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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원 Mar 30. 2022

홍콩 문화에서 중국이라는 문제

1부, 홍콩 대중음악의 배경 (3)

 홍콩이란 도시에서 중국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해도, 그들의 운명은 중국 대륙의 운명에 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이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홍콩은 처음 독립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중국의 공산화 때에 홍콩은 크게 발전했다. 이처럼 중국이 직접 홍콩에 손을 뻗지 않더라도, 바로 앞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홍콩에 많은 영향이 발생했다. 특히 이는 홍콩 시민들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주는데, 어떤 사건들은 홍콩인(香港人, 香港國族)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였으며, 어떤 사건들은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시켰다. 어떤 정체성을 가지는지가 결국 어떤 문화에 속하는지를 결정하기에, 정체성은 결국 칸토 팝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도 유관하다.

    

 시작에부터 중국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희대의 반문명이자 광기였던 문화대혁명이다. 모순적이지만, 문화대혁명의 폭력성이 결과적으로 홍콩인이라는 정체성과, 홍콩 문화의 범위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1966년, 중국 공산당의 물러난 실권자 마오쩌둥은 권력을 되찾고자 문화대혁명이라는 무모한 정치투쟁을 시작한다. 이는 홍콩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당시 열악한 교통환경과 영국 경찰들의 부패, 회사들의 폭리에 홍콩 시민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1966년 12월 3일, 교통 문제 등의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으나 영국 경찰은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다. 이듬해인 1967년, 중국은 전방위적 선동을 통해 홍콩 시민들의 무력 시위를 조장한다. 홍콩의 좌익 매체들과 친-공산당 학교들, 현재도 친중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련회 등이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유격대가 빠르게 결성되었고 대륙의 홍위병이 넘어왔다. 중국 국영 매체인 인민일보도 사설을 통해 지지를 표명하며 홍콩 시민들을 선동했다. 51명의 사망자와 832명의 부상자를 남긴 채 끝난 폭동은 홍콩인들이 중국과 자신을 단절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영국 정부는 홍콩의 생활과 문화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홍콩 시민의 생활 수준은 상승했으며, 이들은 광둥어를 바탕으로 하는 홍콩 문화를 자신들의 것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샘 후이(허관걸), 로만(나문) 등 칸토 팝의 1세대 스타가 등장한 것은 이와 같은 정치적, 사회적 배경 속에 가능했다.     

67폭동의 모습. 당시 대륙에서 홍위병들이 사용하던 문구와 유사한 문구들이 보인다.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의 상정은 칸토 팝 발전의 또 다른 국면을 열어주었다. 마오쩌둥이 죽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수정주의자 덩샤오핑이 집권했다. 그는 경제를 외부에 개방하고 공산주의의 비효율성을 개혁하겠다며 대대적인 경제 수술에 나선다. 이에 홍콩 북쪽의 어촌 선전을 개방하여 홍콩 기업을 대규모로 유치한다. 이어지는 중국의 개방 조치들은 홍콩인들에게 거대한 기회였다. 홍콩 경기는 활황을 띄었고, 홍콩 시민이라는 자부심은 더욱 커졌다. 칸토 팝 시장은 더욱 성장했다.     


 한편으로는 경제 성장과 함께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도 함께 자랐다. 80년대에 약화되었던 홍콩과 대만 음악계의 교류가 다시 빈번해져 많은 가수가 양안을 왕래하며 활동한다.(자세한 내용은 2-2 참조) 사람들은 경제적 기회의 땅인 중국 대륙에 대해서도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다. 대니 찬(진백강)은 1991년 ‘남쪽과 북쪽 한 가족(南北一家親)’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여 그 관심을 표현하였으며, 레온 라이(여명)나 페이 웡(왕비/왕정문)과 같이 베이징이 고향인 가수들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레온 라이의 활동에 조금 더 주목해보자. 그가 부른 곡들은 그가 대륙 출신인 것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의 초기 히트곡인 ‘오늘 밤 그대 올 건가요(今夜妳會不會來)’(1991)에서는 “오늘 밤 그대 올 건가요? 그대에게 사랑이 아직 있나요(今夜妳會不會來, 妳的愛還在不在)”이라는 후렴구를 곡의 다른 부분처럼 광둥어로 부르지 않고 국어로 부른다. 그가 출연한 영화 “첨밀밀(甛蜜蜜, 1995)”에서 여주인공 매기 청(Maggie Cheung, 張曼玉)이 같은 대륙 출신인 레온 라이와의 대화에서도 광동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대륙 출신인 것을 어떻게든 숨기고자 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다. 그가 부른 다른 광둥어 곡, ‘나는 베이징에서 왔어요(我來自北京)’(1992)은 제목부터 자신이 베이징 출신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곡은 베이징 이야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활기찬 사랑 이야기이며 이 제목과 같은 의미의 영어 구절(“I, I was born in Beijing”)이 반복된다. 이는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이 강화되어 홍콩인이 아니라는 것이 거부감이 아닌 흥미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며, 당대 홍콩의 사회적, 문화적 활기가 중국 대륙과의 경제적 관계에서 나온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첨밀밀" 속 레온 라이와 노래하는 레온 라이, 둘 중 어느 쪽이 홍콩 시민들의 시선에 더 가까웠을까?

 90년대 말 홍콩 경제는 큰 타격을 입는다. 1997년 홍콩 반환과 아시아 금융위기부터 2000년대 초 IT 버블 붕괴와 사스 파동은 지속적 홍콩에 저성장 공포를 안긴다. 2000년의 반짝 회복세를 제외하면 과거의 5% 이상의 성장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세에 힘 입어 2004년부터 서브 프라임 사태 전까지 매년 6% 이상 성장세를 보인다. 이는 홍콩인들에게 대륙 시장 진출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는데, 가요계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 말부터 4대천왕으로 불리던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본격적인 대륙 진출이 시작되었다.


2000년대에 새로 등장한 스타들 역시 홍콩에서 명성을 얻자마자 빠르게 중국에 진출하고자 했다. 이슨 찬, 조단 찬(Jordan Chan, 陳小春, 진소춘), 니콜라스 제(Nicholas Tse, 謝霆鋒, 사정봉)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많은 가수가 홍콩 가수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발만 걸쳐둔 채, 중국에서 활동했다. 홍콩이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장신구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행동은 홍콩 대중에게 큰 상처를 주었는데, 가장 큰 상처를 준 가수로 G.E.M.(鄧紫棋, 등자기)이 있다. 그녀는 상하이 출신으로 2008년 홍콩에서 데뷔했지만, 홍콩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후 광둥어가 아닌 국어나 영어로만 노래를 불렀다. 홍콩 정체성과 칸토 팝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2010년대부터 전성기 칸토 팝 스타들은 자신 있게 중국 대륙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칸토 팝 곡을 부르기도 했다. 후난TV의 "나는 가수다(我是歌手)"와 둥팡TV의 "우리의 노래(我們的歌)" 등에 출연했던 조지 람(林子祥, George Lam, 임자상), 알란 탐, 하켄 리(이극근), 조이 융(용조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륙의 대중은 이들의 노래에 환호하며 과거의 홍콩에 대한 선망을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과거 홍콩의 풍요에 자신들이 가까워간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 문화가 빈약한 중국 대중의 욕구에 홍콩 문화가 소비된 것이었지 현대 홍콩에 대한 존중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콩 대중은 중국에서 선전하는 자신들의 옛 스타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홍콩 스타들의 어색한 보통화 발음을 놀리는 장면과 그들의 멋진 무대가 교차할 때면 경멸과 열망, 향수와 적개심이 홍콩 시민들의 마음에 엇갈렸다. 하켄 리 등이 대륙에서 펼친 활약이 담긴 영상은 숨어서 보영상이 되었다.


재키 찬의 내셔널리즘 가득한 칸토 팝 재해석. 그는 중국 대륙에서 여전한 인기와 달리 홍콩에서는 "친-공산당", "색마" 등의 이미지를 얻어 더는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홍콩 문화를 중국의 내셔널리즘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국성이 강조되었던 과거 무협 드라마•영화의 주제가를 가져와 중국의 내셔널리즘 정서에 영합하였던 것이다. 2020년 CCTV의 새해 특집 프로그램인 "춘완"에서 재키 찬(成龍, Jackie Chan, 성룡)이 조니 입(葉振棠, Johnny Yip, 엽진당)의 '만리장성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으리(萬里長城永不倒)'(1981)를 부른 것이었다. 무대는 중국 광둥성의 주하이와 홍콩, 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의 인공섬에 설치되었으며 매스게임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무용단이 동반되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무협 영웅의 웅대한 포부를 담았던 가사가 국가주의 선전으로 들리게 한다.


만리장성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으리

萬里長城永不倒

천리 황하물은 넘실넘실
千里黃河水滔滔

강산은 수려하고, 여러 번 칠한 듯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이여
江山秀麗疊彩峰嶺

묻노니 내 나라 어디 병든 것 같은가?
問我國家哪像染病


재키 찬 외의 스타도 이 물결에 동참했다. 2021년 "우리의 노래" 시즌2에서 우승한 조단 찬은 여러 홍콩 무협 주제가를 메들리로 편성한 후 재키 찬의 무대가 보여주었던 내셔널리즘을 이식했다. 이러한 모습은 홍콩 대중에게 오히려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감뿐만 아니라 홍콩 대중문화 자체에 대한 혐오감까지도 조장했다. 대륙은 홍콩의 문화적 정체성에 더욱 큰 균열을 일으키며 홍콩 시민을 타자화하였다.

2019년 "우리의 노래" 시즌1에서 칸토 팝 발라드의 저력을 보인 하켄 리(왼쪽), 2021년 시즌2에서 재키 찬을 따라 내셔널리즘으로 칸토 팝을 재해석했던 조단 찬(오른쪽).


 이와 같이 홍콩 스타들이 중국 공산당 선전에 협력하도록 동원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간 누적된 갈등이 터져나온, 한국에서도 많이 관심을 가졌던 2019년 범죄인인도조례 반대 시위 때문이었다. 홍콩 스타들을 통해 중국은 내부 결속과 대외 선전을 노렸던 것이다.


2019년 범죄인인도조례 반대 시위는 오랜 기간 압력의 누적 속에 터져나온 시위였다. 시진핑 정부는 중국 내부를 더욱 강하게 통제하고자 하였는데, 세계로 뻗어있으며 어느 정도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던 홍콩은 큰 걸림돌이었다. 그들은 홍콩을 장기적으로 대륙에 통합시키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여갔다. 2014년 우산 혁명을 끝내 좌절시킨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015년에는 반중 서적을 출간, 판매하던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직원들을 납치, 고문하였으며 광저우와 홍콩을 잇는 고속철에 중국 법률을 적용하도록 하여 중국의 법률 체계가 홍콩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2018년에는 더 베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광동성과 홍콩, 마카오를 통합하는 계획을 제안하여 경제적으로 회유하는 동시에 홍콩의 자치권을 축소하고자 하였다.


 일련의 사건은 홍콩 시민들에게 거부감과 위기의식안겼고, 오히려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졌다. 2019년 시위는 그 강해진 정체성이 표출되고, 더욱 강화된 사건이었다. 중국은 강압적인 보안법으로 대응하였고 끝내 정치와 언론의 자유가 완전히 실종되었다. 홍콩 시민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홍콩 정부는 중국 대륙의 정책 기조에 완전히 순응한다. 자치도 사문화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홍콩인 정체성이 약화된다거나 중화민족이라는 정체성이 강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014년 10월, 거리에서 시민들과 노래하는 가수들. 왼쪽부터 디니 입, 웡이우멩, 데니스 호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공동체를 경험해본 홍콩 시민들의 표현 욕구와 자유의지는 2014년 우산 혁명 이래 나날이 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계는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지지하고 나섰다. 2014년 우산혁명 당시 케이 제, 데니스 호(Denise Ho, 何韻詩, 하운시), 웡이우멩(黃耀明, 황요명), 디니 입(Deanie Ip, 葉德嫻, 엽덕한) 등의 가수들과 작사가 람젝(임석)은 시민들을 지지하는 노래를 발표했다. 사람들, 특히 청년층은 홍콩의 것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싶어했는데, 칸토 팝 가수들의 이러한 활동을 계기로 그들은 칸토 팝을 자신들의 것이자 홍콩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청년층이 점차 돌아오는 칸토 팝은 활기를 찾아갔다. 함께 경험한 상처는 발라드에 깊이를 더했으며, 주목받지 못하던 싱어송라이터들과 밴드의 음악은 위로를 주는 가사로 홍콩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민들이 스타를 만든다”라는 뜻의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전민조성(全民造星)” 시리즈와 이 프로그램이 만든 그룹 MIRROR는 홍콩인의 바람과 닿아 있다. 한 시대가 홍콩을 팔아 중국에 영합할 때, 다른 시대의 서광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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