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 도로 주변 바닥이 습기를 머금고 촉촉하다. 비가 오락가락 종 잡을 수가 없다. 서울 올라간 다음 날은 햇살이 뜨겁고 하늘은 맑았다. 딸네 가족이랑 남산 둘레길 산책을 왔는데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남산은 딸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니 아주 가까운 거리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서 남산 타워는 개장 전이라 우리는 둘레길을 산책했다.
젊어서와 달리 나이 들면 물가 보다 숲 속이 더 편하고 좋다. 나무에서 내뿜는 산소도 우리 기분을 상큼하게 해 주고, 나뭇잎 사이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빰을 스친다. 여름에는 나무 숲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싱그럽다. 더위를 날려 보내고 나뭇잎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간도 좋다. 나무를 세심하게 관찰하게 된 것은 그림을 그리면서였다. 나이대에 따라 선호하는 풍경도 다름을 감지한다.
워낙 부지런한 사위는 집에서 뭉그적거리는 일이 거의 없다. 더욱이 우리 부부를 만나면 여행하듯 여러 곳을 데리고 다닌다. 남산 숲 둘레길에 들어서니 바람이 선들 불고 숲 속에서 들리는 이름 모를 새소리에 마음을 뺏았긴다. 바람과 곁에 작은 도랑 물소리를 즐기며 걷는 발걸음이 상쾌하고기분 좋다 가끔은 낯선 곳 풍경도 새롭다.
한 여름을 상징하는 매미 울음, 그 소리가 숲 속의 고요함을 깬다. 매미 우는 소리는 어릴 적 엄마와 들었던 매미 울음과 똑같다. 문득 어머니가 그립다.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 매미 울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매미는 성충이 되기 위해 7년까지 긴 세월을 준비하지만 성충으로는 7~20일 밖에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살아있는 동안 수컷 매미는 목청껏 울어 짝짓기에 성공하면 매미의 생은 끝난다는 말에 매미 울음이 더 애달프게 들린다. 종족을 퍼트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매미의 삶이 슬프다.
남산은 나무가 많아 공기도 신선하다. 그늘 속으로 걷는 걸음걸이도 가볍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노란 선으로 이어진 길이 있고 거기에는 '배려의 길'이란 글이 쓰여 있다. 그리고 땀을 흘리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달리기는 두 사람이 함께 손목에 줄을 묶고 달린다. 아하, 그제야 알았다. 한 사람은 시각 장애인이고 다른 사람은 길 안내를 해 주는 봉사자다. 거의 젊은 사람들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얼마나 답답할까.
그들은 열심히 땀을 흘리며 뛰고 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 온다. 이 처럼 더운 날씨에 혼자 뛰기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고 힘들어도 어디엔가는 또 다른 아름다운 세상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아직 살만 하다. 나는 매일 내 삶만 지키고 사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잠시 부끄럽다.
남산 둘레 길은 가다가 더우면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간간히 정자도 있어 쉴 수 있는 곳이 있어 편리하다. 휴일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산책하는 모습도 여유롭고 좋아 보인다. 사람은 푸른 자연 속에 있으면 자연을 닮아 순하고 고요해진다. 군산에서 매일 월명 공원 산책을 하지만 남산에 와서 딸과 사위와 함께 걷는 느낌은 또 다르다. 40분쯤 걷다 보니 목이 마르고 덥다. 잠시 쉬어 가기 위해 둘레길 안에 있는 한옥 카페 겸 식당인 면목 호랑이라는 한옥에 들어갔다.
한옥은 정갈하고 고급지다. 실내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없어 조용하다. 우리는 팥빙수를 주문해 놓고 마음도 몸도 잠시 쉰다. 서울에 오면 딸과 사위는 우리 부부와 함께 여행하듯 여러 곳을 탐방한다. 그게 고맙고 즐겁다. 더울 때는 역시 팥빙수다. 시원하고 맛있었다. 값은 만만치 않지만 이런 시간도 추억이다.
면목산 카페에서 먹는 팥빙수와 한옥 카페 입구에 한국인의 미소라는 장승이 정겹다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이 더운데 집에서 밥 할 일이 없으니 너무 좋다. 점심은 분당에 사는 셋째 딸 가족들을 불러 아파트 내 3층 식당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서울에 와서 며칠 머무는 시간 딸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마치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다. 삶은 여전히 예기치 못한 곳으로 흐르고 우리는 그 중심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