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목소리의 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목소리의 힘’
내 목소리를 사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 듣고는 “이게 진짜 내 목소리야?”라며 당황한다. 나도 그랬다. 오랫동안 말해오던 익숙한 내 목소리가, 녹음기를 통해 들리는 순간 전혀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 낮고 힘없고, 어딘가 무겁고 답답했다. 말끝은 자꾸 흐려졌고, 자신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 “너는 왜 그렇게 말이 작니?”, “좀 또렷하게 말해봐”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나에게 늘 부족한 존재, 감추고 싶은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나는 가능한 한 말수를 줄였고, 발표 시간에는 눈을 피했고, 나의 목소리를 사람들 앞에 꺼내놓는 일이 두려웠다. 그런 내가, 지금은 ‘낭독’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목소리를 꺼내 말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 낭독을 듣고 “편안해졌어요”, “귀에 쏙 들어오네요”라는 말을 건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신기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그냥, 내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기’였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전한다. 단지 단어를 소리로 바꾸는 수준이 아니다. 목소리는 그 사람의 감정, 마음가짐, 성격, 때로는 인생의 태도까지 담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어떤 톤으로 나오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누군가는 “괜찮아” 한마디만 해도 정말 괜찮아질 것 같고, 또 누군가는 같은 말을 해도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듣는 사람은 안다. 말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 것이 목소리라는 걸.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좋은 글을 낭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그 글을 ‘어떻게 읽느냐’이다. 그리고 그 ‘어떻게’의 중심에는 목소리의 힘이 있다. 듣는 사람의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먼저, 명료성이다. 똑같은 낱말도 입을 열어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그 말은 단지 소음에 불과하다. 발음이 흐릿하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이 또렷하게 들릴 때, 듣는 이는 무의식적으로 신뢰를 느낀다. 명료한 발음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당신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태도.
두 번째는 감정이다. 감정은 목소리의 색을 결정한다. 같은 문장을 읽더라도 기쁨, 슬픔, 분노, 공감, 위로… 어떤 감정을 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짜 감정’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억지로 꾸며낸 감정은 금세 들통난다. 오히려 담담한 톤 속에 묻어난 진심이 훨씬 더 깊게 다가간다. 사람은 누구나 진짜를 알아보는 귀를 가지고 있다. 낭독에서 감정이란, 그 글을 얼마나 ‘내 마음으로 읽고 있는가?’의 표현이다.

세 번째는 울림이다. 울림은 단순히 소리가 크다는 의미가 아니다. 울림이 있는 목소리는 말하는 사람의 안쪽, 깊은 데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 안다. 저 목소리는 그냥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을 실어 보내고 있구나. 그런 울림 있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흔든다. 울림은 진심과 연결되어 있다. 억지로 만들 수 없지만, 훈련을 통해 길러낼 수 있다. 복식호흡을 익히고, 발성을 다듬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할 때 울림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낭독은 결국 소리를 통해 사람의 마음에 말을 거는 일이다. 글은 눈으로 읽는 것이지만, 낭독은 귀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목소리는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다.
나는 여전히 내 목소리에 완벽한 만족을 느끼진 않는다. 때로는 여전히 작게 말하고 싶고, 어떤 날은 말수가 줄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목소리는 고치는 게 아니라,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걸. 내 목소리를 내가 먼저 믿어주기 시작했을 때, 놀랍게도 듣는 사람들도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당신의 목소리도 그렇다. 어쩌면 오랫동안 외면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녹음된 소리를 듣고는 실망하고, 발표 시간마다 자신감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당신만의 결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숨은 울림이 있다. 중요한 건 그걸 꺼내어 보는 용기다. 낭독은 그 목소리를 꺼내는 연습이다. 글의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이다.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어쩌면 이미 당신 안에 오래전부터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목소리를 꺼내어줄 때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해줄 때다.
“이게, 나의 진짜 목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