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드로잉 다이어리
옷과 삶 02_10년 전 볼캡
오래전, 그때보다도 더 오래전에 구매했던 하나뿐인 내 볼캡은
갈색 면 재질에 핑크색 하트 모양 스팽글 장식이 되어 있는
Y2K 분위기의 좀 구식 스타일.
빈티지라고 해 둘까.
당시까지 딱히 다른 마음에 드는 모자를 발견하지도 못했고
모자를 그다지 자주 쓰는 편도 아니고 해서
가끔씩 모자를 써야 할 일이 생길 때면
버릇처럼 습관처럼 요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하곤 했다.
언젠가 자유 크로키 수업 시간,
염색할 시기가 훌쩍 지나버린 지저분한 머리를 가리기 위해
난 예의 이 모자를 착용하고 집을 나섰다.
그날 함께 수업에 참여했던 y는 여름용 밀짚 페도라를
다른 몇몇은 볼캡을 착용한 분들이 있었다.
(그림 그리기 수업엔 왜 모자를 쓴 사람들이 많은 걸까?)
수업도 뒤풀이도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30대의 y와 40대의 나, j 언니가 나란히 지하철 의자에 앉아
수다를 떨 때 무심코 혹은 작정한 듯 건넨 y의 말,
‘요즘 그런 모자 잘 안 쓰지 않나요?’
한 번도 내 모자에 문제가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하던 내가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는지
j 언니가 서둘러 나 대신 변명을 해 주었다.
유행이 지난 아이템이라도
그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면 괜찮지 않냐며.
그치만 오랜 프리랜서 집 콕 생활로 세월의 흐름과 변화를
감지할 감각기관이 퇴화되어버리고 만 나는
그저 멍하기만 했다.
그렇구나.
내 모자가 조금 이상해 보이는구나.
뭔가 세상도 유행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나는 항상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서 있는 듯한 기분.
내 모자가 이상해 보인다는 건
내가 이상해 보인다는 것과 같은 것일까.
나에겐 뭔가 문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