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을 헤매다 길을 잃었다 5

어두운 터널 속에서 뒤죽박죽으로 기록된 일상들

by 슬비아빠

22/08/06

며칠 전 주문했던 포토북이 도착했다.

왜 진작 만들어주지 못했을까?

무엇이든 후회가 된다.

슬비를 기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22/08/07

백신 접종한 자녀를 두신 학부모님들께 말씀드립니다.


저희 딸은 감기도 잘 안 걸리고 병원도 거의 가본 적 없는 아주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친구들도 저희 딸이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저희 딸이 아프다는 걸 다들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저희 딸이 어느 날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하면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군요. 또래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소화제 사 먹으라 했습니다.


한 열흘을 그랬습니다.


그러다 월요일에 학교에서 열이 38도 정도 나면서 머리가 아파서 외출로 근처 병원 가서 해열진통제 맞는다길래 반차 쓰고 데리러 갔습니다. 참고로 집은 포항이고 학교는 구미 경북외고입니다. 그래서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이야기를 해보니 컨디션은 좋고 다음주가 시험이라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집에 갔는데 괜찮으면 어쩌지? 하면서 걱정하길래 안 아프면 다행이지~하면서 농담도 했죠.


시험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대충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성적 스트레스 같은 거 전혀 안 주고 본인도 크게 스트레스 안 받는다고 했죠. 외고 가서 꼴찌해도 상관없다고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집으로 온 다음날 PCR검사 후 다음날 음성이 나와서 수요일 오후에 학교로 데려다줬습니다. 갈 때도 서브웨이 가서 샌드위치 하나 다 먹고 잘 들어갔고 초저녁까지 저랑 카톡을 주고받았습니다. 아직은 컨디션이 완전치 않다면서 주말에 귀교하면 안 되냐고 저랑 이야기했죠. 더 있어보고 안 좋으면 집으로 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시각이 18:30분이었습니다.


그날밤 밤 11시쯤 화장실에서 쓰러져 119로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 후 의식 회복 못하고 2주 만에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른 게 아닙니다. 백신을 접종한 아이들이 머리, 심장과 관계된 부위에 사소한 증상이라도 보인다 싶으면 일단 3차 병원으로 가세요. 가서 검사를 하더라도 음성이나 이상 없음으로 나올 겁니다. 저희는 지방이라 3차 병원(상급종합병원)이 없었고 구미에서 대구 3차 병원 이송요청을 했으나 안 해줘서 연고지인 포항으로 옮겼다가 다음날 대구로 간 겁니다. 이상 없음으로 나오더라도 계속해서 예의주시하시면서 지속적인 관찰을 하셔야 합니다. mRNA 코로나 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에 평상시처럼 대하시면 안 됩니다.


상식적으로 두통,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갔는데 병원에서 MRI찍자는 이야기 안 합니다. 어떤 증상이 나와야 찍자고 할 테고 보호자도 납득을 하니까요. 특히 저희처럼 지방에 사시는 분들은 모든 인맥을 총동원하셔서 상급종합병원에 의사 한두 명은 미리 알아 놓으셔야 합니다. 중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초기대응이 절대적입니다. 병원에 아는 분 없으면 응급실서 대기해야 하는데 여기서 병을 더 키우게 됩니다.


응급실 대기보다 일단 약처방이 먼접니다. 중증일 경우나 저희처럼 의식이 없는 경우, 자가면역뇌염처럼 선제적 대응이 중요한 질병은 약을 쓰면서 옮기는 게 나을 겁니다. 저희도 선제적으로 약을 쓰면서 의사섭외 후 중환자실 자리 만들어서 옮겼습니다. 그래도 응급실 두 시간 대기했습니다.


백신을 맞으셨다면 평소와는 다른 상황임을 인지하세요. 침착하시고 미리 준비한 데로 진행하세요. 가능한 무조건 서울로 가세요. 저희는 경련과 호흡 때문에 못 옮겼습니다. 안 간 게 아닙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은 그냥 넘기지 마시고 꼭 실행계획을 세우세요.


저희도 지금까지 아프거나 다치는 것, 병에 걸리는 것, 사고 나는 것 등등 모두 남의 일이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불과 두 달 전까지 병원은 남들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병원이라곤 치과 가는 게 다였습니다.


백신을 맞으셨다면 이제 남의 일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정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22/08/09

끝이 없는 슬픔의 터널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그 터널은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일방통행이다.

때로는 쓰나미처럼, 때로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힘없이 마주한다. 어떤 위로나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미래도 희망도 없이 그냥 시간을 보내려 하루를 살아간다. 어떤 의미도 어떤 의지도 없다. 시간은 약이 아니다. 시간은 독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지도 않다. 이 세상에 집사람과 나 둘만 남은 느낌이다. 나의 분신 같았던 슬비가 없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이 세상을 차분히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린다.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은 마를 줄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는 슬비의 마지막 모습에 희망과 용기는 사라진다.


모든 것을 멈추고 슬비를 추모하고 싶지만 세상은 그마저 용납하지 않는다. 슬퍼할 시간조차 넉넉히 주어지지 않는다. 이 딴 세상이 어떤 가치가 있다고 그리 아등바등 살아온 것일까?


더 이상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이 세상은 열심히 살 가치가 없다.



22/08/14

내 비록 특정할 종교는 없지만 슬비를 절에 데려다 놨기에 매일 천수경을 듣는다. CD를 구매해 차에서 듣고 음원을 구매해 시간 날 때마다 듣는다. 일하면서도 듣고 차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나온다. 돌이켜보면 운전을 험하게 했던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대학시절에 금강경을 듣던 기억이 난다. 천수경을 듣고 또 들으면서 슬비가 못다 이룬 꿈들을 하늘에서 마음껏 펼치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불교를 믿는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영향으로 불교가 가장 친숙하다. 그래서 슬비를 절에 데려다 놓은 것 같다.


오늘 슬비 친구가 슬비 카톡에 슬비가 구급차를 타기 전 상황을 적어줬다. 그냥 쓰러진 게 아니었다. 나와 카톡을 할 때도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알게 되니 또 큰 슬픔이 밀려온다. 그래도 슬비 친구 덕분에 알게 되어 다행이다.

슬비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에게서 카톡, 인스타, 블로그 등으로 연락이 온다. 우리보다 친구들이 더 슬퍼하는 것 같아 더욱 숙연해진다. 슬비 방에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쪽지들이 엄청 많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는지 또 실감하게 된다. 슬비는 부모인 우리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었고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들이 슬비를 위해 화환을 보내주셨고 조의를 전해주셨고 온라인에서 슬비의 소식을 읽으신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연도미사를 해주시고 백중기도를 해주셨다.


슬비가 우리 딸이었다는 것에 항상 감사했고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가슴에 남았고 아파할 수 없는 아픔이 가슴에 새겨졌다.


이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까?


많은 분들께서 힘내라고 격려를 전해주신다. 함께 슬퍼해주시고 함께 울어주신다. 우리의 슬픔을, 고통을 함께 나누어 주심에 감사드린다.



22/08/17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아무런 의욕도 의지도 없이 허망한 하루들이다. 멍하니 출근해서 멍하니 퇴근 시간만 바라보고 앉아 있다가 집으로와 또다시 슬픔에 잠긴다. 우리 슬비의 마지막 날들이 하루씩 하루씩 선명하게 떠오른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으나 슬비가 쓰러졌을 당시의 모습들도 눈으로 본 것 마냥 선명하다. 매일 새벽 눈을 뜨면 병상에 누워있는 슬비의 모습과 집중치료실 밖에서 안타까워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잠시간의 면회에서 슬비를 더 많이 만져주지 못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음이 너무너무 아쉽고 후회된다.


마지막 가는 길에 한번 안아보지도 못했다. 그저 불쌍하고 안쓰러움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다정하게 인사도 못했던 것 같다. 슬비를 위해 기도를 하려고 절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를 할 때도 머릿속에 아무런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언가 슬비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하는데 눈물을 삼키며 절만 하고 나오게 된다. 매일 글을 쓸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순간순간 슬비를 생각하며 슬비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슬비의 모습이 떠오르면 참을 겨를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누가 보면 민폐라도 될까 싶어 눈치가 보인다. 슬픔도 때와 장소가 있나 싶어 더 서글퍼진다. 산에 들어가서 마음껏 슬퍼해야 할까? 습관적으로 자다가 전화기를 확인한다. 기숙사에 있는 슬비가 혹시 전화를 했는데 받지 못했나 싶어서 확인을 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기다리던 시간은 슬비의 귀가주 금요일이었다. 두 번째로 기다리던 시간은 슬비가 수신자부담으로 전화하는 10:30 어림의 시간이다. 1학년때는 거의 매일 전화가 왔다. 2학년이 되자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줄었다. 학교 동아리다 운영위원회다 해서 바쁘다고 했다. 귀가할 때면 항상 동아리와 운위 이야기였다. 특히 운위를 하면서 너무 바빠 잠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했다. 내 딸은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들을 때마다 놀라웠다. 그런 운영위원회가 어제 끝이 났다고 한다. 우리 슬비가 있었으면 분명 전화가 왔을 것이다. 전화로 얼마나 홀가분 한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했겠지...


저녁에 전화는 아빠인 나에게 한다. 엄마는 스케줄이 불특정해 항상 나와 통화를 했다. 내가 잠들어 전화를 못 받은 게 세 번 정도였다. 3층에서 1층까지 내려와 줄 서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못 받으면 너무너무 섭섭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바로 카톡을 남기면 다음날 '괜찮아'라고 답장이 왔다. 슬비와 관계된 일에 귀찮거나 번거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무엇을 하더라도 기쁨이었고 보람이었다. 나는 슬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했고 고개만 돌리면 존재하는 '아빠'였기 때문이었다. 슬비도 나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내 삶의 기둥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자랑스러웠고 언제 어디서나 사랑스러웠다. 이제 나의 버팀목은 사라졌고 삶의 기둥도 사라졌다.


도무지 실감할 수가 없다. 내가 슬비가 없음을 받아 들는 순간 슬비와의 기억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22/08/21

주말 처형네에서 소주 한 잔 하다가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습관적으로 슬비를 찾았다. 잊고 있었던 것인가? 다행히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냥 넘기려는 순간 밀려오는 죄책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곤 집사람도 참았던 눈물을 쏟는다. 힘들게 참고 있었나 보다. 통곡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울었다.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가혹한 벌을 받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지... 이승에 존재하는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을 왜 우리가 겪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힘내라, 잊어라, 잘 보내줘라 등 위로를 건넨다. 겪어보지 않은 슬픔에 대해 이해한다는 식의 위로를 전할 때면 모든 게 다 싫어진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은 부모들이 모인 곳의 글들을 보면 다 우리와 같은 마음이다.


우리가 걱정되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 것이지만 때로는 더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상처가 날 곳 없이 난도질당했고 그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그리움이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것이다. 시간 조금 지났다고 예전과 같아질 수는 없다.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그리움에 상처는 더 커져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멈추고 절을 찾아 슬비를 위한 기도 하러 다닐까 고민 중이다. 우선 49재에 108배를 해야겠다. 108배를 하면서 간절한 염원을 담아 슬비를 위해 기도한 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22/08/23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가슴에 새긴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대부분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아이가 하나던 둘이던 그 이상이던 그 마음이 같더라. 슬픈 마음을 공유하는 카페에 슬비를 위해 만든 포토북을 이야기했다.

대부분 사진첩, 포토북을 만들었다. 그래놓고는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둔다. 사진과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단다. 사실 나도 지금은 펼쳐볼 자신이 없다. 대부분 납골당에 데려다 놨다. 그리곤 집으로 데려올 걸 하고 후회한다. 나는 처음부터 슬비를 데려오려 했지만 슬비 친구들을 위해 우선은 조금 먼 곳인 대구에 데려다 놨다.


매일매일 후회하고 있다. 차라리 그냥 포항에 데려올걸... 그냥 집으로 데려올걸... 그나마 다행인 건 슬비 옆에 외할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 공통적인 것 중 하나는 부모조차 우리 마음을 이해 못 한다는 것이다. 이건 겪어보지 않고서는 정말 조금도 알 수 없다. 알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미 겪은 우리 외엔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생살을 도려낸들 이보다 더할까? 그건 아물기라도 하지...


다들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며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 남은 가족이 있으니 그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나도 시골로 들어가 농사지으며 조용히 살면서 슬비와 재회를 기다리려 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슬비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슬비를 쓰다듬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허전함과 공허함에 눈물을 흘린다.


이젠 돌이킬 수 없기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나에게서 슬비를 데려갈 수 있을까?


우리 슬비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데...


우리 슬비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데...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왜 그랬어야 하는 걸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keyword
이전 11화어둠 속을 헤매다 길을 잃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