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덜트가 집착하는 크리스마스 상징의 맛인 슈톨렌을 찾아 나서다.
독일의 겨울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 당겨지고, 서서히 기온이 내려가면서 슬며시 차가운 공기가 뺨에 닿을 즈음 독일 이곳저곳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돌입하는 다양한 아이템들이 등장합니다.
12월 1일부터 24일(또는 25일)까지 매일 날짜가 적힌 칸의 문을 열어 초콜릿이나 하리보 또는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등을 꺼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어드벤트 캘린더를 시작으로 각종 장식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중 당연히 눈에 띄는 것이 슈톨렌입니다.
그동안은 빵에 입문할 당시부터 사워도우와 함께 연결 지어 이름 불리던 빵 들 중 하나로 슈톨렌을 규정지었었네요. 하지만 현지에서 접해보니 이 슈톨렌은 그저 단순히 크리스마스에 먹는 슈톨렌이 아닙니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전통과 문화에 뿌리를 둔 먹거리입니다.
10월이 시작되면서 부쩍 내려가는 기온과 함께 집집마다 켜지는 주황색 불빛들이 더해져 도시 전체가 따뜻한 느낌으로 풍경이 바뀌어갑니다.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너무 잘 어울리는 풍경으로 물들어가는 것이죠. 이런 이국적인 풍경과 닮은 슈톨렌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 껏 더 끌어올립니다.
슈톨렌은 독일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빵입니다. 단맛이 풍부하여 케이크류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빵입니다.
슈톨렌의 역사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의 슈톨렌은 지금 우리가 아는 진하고 풍성한 빵과는 달랐다고 전해집니다. 금욕과 절제를 상징하는 대림절(Advent) 기간에는 버터나 우유를 금지하는 교회 규율이 있었고, 사람들은 물과 밀가루, 효모로만 만든 단단한 빵을 먹어야만 했답니다. 지금의 슈톨렌과는 너무도 다른 기름기 없고 매우 담백한 일종의 금식용 빵이었죠.
그러다 1490년, 독일 드레스덴의 제후들이 교황 인노첸시오 8세에게 “버터 사용을 허락해 달라”는 탄원을 올렸고, 교황은 결국 제후들에게만 버터 사용을 허가했고, 이를 계기로 슈톨렌은 점차 부드럽고 풍성한 빵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레몬 향을 머금은 건포도, 오렌지 필, 아몬드, 마지팬 등이 추가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한 조각만 먹어도 축제가 시작되는 것 같다'라고도 표현되는 풍미 깊은 크리스마스 빵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슈톨렌은 다양한 종류의 건과일을 사용하는데, 이 건조한 과일을 럼이나 오렌지 리큐어에 담갔다가 빵 반죽에 넣습니다. 만약 건조과일을 그냥 밀가루와 섞어 반죽을 하면 건과일이 수분을 빼앗아 슈톨렌 자체가 푸석해지겠지요. 반죽의 일부분은 수화가 덜 일어나 호화도 덜 되겠고요. 따라서 건조과일이 수분을 충분히 머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건조과일은 향과 풍미를 더해줄 럼이나 리큐어에 담가줍니다. 물론 알코올이 과일을 보존하는 역할도 할 수 있겠지요.
슈톨렌은 빵 안에 마지팬(아몬드가루와 설탕, 머랭으로 반죽한 것)을 넣은 것도 있지만 건조과일류만 넣은 것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지팬은 강보에 싸인 아기예수를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슈톨렌의 처음 시작이 수도원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과 연결 지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부재료 외에 본 반죽을 만드는 공정도 시간이 꽤 소요됩니다. 중종이라고 하는 발효종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본 반죽을 하게 됩니다. 이 역시 사우어도우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독일 빵 제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크리스마스라는 큰 행사에 걸맞게 원래 빵 만드는 재료와 방법에 더해 축제에 즐길 수 있는 천상의 맛인 버터나 당류를 충분히 넣었을 것으로 추축해 봅니다.
여기에 독일의 겨울이 슈톨렌을 만드는데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대부분 나라들의 겨울이 비슷하겠습니다만 독일의 겨울은 정말 길고 춥습니다. 오후 4시면 해가 사라지고요. 심지어 비나 눈도 자주 내리고 구름 낀 날들이 대부분이지요. 때문에 달달한 것을 만들어 먹으며 겨울을 지내는 것이 아닐까요?
글을 쓰다 보니 슈톨렌에는 참으로 많은 당분이 첨가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다 굽고 난 후에는 슈가파우더를 뿌려주기까지 하니까요. 아마도 예전에는 귀했던 설탕을 가장 중요한 명절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에 아낌없이 썼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방부 효과가 있는 설탕을 충분히 넣어서 크리스마스 한 달도 훨씬 전부터 만들어서 천천히 오래 먹었던 것일 겁니다.
슈톨렌은 재료와 공정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좀 가격이 비싼 편입니다. 한국에서만 비싼 줄 알았더니 독일도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베이커리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버터슈톨렌 500g에 11.95유로 정도 하니까요. 그리 저렴한 빵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래 두고 먹는다고 생각하면 또 비싼 것도 아닌 것 같네요.
크리스마스를 향해 나아가는 4주 동안의 대림절 기간에 전 유럽은 축제입니다. 유럽의 문화는 기독교적 절기와 결을 함께 합니다. 기독교적 의미에 더해진 크리스마스마는 종교를 떠나 크리스마스가 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게 대체 뭘까요?
블링블링한 크리스마스 장식들만 봐도 가슴 벅차오르던 어린 시절.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 사진을 오려 벽에 붙여두고 바라만 봐도 좋은 저였습니다.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보고 또 보았던 그 사진 속 마켓이 독일의 뉘른베르크였습니다. 정말 인생 알 수 없네요. 빛바랜 종이를 바라보던 어린아이가 자라 반백살의 나이에 독일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라니요.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나요? ^^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표현될 것 같은 상투적인 결말.
누가 뭐래도 저는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너무 좋습니다. 예전처럼 심장 쿵쾅거리며 황홀해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흥분되긴 합니다. 뭐 대단한 거 하지 않고 크리스마스 마켓만 돌아다녀도 좋습니다. 너무 다녀서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픈 나이가 되어도 좋은 것은 좋은가 봅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를 실컷 구경하고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더해 정말 맛있는 슈톨렌을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못 먹었네요. 거 참 이런 게 쓸데없는 집착이겠지요?
한국에서도 맛있다고 소문난 프랑스파 파티시에가 만든 슈톨렌을 먹어왔지만 독일에 왔으니 독일에서 가장 맛있는 슈톨렌을 맛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냥 집 앞 마트에서 파는 슈톨렌 말고 진정 그럴싸한 슈톨렌을 만나려 어제도 오늘도 집을 나서봅니다. 아직도 철이 덜든 키덜트인 반백살 아줌마의 로망이 올해는 꼭 실현되었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