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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원 Apr 04. 2022

홍콩 발라드의 시대가 열리기까지

2부, 씨줄, 홍콩 발라드 (1)

 홍콩인들은 칸토 팝을 크게 두 장르로 나누곤 했다. 하나는 “쳉꼬(情歌)”이며 다른 하나는 “파이꼬(快歌)”이다. “쳉꼬”는 “발라드”로 비교적 쉽게 번역될 수 있지만 “파이꼬”는 직역하면 “빠른 노래” 또는 “유쾌한 노래”이다. 이 분류에는 빠른 박자로 구성된 신나는 곡들이 들어가는데 안무가 수반되기도 하지만, 안무가 없는 곡도 락 음악도 신나는 곡이라면 이에 속할 수 있다. 한국 곡에 이 분류를 도입하면 슈퍼주니어의 ‘Mr. Simple’과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은 모두 신나는 곡이므로 “파이꼬”에 묶일 수 있다. 조금 무리지만, 이번 글에서는 “댄스 곡”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파이꼬”에 속하는 락 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칸토 팝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발라드 가수와 댄스 가수가 구분되어 활동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홍콩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가수가 두 장르를 모두 소화했다. 80년대의 레슬리 청(Leslie Cheung, 張國榮, 장국영)과 아니타 무이(Anita Mui, 梅艶芳, 매염방)가 이러한 흐름을 이끌었다. 특히 1984년 발표된 레슬리 청의 ‘Monica’는  빠른 비트의 댄스 곡을 중화권에 정착시킨 기념비적인 곡이다. 이 곡 이후, 이미 인기 가수였던 알란 탐(Alan Tam, 譚詠麟)까지도 댄스곡 유행에 합류하며 두 장르 병행은 홍콩 음악계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90년대에 가장 인기를 끌었던 가수들인 4대 천왕이 뒤따랐다. 특히 4대 천왕 중 후발주자에 속하는 레온 라이(Leon Lai, 黎明, 여명)와 아론 쿽(Aaron Kwok, 郭富城, 곽부성)은 두 장르를 오가며 90년대 후반 칸토 팝을 뒤흔들었다. 1996년에 발표된 레온 라이의 “이렇게 널 사랑해(我這樣愛你)”와 아론 쿽의 “격정의 제국(最激帝國)”을 살펴보자.


* 표시는 타이틀 곡/ 볼드 처리는 활동곡


 두 앨범 모두 한 앨범 안에 두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독특한 점은, 활동곡(主打)에도 반드시 두 장르가 전부 있다는 점인데,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과 댄스 곡을 좋아하는 사람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이 댄스 곡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조금 더 살펴보면, 안무가 공연마다 조금씩 바뀌거나 따로 안무가 없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애론 쿽의 타이틀 곡 정도가 고정되고 절도 있는 안무를 갖췄었고 대부분은 대체로 간단한 동작 수준이었다. 홍콩에 댄스 가수가 발라드 가수와 구분된 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댄스의 전문성은 낮았다. 90년대 초에 등장한 애론 쿽과 디키 청(張衛健, Dicky Cheung, 장위건)은 충분한 댄스 실력을 갖춰 댄스 가수의 분화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한 장르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웠던 칸토 팝 시장의 특성 상 댄스 곡 전념은 불가능했다. 이에 2020년대 현재 칸토 팝에 따르는 댄스에는 홍콩만의 분위기가 존재하기 보다는 K 팝이나 미국의 유행을 따르게 되었다.

애론 쿽의 '그대에 대한 사랑은 다하지 않아요(對你愛不完)'(1990)(왼쪽)와 디키 청의 '진짜, 가짜'(真真假假)(1992)(오른쪽) 활동 모습


 두 장르 병행이라는 경향은 세계적인 테크노 음악 유행과 함께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2000년대의 새 스타인 니콜라스 제(Nicholas Tse, 謝霆鋒, 사정봉), 이정현의 노래를 다수 번안했던 사미 쳉(Sammi Cheng, 鄭秀文, 정수문), 힙합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에디슨 첸(Edison Chen, 陳冠希, 진관희) 등이 그 사대 천왕과 함께 가단을 장식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댄스 곡이 급격하게 칸토 팝에서 사라져버렸다. 홍콩 경제의 열기가 크게 식은 것이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흥겨운 테크노 음악보다는 정적이며 감정을 돌아보는 음악을 더욱 선호했다. 또한 댄스 곡으로 이름을 날리던 칸토 팝 스타들이 대륙으로 떠나버렸다. 대륙 경제는 홍콩과 달리 꾸준히 성장하였으며 대륙의 대중에게서 앞서 진출한 앤디 라우(Andy Lau, 劉德華, 유덕화), 재키 청(Jacky Cheung, 張學友, 장학우) 등의 홍콩 스타들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다른 스타들도 수요가 보였다. 그들마저 홍콩 활동을 등한시하게 되며 칸토 팝에서 댄스 곡은 갑자기 사라졌다. 남은 것은 발라드였다. 나름의 전통을 가진 칸토 팝 발라드에 홍콩 음악계는 더 집중하기로 했다.     


 칸토 팝 발라드를 이해하기 위해선 가장 독특한 전통인 작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의 고전 문학 장르인 ‘사(詞)’ 문학은 칸토 팝 작사와 유관하다. 당 말기에 성립된 이 문학 장르는 송에서 크게 발전하여 흔히 ‘송사(宋詞)’라고 불리는데, 송은 도시 문화가 발달했던 시대이다. 도시 문화는 자유롭다. 다양한 놀거리가 있었으며 각지에서 온 구성원들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유연애도 어느 정도 존재했으며 상류층은 자유연애 대신, 기녀와 연애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도회적 정취를 누리며 당시 유행하던 노래 가락에 맞추어 가사를 썼다. 이것이 바로 ‘사’이다. 이는 글자 수를 엄격하게 제한하며 내용도 고풍스러운 ‘시(詩)’와 완전히 달랐다. 노래 가락에 따라 글자 수가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였으며 진솔한 감정과 도시의 여러 풍물을 담을 수 있었다. 다만, 짝수 행 또는 모든 행의 마지막 글자를 같은 운으로 통일하는 각운 압운과 가락에 성조의 높낮이를 어느 정도 일치시키는 음율의 원칙은 조금씩 변화하면서도 유지되었다. 민간인들의 작품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문인들에 의한 작품이었기에 언어 또한 시와 같이 문아함을 추구했다.     


 이 전통은 홍콩의 대중가요 작사에 계승되었다. 홍콩은 국제적 도시였지만, 문학과 예술 교육은 중화권 여러 지역 가운데 가장 전통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홍콩이 중국의 전통문학을 퇴출하고 새로운 언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1910년대의 신문화운동에서 빗겨나 있었으며, 모든 전통을 부정하고 나섰던 문화대혁명과도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칸토 팝 초기의 작사가인 웡짐(黃霑, 황점) 등은 사를 짓는 법을 홍콩 대중가요 가사를 지을 때도 동원한다. 곡의 선율과 가사의 성조 흐름이 맞도록 배치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각운도 착실히 지켰다. 언어도 홍콩 사람들이 사용하는 구어가 아닌 문아한 언어를 사용했다. 고전에서 사용되던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으며 구어는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장식적으로 사용되었다. 구어로 된 가사를 주로 사용하며 성조를 대체로 무시한 채 창작이 이뤄지는 중화권 다른 지역의 음악과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웡짐, 판윈렁(潘源良, 반원량), 헝쉿와이(向雪懷, 향설회), 람전콩(林振强, 임진강) 등이 감각적인 가사를 통해 바탕을 만들었으며, 90년대 이후 떠오른 작사가 람젝(林夕, 임석)과 웡와이만(黃偉文, 황위문)은 발라드에 집중한 이 시기에 스토리텔링 기법과 내면을 파고드는 구성을 사용하여 가사에 문학적 깊이를 더했다.     

웡와이만(왼쪽)과 람젝(오른쪽), 람젝의 본명 역시 와이만이기에 "두 와이만(兩偉文)"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컬도 2000년대 들어 홍콩 스타일이 분명해졌다. 내지르는 고음을 지양하며 개인의 음색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홍콩은 락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키 청 등을 제외하면 락 스타일의 내지르는 창법을 사용하는 가수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80년대까지는 기교가 들어간 창법이 인기 있었으며, 80년대 말 대만의 왕제(Dave Wang, 王傑, 왕걸)의 깔끔한 창법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점차 기교 없는 맑은 목소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대만에서는 이 경향이 락 발라드로 이어지지만, 홍콩에서는 감정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얼마나 고음을 낼 수 있는 지보다는 노래에 진정성을 녹여 자연스럽게 감정이 전달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발라드가 크게 성장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개인의 음색이 더욱 주목되었다. 한편, 칸토 팝에서는 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해왔기에,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하듯이 노래하는 창법도 환영받았다. 가창력만큼이나 정확한 광둥어 발음이 요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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