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쓴 글을 모았습니다.
1. 나
여섯 자녀를 두고 한 남자의 아내인 나, 교회 한 곳을 만 10년 차로 다니고 있다. 때때로 책을 읽고 리뷰하고 묵상도 가끔 올린다. 사람은 어쩌다 만나며 글쓰기를 좋아해 그럭저럭 일상을 글로 남긴다. 나의 삶을 책으로 쓰고 싶은 나, 그런 평범한 삶을 누가 읽어보고 싶을까. 뛰어나게 뭘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에 특별한 사연이 있어 그걸 극복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소한 하루의 생각을 붙잡아 글을 쓴다. 사람들이 숏츠나 플랫폼을 보며 잠시 빗겨나가 다른 이의 삶을 관망해 보는 것은 에세이를 책으로 사서 읽는 것과는 다른 결이다. 나의 삶이 내 생각의 파편들이 누굴 돕거나 일으키거나 생기를 줄 수 있을까. 혹은 견디게 할까? 아니면 잠시 웃음이라도 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를 구원할까,
글을 잘 쓰는 이들은 참 많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내가 나를 나타내는 것을 그만, 포기하고 글 쓰는 걸 안 하기로 하며 책, 따위는 쓰지 말자 포기하면 인생이 가볍고 쉬어질까,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표현하지 않고 나의 일상을 sns나 어느 곳에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에게도 평가 대상이 될 수도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 나는 내가 스스로 나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오늘 하루 종일 어떤 한 분이 생각났다. 조금씩 잊혀져 가는 분들을 아마도 그 가족들은 여전히 상실감속에서 지낼지도 모르는데 장례를 치르고 한 계절이 겨우 지나는 그런 분을 개인적으로 연락해 본 적이 없는데 따로 위로할 수도 안부도 묻지 못하는 그분을 한참 떠올리다가 sns에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발견해 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기도를 보탰다. 어쩌면 나 말고도 다른 분들도 기도하겠지 싶어서, 나는 명절에 친정 식구가 없은지 아주 오래되어 상실감이 무뎌졌다.
그럼에도 일찍 겪은 부모의 빈자리는 늘 내 삶을 막막하게 만들었기에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의 반복이 많았다. 주먹을 꽉 쥐고 몸에 바짝 힘을 주지 않고서는 세상을 맞설 수 없어 혼자인 적이 많았다. 오히려 여섯 자녀를 낳고 남편이 있는 정말 나의 가족, 내 피 붙이가 든든히 내 곁에 주변에 항상 있다는 것 그것은 적당하게 느슨하게 한다. 꽉 쥐었던 주먹을 풀고, 잔뜩 찌푸렸던 이마도 부드럽게 펴지고, 이불을 돌돌 말고 낮잠도 잔다. 지금이 좋은 건 모든 상실이 아주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는 것, 바로 어제 일처럼 만질 수 없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은 아프다. 한 사람을 잊는데 무뎌지는 데 걸리는 시간,
그것으로부터 놓이는 일은 때로 10년 이상씩 더 걸리기도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일찍 죽음을 받아들여본 나로서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내본 나는 죽음을 겪은 이들에게 한 없이 너그럽고 충분히 함께 그 짐을 나누어지고 싶은 만큼 안타까워진다.
내 이야기를 하려다가 너무 멀리 왔다.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었네 외롭고 지친 긴 연휴 동안, 다만 무너지지 말고 곁에 조근조근 말을 걸 또 다른 가족 단 한 사람이 있어 서로 위무하기에 충분하기를 바란다.
나는 소용없는 글이라도 쓰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이구나 싶어지는 밤이다.
2. 플로리스트
꽃 가게에 플로리스트인 나, 베이지색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이 주문한 꽃을 만드느라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바쁜 나. 기준점이 높아서 버리고 버리고 버리느라 꽃 한 다발을 완성하지 못한다. 컨디셔닝 하느라 시간이 째깍째깍, 결국 한 다발 만들고 “그래, 이거야. 손님도 만족할 거야.”라며 내가 만든 꽃에 넋을 놓고 있는다.
꽃집에 꽃이 다른 곳보다 비싸다면, 그건 정말 흠집 하나 없는 꽃을 고르고 골라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꽃들로만 선별해 꽃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몇 송이 들어 있지 않은데 부케가 비싼 이유는 최상급의 꽃을 선별해서 제작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밤새 꽃을 만지는 꿈을 꾸었다. ㅎ
어제 꽃이 고팠던 나는 동생도, 아들도, 남편도 생일 선물을 모두 현금으로 줬고, 어린 자녀들은 편지를 써줬다. 내게 생일맞이 꽃을 셀프 선물했다. 약 1년 넘게, 한동안 플로리스트 고급 과정까지 꾸준히 매주 해서일까? 웬만해서는 만족이 되지 않은 꽃집의 꽃다발이 성에 차지 않는다.
어제는 받아보고 “아이고야, 이렇게 조합을 하면 어쩌나. 장사가 될까.” 급기야 다 늘어놓고 뺄 건 빼고 다시 핸드타이드 잡아 다시 화병에 꽂았는데, 꽃의 조화가 만족스럽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거베라랑 장미가 있는 것에 만족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주소서, 기도가 다 나왔다. 그러다 잠든 것인데, 꿈속에서조차 내가 꽃집 주인이 될 줄이야…
아침에 일어나니 화병에 넣어 둔 꽃들이 어제 비를 맞고 도착한 시들시들한 꽃에서 잎들을 모두 정리해 줬더니 생기를 찾았다. 리시안셔스도 쭈굴쭈굴했는데 부드러워지고 말이다. 식물을 들이거나 만질 때마다 느끼지만, 참 놀랍다. 살짝 매만져 주기만 해도 전혀 다른 생기를 느끼니 말이다.
백합을 늘 흰색이나 분홍색으로만 보다가 주황색을 보니 처음에 이게 호박꽃인가 했다. ㅎ 그래도 만진다고 펼쳐놓고 한참 꽃놀이를 했더니 기분이 좋았다.
역시 꽃은 예전 살던 집 상가에 벨플로르 사장님이 만드신 거, 그거 말고는 나를 아직 흡족하게 만족시킨 곳이 없구나 싶어진다. 이사 가니 못 가게 되네. 잘 지내시겠지?
연휴인데도 오픈한 곳이 있어 주문해 본 것인데 아쉽지만 그래도 생일맞이 꽃 아침이 향기롭다.
3. 별일 없는 일상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게 감사하지만, 한편으로 주부는 추석 명절 음식을 만들며 바쁘게 아이들 입속에 맛있는 걸 먹이는 엄마의 모습이 더 바람직한 듯하다. 실제로 누군가의 섬김이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한다. 보람도 있고 떳떳해지고 말이다. 며칠, 막둥이가 아프고 간호하느라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하면서 길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니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엄마의 역할과 지금 내 몫의 짊어져야 할 책임의 자리에 대해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몫에 대해서 말이다. 이틀후면 나의 45번째 생일이다. 나의 태어남이 영원과 잇닿아 있다면 나는 어떤 목적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까? 나는 잘 살고 있는가!부터 자기 검열이 날카롭게 나를 뚫고 지나갔다. 힘들어서 관두고, 책을 읽었다.
책 속 주인공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결국 주변의 모든 이들과 어우러져 현재의 자리까지 이르렀다. 그곳에 참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하물며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치킨 한 마리 반, 피자 한판을 시키면 피자 반은 보낼 수 없으니 피자 한판과 치킨 반마리를 보내 주는 이웃이 선물처럼 있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좋은 사람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참 다정하고 유쾌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이라는 김영웅 작가님의 책인데 현재 생물학자가 청년시절 포항공대에 들어가서 대학원까지 그 사이 군대에 다녀온 이야기를 소설 형식을 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풀어냈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작가 본인의 이야기인지 궁금한 지점들이 생길 만큼 사실적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우리가 함께 겪은 4강 월드컵 신화를 통해 그 시대를 충분히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지난하게 마우스를 상대로 실험하며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끌기까지 또한 그것을 논문으로 발표해 박사 학위까지 이르는 일은 길고 긴 인고의 실패 속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거기 소설 속에 나는, 성공이 아니라 꺾이지 않는 마음, 실패해도 나아가는 삶이 결국 이기는 거라며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실제 삶 속에 적용하려면 어려운 것들을 살아내기를 바라며 유쾌하게 담아냈다. 돼지 삼 형제라며 자신을 먹는 것에 진심인 모습을 그려낼 때는 나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대학생활 미팅을 가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가 결국 다이어트를 해서 미팅에 가는 전개가 아니라 과감히 다이어트를 포기해 버리는 모습에서는 참 반전이구나 싶었고, 바다에 빠진 두 명의 학우에 이야기가 계속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결코 과학자의 여정에 있어 걸림돌이 되거나 그렇다고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않고 그가 성장하는데 좋은 이유로 작용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일구는 삶을 보여준다.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은 이제 막 어른이 돼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청년들이 읽어도 좋겠구나 싶은 양서였다. 좋은 책은 읽으면서 책 속에 빠져들면서 동시에 내 삶 속으로도 들어가 동요를 일으키는 책이다.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바쁜 동적인 시간을 보내기보다 책 한 권을 읽으며 명절 첫날의 연휴를 보낸 것이 결과적으로 앞으로 일주일 내내 있을 연휴 동안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를 제공했다. 넉넉한 추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슬기로운 육 남매 엄마삶의 페이지를 펼쳐보아야겠다.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
#김영웅
#청아출판사
4. 하나님의 레시피
한국 성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당고개에 신작교회를 개척해서 주변의 어려움을 살피던 민찬 양 목사님의 하나님의 레시피를 한자도 빠짐없이 읽었습니다.
가난은 참, 지독합니다. 목회를 하기까지 참, 많은 연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민찬양 목사님 부모님께서 목사님을 많이 사랑하고 아껴준 그 돌봄이 지금의 목사님을 있게 한 것 같아 읽는 내내 감사했습니다. 부모가 걸어간 길을 보고 배우며 묵묵히 기도하는 삶, 성도의 어려운 삶을 직접 살아내며 설교자의 삶을 곧 자신의 삶으로 녹아내 강단에 서 계신분이 제 가까운데 계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9년 동안이나 반지하에서 아이들과 살면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천장에 쥐가 돌아다니는데도 쥐약을 넣으며 목회를 하는 목사님의 지난한 고생들이 지나 보니 은혜였다는 말이 먹먹합니다.
빨간 국물에 둥둥 떠다니기만 한 건강한 떡볶이를 해 주던 신혼이셨던 사모님과의 일화에서도 셋을 낳고 자비량 목사가 되어 사업을 해 생계를 꾸려가던 이야기도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가장의 무게 또한 느껴졌습니다.
한국 성서 대학교는 노원구의 자랑입니다. 제가 볼 때 늘 그리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제가 교사로 근무할 때 성서 대학교 안의 어린이집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계신 교사분들을 비롯해 모두 사랑이 넘치셔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거든요. 당현천을 지나갈 때마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한국성서대학교를 볼 때마다 저는 그곳에 불이 교회의 어떤 따스한 십자가보다 더 유독 빛이 났어요. 제가 사는 지역이라 더 애정이 가나 봅니다. 당고개역에 저도 처음 갔을 때 많이 당황했습니다. 사람들이 도로를 나이 드신 분들이 신호등과 관계없이 걸어 다니기도 하고, 이곳은 서울인데 왜 이렇지 했거든요. 그곳 어린이집 면접을 갔는데 매우 낙후한 시설에 저와 근무를 하고 싶다는 데도 도망치듯 저는 빠져나왔거든요.
민찬양 목사님은 일부러 어렵고 좁은 길을 애써 찾아가시는 듯한 걸음을 읽는 내내 보게 됩니다. 쉬운 길 편한 길이 있는데도 계속 좁은 길을 따라가는 삶 속에 주님의 위로하심도 넘치셨던 것 같습니다.
세움북스 재간증 시리즈 첫 화가 서진교 목사님의 작은 자의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민찬양 목사님의 하나님의 레시피 최근작까지 불현듯 이 분의 삶은 꼭 읽어보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 민찬양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저랑 페친이신데 평소에는 반응하지 않으시다가. 제가 어려움을 토로하고 힘들 때 글을 남기시거나 반응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만나 뵙지도 못했지만, 힘이 되고 기도가 느껴졌어요. 요 근래 우연히 책 나온 것을 알고, 어제 받고 바로 전부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그 마음대로 목사님의 성품이 온전히 책 속에 드러나 있어 감사하더라고요.
왜 위로를 오히려 해 드리고 싶을까요. 그냥 이유 없이 전화하신 책 속에 등장하는 목사님의 그 마음도 알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삶이 참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목사님을 통해 느껴봅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그 일을 감당하며 얻었을 마음과 몸의 병을 기도로 이겨 내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목사님의 삶을 엿보게 됩니다.
재간증 시리즈는 참, 이상합니다. 힘들고 어려웠는데
고통스럽고 아팠는데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하고 병이 완전히 낫고 치료되어 건강하게 살고 계시는 간증은 없고, 여전히 아프고 고통스럽고 계속 가난합니다. 그럼에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와 같이 목사로서의 삶도, 성도의 삶을 살고 계시는 목사님.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찬양을 부르며 주님과 함께 가시는 민찬 양 목사님,
책 잘 읽었어요. 많은 분들이 목사님의 삶을 응원하고 기도하며 함께 걸어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레시피
#민찬양
#세움북스
5. 드리는 마음
드리고 싶지만 애매할 때, 내가 정한 선에서 멀리 볼 때 서로에게 좋고 스스로도 넘어지지 않는 범위는 ‘딱 드리고도 죄송한 마음이 드는 정도’이다. 자신에게 고맙거나 감사해서 선물이나 그 밖의 답례를 할 때 ‘내가 이 정도나 주었는데 왜 이 사람은 나에게 이 정도의 반응뿐인가’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온다면, 드리지 못할 때보다 더 좋지 못한 관계가 된다. 그건 양쪽 모두 불편해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느낀 드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그렇다. 특히 헌금도 그렇다.
내가 하나님께 감사해서 드리면서도 ‘이만큼밖에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 생각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리면서도 마음이 가난해질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생각을 했다. 관계도 비슷하다. 무얼 주고 싶어서 주어 놓고 반응을 살피는 건, 주는 것으로 자기가 은연중에 주도권을 쥐고 싶은 경우다. 선물이라는 것은 딱, 자신의 위치가 더 낮아지면서, 끝없이 낮아지면서도 더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 때 오로지 ‘선물’이나 ‘은혜’로 작용한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해서 자주 넘어지기에, 자신을 과신해서 드리면 그것은 나중에 몇 배로 자기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때 문제는 걷잡을 수 없기도 관계가 돌이킬 수없이 망가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죄송하거나 감사한 마음이 진심으로 일어날 때 드려야 한다.” 죄송하다는 마음으로 또는 정말 감사해서 드리지 않고서는 오히려 마음이 시험들 때는 드릴 때다. 그만큼 헤아리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관계가 서로를 위하면서 친밀해지는 것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건 각종 선물이기보다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는 것 그것이 결국 더 가깝게 하는 걸 경험한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6. 순수에 대한 갈망
사람이 편안한 상태, 걱정 없이 즐거운 천진난만한 상태가 되면, 이유 없이 기쁨이 솟아난다. 눈물도 그렇다. 조금만 힘들어도 눈물이 난다. 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는 것, 무엇을 더 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순수하게 되면,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난다.
잠을 푹 잤고, 아들 치과 결제 한다고 아침에 받은 남편의 신용카드로 치과 결제 하고 오는데 신발이 사고 싶어졌다. 구두가 불편하기도 했고, 오래전에 산 내 운동화는 신발장에서 안 신은지 오래, “여보 소은이 신발 사달래.” 초등 입학 때 산 신발이 6개월 정도 지나니 조금 작아진 것, 200을 신었는데 210이다. 전화를 했다. “여보 내 것도 사도 돼? “ 남편은 내게 생활비를 주는 거라 생활비에서 내 신발 사는 건 좀. 이번 달 안 될 것 같아서 물었다. 얼마 전 8월 전기 요금이 47만 원이 나왔다. 내 생애 처음이었다. 한 달 동안 24시간 틀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 집은 매번 수도요금도 많이 나온다. 무엇을 더하고 빼고에 있어 조금만 흐트러지면 카드값이 상상 이상으로 나온다. 그래도 남편 카드를 받았는데, 이대로 보내면 뭔가 서운했다. 신발 사러 딸과 함께 ABC마트에 갔다. 남편이 사 주는 거니,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골라 신어봤다. 가격은 덜 걱정하고 “엄마 빨리 가자 채은이 데리러 갈 시간 다 되었어.” 본인 신발을 이미 결정해 샀고, 그 자리에서 신고 있으니 아이들은 본인의 일이 끝나면 빨리 가자고 성화다. 엄마는 못 고르겠어. 종류가 많아 아까 사고 싶었던 건 엄마 치수는 품절이래 거의 채은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임박해서 다섯 켤레 정도 신어보고 드디어 사 왔다. 신발을 샀는데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우리는, 채은이를 하원시키고 함께 햄버거를 먹고, 배가 부르니 또 집에 가기 싫었던 우리는 나비정원에 갔다.
하늘 높이 분수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넷째 아들 녀석도 햄버거 먹으러 가자 해서 함께 갔는데 분수에 젖겠다는 걸 말렸다. 물에 발만 담그고 놀다가 결국 옷이 젖은 건 막둥이다. 발목에 잠기는 물 바닥을 첨벙첨벙 걷다가 그대로 넘어진 것, 서둘러 감기 걸릴까 봐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신발을 살 때, 옷을 살 때보다 쑥쑥 큰 걸 경험한다. 남자애들은 3개월 만에 발이 커져서 신발을 사는 경우도 많고 크는 얘들은 6개월 안쪽으로 신발치수를 크게 다시 사줘야 한다고, 어른이 돼서 성장이 다 마치면 내 신발 치수가 정해진다. 난, 245였는데 어느 날 250이 돼서 250을 신는다. 발가락이 긴 편이라 그렇다. ^^ 아이들 신발치수는 막둥이부터 130, 210, 235, 260, 큰아들 둘 280 남편도 280 난 250 가끔 직접 데려가서 사 주지 않으면 신발치수가 헷갈린다. 잘못 사 와서 다시 교환하러 가는 건 어려우니 데려가는데 신발을 사러 가는 날에는 아이들이 상기되곤 한다. 마치 옛날 어린 시절 신발을 사 주면 방안에 두고 자는 것처럼, 어제 나도 오랜만에 산 신발도 아닌데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잤다. ^^~
신발 산 이야기로 괜스레 말이 많아진다. ^^ 가족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기쁨을 누릴 기회도 수만큼 증가한다는 이야기고, 슬픔도 감당해야 하는 몫이 많다는 이야기다. 좋은 쪽을 택할 것이다. 문득 성경말씀 중에 달란트 비유가 생각난다. 하나님나라는 땅 속에 묻어두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이 주신 달란트가 있다면 그것으로 기쁨을 선택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꼭 돈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 속에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은 하루가 준 작은 것들을 온전히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이 그분이 말한 달란트 비유가 아닐까 싶다. 슬픔도 격렬힌게 슬퍼하고 기쁨도 마치 처음 맞는 일처럼 기뻐하고 말이다. 모처럼 순수한 상태가 되어 하루를 놀았다. 이런 자잘한 일상이 내 삶 속에 무럭무럭 자라서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니라 그 말씀처럼 될 테지 아멘 무엇이든 다시 걸어가면 된다. 순수하게 바라보고 나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길…
7. 다정한 마음, 고독한 영혼
저희 동네에 노원 문화 예술 회관이 있습니다. 걸으면 10분이면 갈 수 있어요. 한국 근현대 거장의 삶과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 중인데요. 제가 사는 지역을 문화 도시라 명명해 가끔 정말 유명하신 분들이 공연을 합니다.
어제는 산책하다가 노원구민 매우 저렴한 3천 원의 요금으로 큰 기대 없이 들어갔습니다. 시립미술관이 이 또한 동네에 있어 자주 갔기에 사실 큰 기대는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매우 달랐습니다. 미술을 전공으로 하신 분들은 이미 모두 잘 아는 작품들이라 원래 소장되어 있던 곳에 가서 감상했을지 모르겠지만, 인쇄된 종이나 미술 교과서 혹은 역사 교과서 한 귀퉁이에서 봤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역시 거장은 달랐습니다.
박수근, 이중섭, 천경자 세분의 작품이 특히 제 마음에 생동감을 남겼어요. 오랜 산책 이후로 1프로 남은 배터리라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돌판에 새겨진 듯한 그림을 표현해 내기 위해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알게 되기도 하고 원작으로 만나니, 아 이래서 거장이구나 싶더라고요. 모두 원작 그대로 전시해 놓았는데요. 특히 천경자 님의 개구리, 금붕어는 왜 천경자의 색채나 구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동안, 인쇄된 종이에서 봤던 그림은 작품의 생생함을 전달하지 못해요. 조금 압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8월 21일부터 10월 16일까지 진행되니 꼭 가셔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해외에 유명 작가들보다 더 좋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정서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왜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은 잠깐 보면 예쁘고 아름다운 반면 계속 보면 눈이 부시는데 반해 화장기 없는 맨 얼굴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에서 편안히 쉬어지는 듯한 수묵화나 한국화에서 여백을 느끼는 것처럼, 한 가지 색으로 나타낸 그림 안에서 가만히 머물면 그림이 삶과 겹쳐지듯 일상이 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전시를 많이 보러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원작 그대로 거장들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제가 한국인인 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해외의 작품과 견주어 뒤처지지 않고 고유의 한국 정서가 전해지니 참 좋았습니다.
1,2관 딱 두관뿐이지만 가끔 그림 한 작품을 오래 감상하고 싶기도 하잖아요. 그만큼 작품 하나하나에 매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권해봅니다. ^^~
8. 시간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어제는 가까운 현장에서 일을 하니 느지막이 9시 즈음 남편이 일어났습니다. 택시 불러달란 말에 막둥이를 얼른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와서 전화할게 내려와라고 말했답니다. 파란색 작업복 조끼와 바지랑, 양말을 가지런히 챙겨놓았더니 입고 나온 남편을 도봉구청으로 지난번과 같이 데려다줬습니다. 오는 길에 집으로 곧장 들어가기 또 아까웠던 저는 어슬렁 무얼 할까 하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책을 중고로 사야겠구나 싶어 알라딘에 들렀답니다. 알라딘 룰렛 이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1천 원에서 3천 원까지 나오는 룰렛 돌리기를 하니 저는 3천 원 당첨!! 그게 뭐라고 얼마나 신났는지 모릅니다. 좋아하는 책을 네 권이나 샀고, 고흐의 화병 그림이 그려진 연습장까지 샀는데 2만 원도 안 나왔어요. 물론 럭키백 회원이기도 해서요. 집에 돌아와 겉 투명 비닐에 곱게 쌓인 두 권의 세트 책에서 나온 시입니다. 그 시를 읊조리며 세상에는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시와 소설, 그리고 그 밖의 등등이 많구나 싶어 얼마나 좋던지요!
오늘, 아침에는 화성으로 간 책방에서 포도식초가 굿즈로 다 왔습니다. 특별히 우리 막둥이가 좋아하는 뻥튀기도 함께요. ^^ 물에 약간 짙은 농도로 타 먹어보니 식초도 발효식품인지라 약간 취한 기분이 되어 달콤해졌어요. 해서 어제 제가 만난 책을 보여주고 싶어 지더라고요. 가끔, 기쁨이라는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보여주고 표현하고 말하고 싶어 집니다. 그렇게 속 없는 사람이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 지금의 기쁨과는 다른 분위기지만 가을과 어울리는 이 시를 제가 사랑하는 분들과 선물 같아서 나누어보아요. 충만해지는 화성으로 간 책방 가을꾸러미 감사합니다.
시간들
안현미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하여 묻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죽은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9. 나와 너
"경험으로 말미암은 인식은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것."
정말 그렇다. 같은 경험 속에서도 서로 다른 해석을 갖는 게 흔하듯이 말이다. "나와 너." 마르틴 부버의 책을 집었다.
들어서 읽으라 툴레 레게라는 말은 여기서 작용하는 것 같다.
"얘들아, 엄마 너무 슬퍼 아픈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아. 엄마는 그동안 죽을 만큼 아파본 것이 드물어서 진짜 아픈 사람들을 몰랐던 것 같아. "
라고 책 읽다가 아이들에게 투정 (?)을 부렸다. 요 근래 내가 책만 읽으니 막둥이가 내 옆에 와서 그림 한 점 없는 책들을 계속 처음부터 끝까지 사락사락 펼친다. 귀엽다.
요즘, 내가 깊이 읽지 않은 기독교 고전에 다시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있다. 이사 갈 때 대부분 처분해서 아까운 내 책들 ㅠㅠ 먼저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 책을 다시 사려고 한다. 필사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왜 처분했을까. ㅎ ㅎ ㅎ 그때는 이사가 더 중요했다.
나는, 무엇을 알까? 누군가의 고통에는 무감했거나 세심하게 헤아리고 관심을 둘 만큼 깊은 애정은 발휘되지 못했다. 그저 얕은 마음으로 다가갔다가 내가 감당이 안되면 서둘러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가족이 아니라 타인을 품을 수 있는 관계는 쉽사리 만들어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한계 너머로 이동해야 하니까,
10. 자유롭게, 용감하게, 현명하게
아마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낸 게 아니었다면, 저는 이 책을 사서 읽어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문학하는 분 중에 허수경 유고집이 있어요. 그것과 닮은 표지를 보고, 읽어보긴 해야지 하며 교보문고 예약판매를 신청하려다가 나오면 가서 사자 싶어 잠시 기독서점에 다녀와 아이오기 전까지 읽었어요. 작가의 남편이 읽기 전에,라는 서문의 글을 읽는데 눈물이 그만 나더라고요.
저는 김경아 작가님을 전혀 모릅니다. 사전 정보도 없고요. 남편이 아내의 유작을 내는 것이 레이철헬드에반스 마지막 작품과 닿아 있다 여겼는데 이 작품은 그것과는 달랐어요. 뭐랄까. 레이철은 외국분이라 그런지 슬픔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았거든요. 남편, 김종호 님께서 마치 음성언어처럼 아내의 삶의 기록을 남긴 것이 마치 실재처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처럼 제게 와닿았어요. 읽기 전에 언급한, 입관예배 때 저희 담임 목사님께서 함께 하신 설교문이 있어 읽어보았는데, 마치 그곳에 제가 가 있는 듯 몹시 슬퍼졌습니다. 문이 닫혀버린 것과 같은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통과할 것 같은 죽음을 책으로 읽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이런 책을 낼 때마다 다시 한번 살아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소망 가운데 살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전혀 저와 접촉하지 않았던 한 사람.. 작가 김경아 그분께서 어떤 삶을 살고 가셨는지 책으로 만나 보시면 좋겠어요.
누구라도 읽고 살아생전 영향력을 펼친 김경아 작가님이 생을 달리해서라도 여전히 더 많은 생명력을 남기시길 이 책으로 그리되길 기도하게 됩니다. 가을에는 꼭 이 책을 선물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곧바로 선물했답니다.
#자유롭게 용감하게 현명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
#김경아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고칠 수 없다 연재를 아쉽지만
이번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긴 추석 연휴 동안 더 깊어지고 넓어졌기를 바라봅니다. 좋은 글로 다시 찾아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