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 한다.'던 그분을 떠올리며
주기적으로 우편함을 확인한다. 이번엔 쌓인 광고지속에 두툼한 우편물이 하나 보였다. '교육위원회'라는 발신명에서, 행위가 수반되는 업무일 것을 예감하고 (귀찮음에) 그게 뭐든 오늘 해야 할 일은 아니겠지 생각하며 개봉을 미뤘다. 밤이 되었고, 더는 미룰 수 없자 봉투를 개봉했다.
우선 '小学校(초등학교)'라는 단어가 들어온다. 공부하겠다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1차로 장비의 도움 없이 통신문을 눈으로 훑으며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2차로 파X고 번역기를 돌려 세부사항을 확인했다. (크게 배움에 도움이 되는 행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하고 있다.) 내용은 내년 4월 초등학교 입학예정인 아이들은 취학 전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일본은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
이어서 건강검진 시 작성해 지참해야 하는 서류가 동봉되어 있는데, 주소 전화번호 등의 인적사항을 적다가 예방접종 기록에서 곧 머리가 복잡해졌다. 태어날 때부터 이제까지의 아이 예방접종 기록을 적어야 하는데, 기록이 담긴 수첩이 있었다면 수월했을 일이지만 없었다. 개인적으로 즐겨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산모수첩'이 없었다. 일본에 오면서 짐들을 정리하며,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방법을 고민하다 사촌동생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해결책을 찾았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도우미사이트'에는 대상아동의 모든 예방접종 기록과 접종일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또한, 다른 나라의 상황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의 필수 예방접종 리스트는 동일했다. 번역기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한국의 예방접종 기록을 일본과 대조해 접종일을 찾아낼 수 있었고, 막막했던 서류의 빈칸들이 채워지며 1차 관문을 넘겼다.
다음 관문은 신체검사였다. 초등학교 입학 대상 아동은 취학 전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장소를 확인하니 개별적으로 찾아가기 어려울 것 같아 택시를 섭외했다. 신체검사 시간에 맞추느라, 평소보다 유치원을 일찍 하원시킨 뒤 아이와 함께 신체검사 장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곳곳에 안면이 있는 같은 유치원의 친구들이 보였다. 새로운 생활이겠지만, 같은 유치원의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부모님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검사가 진행되는 곳으로 이동했다.
넓은 강당을 칸막이로 나눠 분야별 신체검사를 진행하는 모습은, 한국의 학창 시절이나 군대에서 받던 신체검사 장소와 분위기가 흡사했다. 이곳에 있다 보면 종종 새롭거나 낯선 감정을 느끼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날의 풍경도 내겐 어딘가 익숙했다. 검사 항목은 총 세 가지. 안과, 치과, 내과였고 각각의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앉아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준비를 무척 체계적으로 한다고 생각했으나 검사는 간단했다. 해당 부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을 점검한 뒤 즉 시력은 괜찮은지, 치아에 이상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청진기로 심박동을 확인하며 끝났다. 서류를 작성하고, 지도에서 검사장을 찾아보고, 긴장하던 시간이 무색하게 신체검사를 수월하게 마쳤다.
일본 초등학교 입학 절차들이 복잡하게 느껴지던 시간 동안 왠지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살아계실 때 종종 말씀하셨다. "알아야 면장 하지."라고. 찾아보니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려면 그것에 관련된 학식이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한다. 아이를 초등학교를 보낼 준비를 하는 일조차 내게는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져 뭘 알아야 학교에 보내겠다며 떠올리던 생각이었다. 천천히 보이는 안내에 따라 조금씩 가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란도셀 구매'에 이어 '건강검진'을 받으며 일본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또 한 관문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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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도셀 구매 관련 글은 이곳에 있습니다.)
맑은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놀이터를 발견하고 차에서 내려 맑은 날을 즐기다 돌아왔다. 집에 오니, 일본 친구가 잘 들어갔냐는 문자와 함께 입학식 관련 팁을 건넨다. 조금 이른 이야기지만, 3월 유치원 졸업식과 4월 초등학교 입학식에 남자아이는 정장(スーツ, 슈트)이 필요하다는 문자였다. 졸업식이나 입학식에 여자 아이들은 원피스를 입거나 기모노를 입는 경우도 있고,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슈트차림으로 참석한다며 아이의 입학식 사진을 보내주었다. 곧 1월이 되면 가게에서 입학식용 의상을 팔기 시작할 텐데 사이즈가 금방 없어지니 서둘러서 구비하는 게 좋을 거라는 아이 셋 키우는 일본 친구의 현실적 조언이 담긴 문자였다.
일본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이 여정에 강력한 조력자가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가 복잡하다는 나의 말에 일본 친구가 둘째 아이가 입학하던 당시 받은 자료 좀 찾아보겠다고 해서 그렇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곧 우편함에 들어있는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표지를 보며 단순 카피본일 것이라 여긴 그 자료 안에는 매 페이지마다 꼼꼼한 설명이 덧붙여 있었고, 친구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나를 위한 맞춤 자료였다. 그 온기에 나는 좀 울컥해졌다. 애 셋 키우느라 바쁜 시간을 쪼개 나를 위해 체계적으로 자료를 만들어 주었을 친구의 진심이 가득 담긴 자료와 그 마음에 힘입어 나는 가끔 헤맬지라도 일본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 확신했다. 나의 예상을 뛰어넘고 뛰어넘고 몇 차례나 뛰어넘는 친구의 마음씀씀이와 꼼꼼함,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의 존재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엄마에게도 친구의 마음씀씀이를 알려주기 위해, 자료를 보여드렸더니 말씀하신다. 감동은 무척 감동이지만 "(자료) 못 읽어서 (학교) 못 보내겠다"라고. 역시 나는. 엄마딸이 맞다.
다시, 덧. 아이가 유치원에서 공부하는 자료에도 초등학교 생활에 관한 안내가 등장하고 있다. 급식 메뉴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모습과도 흡사한 부분이 있어 기시감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마음에 관하여.
글을 쓸 때면 내가 지금 쓰는 이 글이 가장 재미있고 의미 있다는 마음으로 써야 하는데 종종 자신감을 상실한다. 알찬 내용이 담겨있을까? 빈약한 건 아닐까? 누가 이 글을 좋아해 줄까? 등의 생각으로 나는 여러 번 흔들린다. 내 글에 담겨있지 않은 내용이 담긴 다른 사람의 글이 좋아 보인다. 그럼에도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글이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자는 생각으로 열정을 불러와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감사하게도 '일본 초등학교 입학'에 관한 방향으로 안테나를 열자 이곳저곳에 있었을 관련 정보이 눈에 띄었다. 그 정보들은 집에 있는 책에도 있었고, 우편함에 담겨있기까지 하며 속속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것들을 예쁘게 엮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엮어 보았다. 그 마음으로 이 글을 엮어, 읽는 분들께도 유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설렘을 담아 내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