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을 헤매다 길을 잃었다 6

어두운 터널 속에서 뒤죽박죽으로 기록된 일상들

by 슬비아빠

22. 08. 24

그리움이란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생기는 것이다. 그리움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그렇기에 점점 더 슬퍼지는 것이다. 잊을 수 없고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인한 그리움은 더욱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 어떤 위로와 치료제로도 극복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다. 자식이란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리라. 아픔을 이해한다는 말은 그들의 상상일 뿐이다. 부모 된 입장으로 어렴풋이 짐작정도는 할 수 있으되 이해하진 못한다.


오늘은 슬비의 49재였다. 종교는 없지만 불교에 가깝고 친숙하기에 49재라는 의식을 했다. 따로 제를 올리지는 않았고 우리만의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슬비를 위해 108배를 하기로 했고 오늘 부처님께 슬비의 극락왕생을 부탁드리며 108배를 마쳤다. 슬비의 친구들도 함께 108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별것 아니지만 그 아이들에겐 도전이고 나름의 성취감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슬비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108배를 하는 동안 슬비의 극락왕생을 빌었고 슬비의 윤회를 빌었다. 슬비가 환생하게 된다면 우리보다 훨씬 훌륭한 부모를 만나길 빌었고 무한히 행복하길 빌었다. 108배를 하는 동안은 힘든 줄을 몰랐다. 중간중간 슬비가 옆에서 기분이 좋아 뛰어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겠지.


슬비의 친구들도 끝까지 108배를 마쳤다. 참 고마운 일이다. 아이들도 108배를 하는 동안은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래도 다리가 많이 아팠으리라. 오늘은 슬비의 두 친구들이 딸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덜 슬펐고 덜 울었다. 아무래도 오늘만큼은 슬비의 빈자리를 채워준 것 같다. 우리 슬비가 지켜보면서 아빠를 위해 그렇게 해줬나 보다. 하지만 내 옆은 언제나 슬비의 자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슬비의 친구들에게 갓바위 이야기를 했다. 내년이 고3이니 수능기도를 하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슬비와 함께 오르고 싶었는데 나의 개인적인 욕심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주고 싶었다. 아이들도 꼭 가고 싶다고 했고 조만간 함께 갓바위를 오르기로 했다. 언제 일진 모르지만...


하루하루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나아지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슬비가 없기에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처럼 슬비를 생각하며 울고 싶을 때마다 글을 쓰고 슬비의 사진을 보면서 또 울면 된다. 매일 출근해서 차 안에서 천수경을 들으며 한참을 울다가 들어간다. 퇴근하면서도 운다. 내가 슬비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깊이 애도하고 깊이 슬퍼하고 깊이 생각하는 이런 것뿐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22/08/31

비가 오니 슬비가 슬퍼서 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 슬퍼해주고 대신 울어줬다. 슬비 친구들도 매일같이 슬비를 기억해 준다.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가장 슬픈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그 슬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모진 세상 모진 풍파를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었건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에게서 사랑, 희망, 가치, 신념, 의지를 한꺼번에 가져가 버렸다. 남은 것은 몸뚱어리뿐이다.


어제는 슬픈 날...

오늘은 슬픈 날...

내일도 슬픈 날...

내 신체의 삶은 계속되겠지만...

내 마음의 삶은 계속되지 않는다...

내 희망의 삶은 멈추었고

내 의지의 삶은 끝나버렸고

내 가치의 삶은 흩어져 버렸다.



22/09/13

고2가 되어도 눈만 마주치면 아이고 내 새끼 하면서 안아주고 쓰다듬어 줬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고 이뻐해 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금지옥엽이었고 나의 모든 것이었다. 지금은 절을 찾아다니면서 108배 기도를 하면서 슬비가 행복하길 빌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기를 빈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항상 우리같이 못난 부모 만나지 말고 훌륭한 부모를 만나길 기원한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 그렇게 사랑해 주었고 어느 가정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로서 슬비를 지켜주지 못했고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 생에라도 슬비를 만나고 싶지만 그러지 않기를 빌고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삶에서 가장 혹독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가 이런 형벌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진 못하지만 하루하루 벌 받는 마음으로 속죄하며 살아가고 있다.


청소년에게 필요하지 않은 주사를 맞게 한 인간들은 호의호식하고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아무런 잘못도 없는 피해자인 우리들은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고 있다. 문가놈, 질병청, 교육부 모두 때려죽여도 시원찮은 인간들이다. 수십만의 경증, 수만의 중증, 수천의 사망...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들은 자화자찬에 훈장까지 주고받은 인간들을 모두 끌어내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 과연 힘없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냐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이다.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하고 눈만 감으면 생각나는 슬비의 모습들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 형벌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지만 그날이 언제 올진 모른다.


그날까지 싸우리라.



22/09/13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과부'

부인이 세상을 떠나면 '홀아비'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고아'

자식이 세상을 떠나면?

그 고통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노라니 이 모든 슬픔과 안타까움을 고스란히 가슴에 새기고 버텨내어 마지막 그날에 함께하여 기뻤노라 감사했노라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하이... 지금은 그저 미안했노라 부족했노라 이야기할 수밖에 없음에 절규하고 고통에 찬 날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참척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큰 형벌인지 겪지 않으면 모를지니... 가슴속 불구덩이에 한 줌 재가되는 삶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리라...


자식 잃은 고통을 표현할 단어조차 없음에 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조차 하지 못함을 어찌 헤아리리오. 살아도 산 삶이 아니니 이를 어찌하리까? 이처럼 막막했던 적이 있을까? 한순간 전재산을 날렸을 때에도 희망은 있었을진대... 이젠 그 희망마저 사라졌으니...


어찌 살아가리까?



22/09/14

우리 슬비에겐 항상 애칭이 있었다. 돌이 지나고 말을 배울 때는 항상 강아지라 불렀다. 우리 슬비는 성이 강이고 이름이 아지라 생각했다. 항상 아지가 할래... 아지 거야...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치원을 다닐 때는 똥강아지라 불렀다. 유치원 때는 본명이 아닌 이슬비로 등록을 했기에 원장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은 슬비 장례식에서 슬비의 본명이 선주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하셨다.


슬비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슬비를 똥쉥이라 불렀다. 똥쉥똥쉥 그렇게 불렀는데 하루는 나에게


"아빠 똥쉥이가 무슨 뜻이야?" 하길래


"강아지를 다른 말로 새끼 개라고 하잖아? 우리 똥강아지~그걸 빨리 말하면 똥쉥이가 되는 거야~"라고 했더니 너무 좋다고 했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물으면 항상


"아빠 똥쉥이~~"하고 대답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는 그것마저 줄여 "똥똥~"하고 불렀다. 나는 우리 슬비를 부를 때 항상 야 인마 똥똥~ 또는 이놈의새끼 똥똥~하고 불렀다. 그럴 때마다 우리 슬비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아빠를 안아주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이쁜 것~~ 이렇게 이쁜 게 어디서 왔을까?" 하면서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나도 슬비도 그때만큼은 진심으로 꼬~옥 안아주었다.


한 줌 재가된 슬비이기에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다. 아무리 울고 아무리 슬퍼해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고 슬비를 위해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하겠지만...


우리 강아지...


우리 똥강아지...


우리 똥쉥이...


우리 똥똥을 위해 싸울 것이다.



22/09/16

우리 슬비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가고 싶어 했다. 원래는 법학과를 가고 싶어 했는데 로스쿨이 생기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어느 날 슬비가 기숙사에서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했다.


슬비 : "아빠! 큰일 났어~"

아빠 : "왜? 무슨 일 있어?"

슬비 : "이대 법학과가 없어졌대!"


그러고는 슬비가 목표를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학교에서 귀가한날 새로운 목표를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정치외교학과를 추천해 줬다. 슬비는 글도 곧잘 쓰고 말도 잘하는 아이였기에 정치인이나 메이저 언론사 기자가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해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외과가 뭐 하는 덴지 알아나 봐~"라고 했고 얼마 뒤 수신자부담으로 전화가 와서는


"아빠! 나 이대 정외과 갈 거야~그래서 외교관 할 거야~"라고 했다.


진로나 공부 관련해서는 항상 아빠와 이야기했고 대부분 아빠가 이야기하는 쪽으로 결정을 해줬다. 이번엔 아빠의 생각과는 다르게 외교관이 되겠다고 했다. 우리 슬비는 아빠의 조언대로 정외과가 어떤 공부를 하는 곳인지 스스로 알아보고 스스로 진로를 결정했다. 외고를 진학할 때 중국어과를 추천해 줬을 때도 처음엔 영어과 아니면 싫다고 했지만 결국 중국어과에 지원을 했고 나중에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슬비의 휴대폰 배경화면은 이대가 나와있는 지하철역 사진이다. 엄마아빠 몰래 서울 가서 직접 찍은 사진이었다. 형편상 학원을 못 보내줬는데 슬비는 이대 언니들과 멘토멘티를 맺고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우리는 슬비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저축을 하고 있었고 우리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슬비가 대학을 졸업하면 우리도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5년만 더 고생하자고 이야기했었다.


슬비의 꿈, 우리의 꿈...


그 모든 것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릴 줄은 아주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 슬비가 자신의 꿈을 스스로 이룰 수 있도록 조언하는 역할 뿐이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너무 소중한 일이었고 그 순간순간이 나에게는 너무너무 기쁜 일이었다. 이제 그런 꿈들을 꿀 수 없고 그런 희망들이 사라져 버렸기에 삶의 의미가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에겐 새로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슬비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나타났고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했다. 슬비와 함께한 시간들은 '행복'이란 단어로 채워져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속은 사랑으로 채워졌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으로 채워졌다. 이제 우리에겐 사랑과 행복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절망과 슬픔으로 채워졌고 그 어떤 것으로도 비워낼 수 없게 됐다.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슬비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참척의 고통은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참척의 고통을 알아서는 안된다.


그것을 이해하거나 알게 되는 순간부터 살아도 산 것이 아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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