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꿈

꿈이 말해주는 것

by 수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꾼다.


남편이 내게 이혼을 통보했다. 꿈속의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알겠다’고 말한 뒤, 남편에게서 등을 돌린 채 걸어갔다. 그 과정이 ‘쿨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당당했다. 하지만 꿈을 꾸는 나는 알 수 있었다. 등을 돌린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는 것을, 겉으로 보이는 ‘쿨함’의 뒤엔 꺾지 못한 자존심이 버티고 있었음을. 이 행동은 감정과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이 찰나에 행해졌다. 마치 잘 짜여진 프로그램 같았다.


남편에게 돌아선 이후로 멍한 채로 집까지 걸어왔다. 그 집은 우리의 신혼 집도, 친정 집도 아니었다. 하지만 익숙한 냄새와 풍경에 몸이 녹아내린 걸 보면, 그곳은 분명히 내 집이었다. 집에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그제야 아까 있었던 일이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프로그래밍된 행동과는 다르게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얼마간의 로딩이 걸렸다.


이별을 고하는 상대에게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뭘까? 슬픔, 외로움, 분노, 배신감, 두려움, 수치심, 우울, 실망감, 어쩌면 죄책감. 주의할 점은 감정은 한 번에 하나만 배달되지 않는다. 묶음 상품으로 한 번에 배송되어 무엇을 먼저 뜯어야 하나 혼란스럽게 한다. 모든 게 막막해 눈물로 쓸어버렸다. 그 편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행복했던 신혼 생활, 가족보다 더 신뢰했던 남편, 그리고 이혼. 퍼즐이 맞춰 끼워지지 않았다. 지금껏 차곡차곡 조각들을 맞춰왔는데 난데없이 빈칸에 이해할 수 없는 돌이 얹어진 것 같았다. 그 돌이 ‘네 인생은 어긋났다’ 말하는 것 같았다.


30대 초반에 이혼녀라니… 부모님이 아시면 뭐라고 하실까?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하지? 그냥 나라는 존재가 ‘무’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공포감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꿈이 너무 생생해 얼마간은 멍하다. 꿈이었음을 깨닫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


남편과 헤어지는 꿈 레퍼토리는 꽤 오래전부터 이어졌었다. 연애할 땐 둘 중 하나가 바람을 피워 헤어지는 꿈을 꿨다. 그러다 결혼을 약속하자 파혼하는 꿈을 꿨고 결혼하고 나니 이혼하는 꿈을 꾼다.


반복되는 꿈을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3년 전쯤 받았던 심리 상담에서는 꿈을 무의식의 계기판이라고 했다. 저 쪽 아래에 구겨진 내 무의식을 보여주는 모니터 같은 것으로, 꿈 자체보다는 꿈에서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이 꿈에서 어떤 감정을 가장 맹렬하게 느꼈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막막함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감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움

이 모든 것들이 뭉쳐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공포가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위태로웠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그 반대다. 내가 맺어온 관계들 중 가장 안정되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모든 것이 깨질까 봐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찰나 불행이 동시에 몰려오는 극적인 드라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드라마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으니까.


지금 행복하다고 시인해 버리면 이때다 싶어 불행이 물 밀듯이 밀고 들어올까 봐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계속 긴장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소중한 보석을 누구에게 뺏기기라도 할까 봐 주머니에 넣어 놓은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셈이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주머니에 보석을 넣어두면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을 확률이 더 높다. 보석을 가졌다면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면 될 일이다.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훔쳐가는 확률은 아주 낮다.


그렇다. 좋은 것이 있으면 매일 눈에 담으며 즐기면 된다. 굳이 주머니 속에 넣어 두고 사라졌나 불안해하고 수시로 확인해 볼 필요가 없다. 불행이 올까 봐 몸을 움츠리고 있으면, 오히려 불행의 눈에 띈다.

그러니 어깨 펴고 주머니에서 보석을 꺼내 목에 걸자. 현재를 충분히 느끼고 즐기자.

keyword
이전 09화얘 갑자기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