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이야기 : 슬픔의 뜰

볕드는 심리상담실

by 하계의 이난나


사람은 저마다 다른 크기의
슬픔의 뜰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그 사람의 무게인지도 모른다.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 법정스님




오늘은 누구나 가슴속에 한가지씩은 품고 있을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제가 경험한 사례를 각색하여 써보려고 합니다.




벌써 십 년 전 이야기네요.

내담자 영미(가명)씨는 남편과 이혼한 지

다섯 달쯤 되었을 때 상담실에 왔어요.


영미 씨의 남편은 결혼생활 동안, 외도를 밥 먹듯 했습니다.

술이 취하면 폭력적이기도 했지요.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거칠어서, 화가 나면 욕설을 내뱉기 일쑤이고

영미 씨를 대하는 것은 더 함부로 할 때가 많았습니다.


영미 씨가 이혼을 결심한 건,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함께 짜고서

영미 씨를 크게 속인 일을 알고 나서입니다.


상담 초기, 영미 씨가 말했어요.


"선생님, 저는 저 자신이 좋은 걸 모르겠어요. 좋아할 구석이 있어야 좋아하죠."


영미 씨가 자신을 그렇게나 미워하는 마음 깊은 곳에,

무슨 말 못 할 아픔들이 꽁꽁 숨겨져 있었는지

함께 탐색해 나가며 상담 중반쯤 이르렀을 때예요.


영미 씨는 이혼 후에야 남편이 미운 줄 알겠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자기가 바보 같다며 자책하곤 했는데,

반대로 정작 이혼하고 나서 남편은, 자꾸 연락을 해 다시 같이 살자고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남편은 말로는 변하겠다면서도 외도한 여성(들)과의 관계는 지속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미 씨는 그런 남편과 재결합할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였어요.


···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말들 끝에 영미 씨가 매주 한번 정도,

남편에게 연락을 해서 남편이 조금이라도(영미 씨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했는지 확인해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영미 씨는 남편의 모습에 또 실망하고 좌절하면서,

상처가 들쑤셔지는 느낌을 받으면서요.


그렇게 아픈데도 자꾸 알아보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묻자

영미 씨는 남편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자꾸 확인하지 않으면

자신이 언젠가 부지불식간에 남편을 다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며 울었습니다.


.... 저는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수 없는 영미 씨의 처절한 외로움과,

그런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여린 마음 앞에서 그저 말없이,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미 씨가 알고 싶었던 건 남편의 변화가 아니라,

자신이 그런 사람을 물리칠 수 있는가, 또 곁에 두지 않고도

홀로 견딜 수 있는가, 하는 거였지요.




우리는 낯선 천사보다는
주로 낯익은 악마를 선택한다

- <상처 떠나보내기> 中



영미 씨의 고통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떡잎이 자랐고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늘 느껴야 했던

수치심과 죄책감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덜고, 덜고, 덜어진 후에야,

둔중하고 끈질기던 자기 학대의 바퀴가 멈춰졌습니다.


˙˙˙


저는 영미 씨와 이야기한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이런 시를 끄적거렸어요.



연못
슬픔은 슬픔으로 남겨두라
가슴에 고인 슬픔, 그 연못의 물로
뜰에 핀 꽃에 물을 주고
새도 깃들어 목 축일수 있으니

눈물 연못이 마르지 않도록
부지런히, 아픈 일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스스로 제 살을 꼬집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맑은 연못에 물고기 살고
이제는 화사해진... 넉넉한 뜰을 거닐면
지나가던 누구도 문득 발을 멈추고
이 연못가에 잠시 두런 두런, 쉬어가기도 하겠지.




마지막으로 영미 씨의 사례에서 제가 배운 것들이

잘 정리되어있는 책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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