영님에 공감하여 눈물을 주르르 흘리거나 엉엉 울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님이나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읽었다. 수많은 심리학책과 에세이와 조금의 만화책을 읽었다. 태백산맥 등의 장편 역사 소설 류와 김용의 영웅문 등의 무협지도 숱하게 보아왔다(물론 이런 장르는 요즈음은 읽지 않지만 그 당시의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어떤 어른도 나를 위로해 주지 않았고,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엄마의 부당한 대우에 강하게 맞서주는 어른도 없었고(그들은 동정만을 남긴채 비겁하게 뒤로 물러섰다), 조금만 버티면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는 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나는 막연하게, '버티자!' 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버텨서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니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해서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청산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내가 바랐던 것은 그냥 평범한 생활이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옷을 골라 입고, 먹을 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다운 생활. 그냥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그것. 하지만 나는 하지 못하는 것. 재수없는 아이가 재수없음을 벗어난 증표. 나는 단순히 그것을 원했다.


남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한참이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겨우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남편은 있지만 아이는 없었고, 그것은 약간의 동정어린 시선을 받게 되는 위치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초긍정적인 마인드를 발휘하는 힘이 있어서, '그래, 나는 그냥 아이를 원하지 않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살아가는 것 뿐이야.' 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쓸쓸한 마음을 애써 직시하지 않는 가운데 어느 날 남편은 충격적인 한마디를 냈다.


"J야, 나 쪽팔려. K형님도 자기 나이에 아이가 없는 게 쪽팔리대. 사실 나도 그래."


그렇구나. 우리 나이에, 결혼도 했는데 아이가 없다는 건 왠지 쪽팔린 거구나. 아이가 생기지 않든, 원하지 않았든, 결혼을 늦게 했든 그런 거구나. 아..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 일반적인 것이었구나, 그런 거였구나.


이야기가 멀리 가 버렸지만, 이 이야기의 결론은 생의 한가운데에서, 생의 무한한 공허함과 다투던 한 사람이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믿음이 강하지도 못하지만 약간의 충만함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기도제목은 11개였는데, 오늘부로 12개가 되었다. 사촌 언니는 말했다. 자기는 백이 있어 마음이 너무 든든하다고. 자기는 아무도 못 건드린다고. 언니가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주시는 만큼, 나의 마음에는 공허함 대신 감사함과 앞으로의 계획이 가득하다. 또한 내가 다른 여러분들께 해 드릴 수 있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 사회에 손톱만큼이라도 공헌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한없이 분주하다. 쓸쓸함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행복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다.


아이 없는 자의 소소한 기쁨은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이 세계를 존속시켜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 그들을 돕는 일이다. 또한 기도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일일 것이다. 너무도 예쁜 이 세계와 주말을 맞이하여, 감사하면서 힘드신 분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일이다.


사회는 여전히 차갑고, 따뜻하고, 분주하고, 정겹다. 마치 이 세계처럼. 이 가족(시월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하지 않고, 웃음이 나고, 감사함이 있으니, 필자는 나 자신과 가족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마음껏 이 세계를 즐기고 지켜며 살아갈 것이다. 공허함과 다투지 않고 공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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