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20.01.31

by 영어 참견러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의 배경과 저자의 이야기를 간단히 들었을 때 혹시 예전에 잠시 만난, 항암상태에서 글을 쓰고자 했던 한 여자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커피와 ,음악을 즐기셨던 5년 전 피부암으로 돌아가신 아빠와, 저자와 연배가 비슷했던 20년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시어머니. 두 분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서인지, 마음 깊은 곳에 가두어놓은 부모님에 대한 추억이 폭풍우에 파도가 일듯 내 마음에서 출렁거려 마음이 아프기도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였다.


암 선고를 받고나서 일 년간 쓴 저자의 글은 생각보다 단순한 글귀로 상당히 절제하면서 본인의 마음과 일상을 담담히 표현 하지만, 글의 두께가 점차 얇아지는 것을 보면서, 암 세포의 위력에 점점 굴복당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철학자이자 지식인의 삶을 사신 분이기에 곳곳에 철학적인 글귀가 보였다. 전반부의 글에서는 삶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희망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절망과 함께 일상에 대한 기록은 계속 이어진다. 거기에 종교와 관련된 글도 가끔씩 나오지만 이분이 어느 종교나 신을 찾거나 의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철학의 기본 의문은 삶과 죽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분의 글에서는 이세와 현세에 대한 고민이 깊어 보이시지는 않아보였다. 여러 면에서 소박하게 사셨지만, 지식에 있어서는 나름 욕심을 내시며 사셨기에,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신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과 감사를 말하시긴 하지만 너무나 미지근한, 아니 차갑게까지 느껴졌다. 세상의 지식을 사랑하면 차갑게 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나도 지식보다는 몸을 돌보고, 그 건강한 몸으로 좀 더 뜨겁게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뜬 여동생의 죽음 후, 평생 암을 두려워하셨다. 하지만, 15여 년 전 위암에 한번 걸려 수술하신 후, 결국 이 암이란 악당은 70세가 된 할아버지의 훤칠한 이마까지 뚫고 나와 그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180의키에 잘 생기시고, 담배와 커피 애호가이셨던 아버지. 깔끔하신 성품에 청소기를 돌리며 팝송을 부르시고 누군가와 영어로 전화통화를 하던 아버지. 사업에 실패를 자주 하셨지만, 뭔가 늘 열심히 공부하시고 시도하시던 아버지. 당뇨병으로 인해 아빠의 밥상은 늘 잡곡과 고기나 생선이 우선순위로 올라가 부럽기도 하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왠지 모를 불평등을 느끼곤 했던 나. 효자인 큰 아들 덕에 세계 곳곳에 여행도 많이 다니신 아버지. 그럼에도 돌아가시기 전에 해금강 여행을 못간 것을 못내 아쉬워하신 아버지.


처음 한 달 정도는 일기인지 유서인지 뭔가를 쓰시기도 하셨지만, 그것도 잠시, 과거의 삶에 대한 자기연민과 후회, 누리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과 육체의 고통으로 인해 괴로워하셨다. 통원하시며 치료를 받으시다가 병원 응급실에 가시던 그 날, “영숙아 이제 가면 언제 보니,,, 할렐루야~” 하시던 아빠의 마지막 울음 섞인 인사와 포옹. 차마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안아드리기만 했었는데, 마지막으로 뵌 것은 중환자실에서였다. 연명 치료 중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으신 아빠가 겨우 손가락으로 쓰신 글이 Cof~ 였다. 한 참 만에 이해한 나는 급히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간호사의 허락을 받은 후, 솜에 커피를 묻혀 혀끝에 발라드렸는데, 그것이 아빠에겐 마지막 만찬이자 기쁨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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