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한 권으로 끝내기
Mastery in English
27살이 되던 봄에 결혼을 앞두고, 여러 결혼용품을 준비하기 전에 요리책을 한 권 샀다. 새 신랑인 남편을 위해 무언가 만들어 주려고 하니 긴장이 되었다. 요리책을 펴놓고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만든 첫 요리가 애호박전이었다. 그 후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수년간 사용하였다. 결혼식 며칠을 남기고 또 한 권의 책을 급하게 샀는데, 크리스천을 위한 성교육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성의 음부 내부의 모습을 보면서 사뭇 놀랐다. 항문과 소변 구멍 외에 또 하나의 구멍이 있는 것이었다. 내 몸 아랫부분에 두 개가 아니고 세 개의 구멍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중학교 성교육 시간에 자궁의 모습도 보았고 태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배우긴 하였지만, 내 몸과 성에 무심하고 무지했던 것이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아빠가 방에 들어오시는 바람에 당황하여 얼른 이불속으로 숨긴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로, 그 책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영어에 대한 사랑과 확고한 신념을 흔들어 놓은 책이 몇 권 있다. 그중에 일본의 사회학자인 야쿠시인 히토시가 쓴 <영어공부, 이 한 권으로 끝내기>가 있다. 그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영어 공부를 더 이상 하지 말자!’ 고 주장하는 신선한 책이다. 한 마디로, 한 권의 영어교재로 영어를 마스터할 수는 없으니, 영어가 아닌 다른 재능을 찾으라는 말이다. 우리의 시간을 효과적인 곳에 쓰고, 영어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처럼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한국인들은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지, 영어를 잘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니,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아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 일본의 아사히 신문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우이치는 ‘비영어인은 세상이 뒤집혀도 영어인의 상대가 되지 않고 늘 불리하니, 선택권은 딱 두 가지’라고 말한다. ‘영어를 말하는 동포 수를 늘리거나 애초부터 사용하지 않거나!’ 영어를 국제 공통어나 세계어로서 ‘영어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배우는 것은 위험하고, 그러한 생각과 행동은 영어가 세계 표준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고 한다. 자신의 지식과 기술이 충분한 경우에 영어가 문제라면 전문 통역이나 번역자를 고용하면 되고, 그것이 비용과 시간을 아끼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전 국민이 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효율을 떨어뜨리는 일이니, 전문가만 배우면 된다는 말이다. 원자력 발전소 전기 엔지니어인 남편이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도 이처럼 말하곤 하였다. "전문 통역관을 고용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이다.
하지만, 각각의 전문 직업의 영역에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용어와 중요한 개념이 있고, 그러한 전문 지식을 갖춘 통역관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몇 년 전 일본 여행에서 식당과 호텔에서 만난 일본인들이 영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분들 대다수가 연세가 많이 들긴 했지만, 혹시나 이러한 주장의 영향을 받아서 영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쪽을 택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도 후나바시 요우이치의 주장처럼 선택지가, 영어를 배우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로, 딱 두 가지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연애를 하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처럼 말이다.
스웨덴 글로벌 교육기업인 Education First(EF)가 220만 명의 시험 응시자의 자료를 분석한 2019 영어 능력지수 보고서(EFI: English Proficiency Index)에서 ‘영어공부는 한 단계 성장하는데 수백 시간의 공부가 필요한 장기전’이라고 규정하였다. 2020년 나라별 영어 능숙도 순위에서 한국은 100개국 중에서 32위로, 3년 전 30위에서 2순위나 내려간 성적표를 받았다. 영어 능숙도에 대한 평가에서 보통의 능숙도(Moderate Proficiency)를 받았고, 우리의 비교군인 이웃 나라 일본은 낮은 능숙도(Low Proficiency)로 55위다.
우리나라는 영어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교육과 사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왜 이런 성적표를 받은 것일까? 중, 고생들은 내신과 수능을 목표로 EBS 교재와 기출 모의고사만을 공부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토익(TOEIC) 한 권을 공부하고 있고, 교수들도 학교에서 토익을 가르치고 있다. 모두가 취업을 위한 노력이라고 하지만, 수능점수와 토익점수는 직업과 삶의 현장에서 사용되는 영어 능숙도와는 거리가 멀다.
영어의 능숙도(proficiency)란 영어의 유창성(fluency)과 정확성(accuracy)을 기준으로 얼마나 능숙하게 말하고 쓸 수 있는가에 대한 능력이다. 토익 점수를 위한 빠른 독해와 듣기 연습이 영어 능숙도에 도움이 되긴 한다. 문제는 10대와 20대, 한창 영어 능숙도를 키워야 할 나이에 불필요한 시험과 영어인증시험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토익 만점자이고, 토익 강사다. 하지만 먼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한다거나,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영어가 아닌 우리말이라도 대화를 하고 소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외국인과도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영어 점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삶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것이 영어의 정체성이다. 아무튼, 난 그렇게 단 한 권의 책만으로는 요리도 사랑도 마스터할 수 없었다. 영어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