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림사 은행나무를 보고 만추를 즐기다
가을이 온통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답다. 아파트와 가로수들도 곱게 물들어 가을의 운치를 더해 준다. 나이 들어가고 해가 갈수록 날마다, 계절마다 세월의 흐름이 더 애잔해 온다. 어떻게 하면 오늘을 잘 살아낼까? 그 생각이 떠나질 않고 머릿속에 맴돈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 같지만 김정의 흐름과 하루가 지나가는 시간은 다른 느낌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의 머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하얗게 변해 간다. 남편을 바라볼 때마다 둘이서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자꾸만 짧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애틋해 온다.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건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 하면서 살뿐, 어찌할 수가 없는 게 우리네 삶의 순리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보고 세심히 살펴보는 일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기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마음을 다 하고 싶다. 좋은 사람과 함께 계절을 즐기는 것도 자칫하면 때를 놓치고 만다. 어디를 가든 남편과 둘이서만 가면 조금은 무료하다. 이런 때는 같이 할 수 있는 동생이 곁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동생아, 숭림사 은행나무 보려 가자." 동생을 불러 낸다.
단풍 든 나뭇잎들이 낙엽 되어 한 잎 두 잎 떨어져 가을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을 맞이 하려고 한다. 군산은 시내에서 십 분만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도 시골 들녘이다. 얼마 전까지 황금들판이던 들녘은 벌써 추수를 마치고, 논은 휑하니 쓸쓸하다. 논에는 볏짚을 말아놓은 하얀 비닐 뭉치만 쌓아 놓아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자기 할 일을 마친 논은 지금부터 휴식을 하고 있는 중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가을빛이다. 시골길은 언제 보아도 친근하다. 길거리 호박 넝쿨에는 노란 호박이 달려 있고 마을 안에 보이는 감나무는 빨간 감이 매달려 있어 가을 풍경이 더 풍성하다. 산들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시골 마을은 조용하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니 금방 숭림사에 도착을 한다. 봄이면 벚꽃 터널을 만들었을 벚나무들 지금은 나무 잎들을 다 떨구고 나목으로 의연히 서 있다. 숭림사는 작고 아담한 사찰이다. 사찰은 언제나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한 곳이다. 그래서 더 고요하고 좋다. 이곳에 오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않고 잠시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휠링 하는 기분이다. 사람은 때때로 마음도 생각도 쉬고 자연 속에서 맑은 기운을 받으며 삶의 여백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숭림사 현판이 있는 사찰
지난해 그림일기 회원들과 왔을 때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했었다. 자연의 변화는 오묘하다. 신이 우리 인간에게 보내 주는 선물 같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작은 절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다. 온화한 부처님과도 눈을 마주하면 마음이 평안해 온다. 깨끗이 비질해 놓은 절 마당조차 그림이다. 여기저기 보이는 국화도 가을이라 말해 주듯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남편과 동생 셋이 벤치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노란 은행잎이 낙엽비가 되어 휘날리며 떨어진다. 가을이 아니면 느끼지 못할 만큼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다. 정말 이러한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눈에 보이는 노란 은행잎은 떨어져 땅바닥을 덮어 노란 이불처럼 예쁘다.
그 모습에 황홀해 우리는 한 동안을 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빛에 취하고 노란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가을을 마음 안에 담는다. 오늘 오지 않았으면 이 처럼 예쁜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며칠 후면 은행 잎은 다 떨어져 낙엽 되어 빈 가지만 남아 을 것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아름 다운 모습을 좋은 사람과 보면서 살고 싶다.
은 행 나무의 아름 다운 모습들
너무 예쁜 은행나무 노란색
인생 뭐 있겠는가? 아프지 않고 가고 싶은 곳 찾아갈 수 있고 맛있는 것 먹을 수 있고 마음 편하고 좋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더 바랄 것이 무엇 있겠는가.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려오는 감정들이라고 말한다. 기다림 뒤에 알게 되는 일상의 풍요가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