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을 챙기는 행위는 관종을 좋아하는 사람일 까? 그건 아닌데..
이틀 전이다. 오전에는 급한 용무가 없으면 남편과 같이 공원 산책을 간다. 공원엘 가면 지금 막 피어난 개나리와 진달래가 산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참 아름답다. 죽은 듯 가만히 서 있던 나무에서 어쩌면 저리 예쁜 꽃이 피어 날까? 내 눈으로 확인을 해도 참 신기할 뿐이다. 요즈음 봄 꽃들의 축제다.
개나리 진달래
마른나무 가지에서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파릇한 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어릴 때는 예쁘다. 사람도 자연과 같이 어릴 때는 예쁘지만 나이 들고 노인이 되면 예쁜 모습이 다 사라지니 그게 자연의 이치라고 할 수뿐이 없다. 우주 만물은 자기만의 질서대로 피고 지고 시간을 어기지 않고 꽃이 필 때가 되면 피고 진다. 자연의 순환 법측이 오묘하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부쳤던 화전이 밉기도 하고 진달래가 지기 전에 화전을 부쳐 주변 사람 들과 나누기 위해 산책 길에 진달래 꽃을 조금 따왔다. 꽃은 따오면 바로 손질을 해서 화전을 부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꽃잎이 약해 금방 시들어 버린다. 꽃이 시들면 화전이 예쁜 모습이 아니다. 모든 것은 때와 정성을 다 해야 작품이 된다.
집에 돌아와 바로 꽃 손질을 하고 화전을 부쳤다. 이번에는 내가 아끼는 접시에 예쁘게 담아 글 스승 배 작가님과 차 한잔 나누기 위해서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기도 하고 어쩌면 좋아하는 걸 보기 위한 마음이 더 크지 않을 까? 다른 사람이 기쁨을 보면 내가 더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화전
내가 보아도 지난번 화전 보다 이번에 부친 화전이 더 예쁘다. 작가님에게 연락을 했으나 일이 있어 외부에 나가야 한다고 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점심을 먹고 나니 피곤하다. 이제는 예전과 달리 조금 무리하면 피곤이 밀려온다. 세월을 참 어쩔 수 없다. 나는 내가 맨 날 청춘인지 알고 일을 만든다. 그러면 몸이 말한다.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 피곤할 때는 잠시 쉬어야 한다.
컴퓨터 하고 한참 놀다 보니 저녁시간이 가까워 온다. 나는 뜨개방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다. 저녁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전화를 건 시간이 4시였다. 가계 문 닫을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제가 지금 갈게요" 하고 화전 부친 걸 예쁜 접시에 담아 보자기로 싸 가지고 바쁘게 뜨개방으로 향했다. 마음이 바쁘게 걸으니 앞에 보이는 것도 자세히 살필 겨를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꽈당하고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온몸에 힘을 실어 넘어졌으니 그 강도가 세다. 이게 웬일인가 싶다. 더욱이 큰 접시가 앞을 가려서 예기치 않은 사고다. 접시는 깨지고 양손은 까여 피가 나고 두 무릎도 까였다. 뜨개방 골목 옆 가계 떡 볶이 집 사장님은 놀라서 나와 가계로 들어오란다. 괜찮다고 말하고 일어나 바로 그 근방인 뜨개 방으로 들어갔다. 넓은 길이 아닌 골목 길이고 사람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뜨개방에는 몇 사람이 있었다. 모두 반갑게 인사는 하지만 내가 인사받을 사항이 아니다. 접시는 깨졌지만 화전은 그대로다.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놀란다. 내가 생각해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뜨개방 선생님을 기쁘게 해 주려다 오히려 더 걱정만 만들었다. 차 한잔 우려 주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약을 바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다른 사람 기쁘게 해 준다고 바쁘게 서두른 탓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동동거리며 나눔을 할까? 정말 관종일까? 인정 일까?
관종이란 뜻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뜻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온라인이나 sns에서 무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인터넷 용어로, '관심병 종자' 종자의 준말이라 한다. 나는 왜 그 말을 생각하게 되었나 다시 한번 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나누면 서로가 기뻐서 하는 일인데, 조금씩 절제를 해야 할 듯한 생각이 든다. 차분히 살아야 할 필요를 느낀다.
약을 발라 주는 남편은 어이가 없는지 아무 말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무심한 것 같아 나는 섭섭하다. 깨진 접시는 세상에 하나 뿐이다. 같이 차 생활했던 다우가 특별히 빚은 접시다. 화전 부칠 때는 언제나 사용했는데 아깝다. 하지만 아마도 그 접시는 나와 인연이 다 했나 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더 많은 것도 잃고 사는데,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다. 뼈가 아프지 않은 걸 보니, 마음을 다독인다. 사고는 찰나에 일어난다.
다음 날, 한길 문고 갈 일이 있어 나머지 화전을 들고 갈까 하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너도 참 못 말린다. 조금 무심해 지자."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