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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후쿠오카

어디에 나를 놓을 것인가.

by 수진

이른 무더위가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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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지난 주말에는 올해 첫 물놀이를 시작했다. 야외 풀장이라 작년에는 훨씬 늦게 개장했는데, 올해는 7월 1일부로 개장했고 이미 사람이 많았다.

함께 튜브를 타고 유수(流水) 풀을 다니던 시간, 아이는 많이 행복해했다. 볕이 따가웠지만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요맘때(만 7세)의 아이 곁에서 누릴 수 있는 사치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이아이는 오래지 않아 이곳에 안 올 테고, 나 역시 아이가 아니면 올 이유가 없을 테니깐. 이제는 하루하루 시간의 유한함이 와닿는다.

놀다 보니 남편이 종종 보는 채널의 유튜버가 등장했다. (꾸밈없는 일상을 주로 다루는 분인데 구독자층이 제법 두텁다. 남편은 이럴 때 결코 알은체 하는 유형이 아니다.) 친분은 전혀 없고 인사조차 안 했지만, '아는 얼굴'이라 인식을 해버리자 많은 사람들 틈에서 자꾸 그 유튜버 가족과 동선이 겹쳤다. ㅋ

후끈거리는 얼굴로 저녁에는 영상을 촬영했다. '결혼식 축사'라는 감사한 제안에 응하지 못했는데,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줄 수 있냐는 주인공의 부탁에... 너무 귀한 자리이기 때문에. 악조건(민망함, 실력부족)을 무릅쓰고 찍었다. 이제껏 써본 적 없는 축사를 며칠간 고심해서 썼지만, 더 큰 산은 촬영이었다. 좀 더 화사하게 나오고 싶다는 요청에 남편이 아이 책상에 있는 스탠드까지 동원해서 아주 살짝 효과는 있었으나... 시선처리, 화면구도, 배경음악 크기, 어투.... 신경 쓸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두 시간 동안 촬영해서 4분짜리 영상을 간신히 만들어 냈으나, 너그럽게 봐도 공식석상에서 상영할 퀄리티가 아니었다. 미안함을 담아 혼자만 간직해도 된다는 당부(진심)와 함께 친구에게 보냈고, 영상은 그렇게 나를 대신해 한국으로 떠났다. 만약 심의(?)를 통과해도, 내가 없을 때 상영될 테니 다행이다.

KakaoTalk_20250707_141012896.jpg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빠르게 찾아온 무더위를 피해 이따금 저녁 산책에 나서고 있다. 같은 생각인지 20:00시경 소방관들은 한창 야외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런 더위에 야외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소방관분들 진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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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서는 친해지고 싶었던 이웃을 만났다. 마음은 통하기 마련, 뜻밖에 만난 그분과 한동안 대화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가끔 아이 덕분에 나의 세계가 넓어진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하나는 이런 경우이다. 서로의 아이가 또래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친분이 생기는 일. 적극성이 많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아이 덕분에 생생한 일본 문화도 알아가고, 아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어서 무척 감사한 부분이다.

친구가 생겨 기뻤던 한편, 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읽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이 몰고 오는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매력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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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과 한국어 강의실.

시간을 내어 친구가 추천해 준 체육관에도 다녀왔다. 시(市)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시설이 깔끔했다. 지역별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까지 일본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은 일본은 나라, 시, 지자체 등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이 진입장벽도 낮고 퀄리티가 좋다는 사실이다. 이용요금은 지역 내 거주 유무에 따라 다르지만 애초에 낮게 책정되어 있어 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 한국어 강의도 교류센터(交流センター)라는 곳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시설 이용 만족도가 높다.


최근 머물던 잔잔한 일상을 돌아보았다. 후쿠오카는 무척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지만 결코 정(靜) 정적인 도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후쿠오카'는 대체로 고요하고 잔잔하다. 때로는 단조롭게 여겨지지만 나의 어느 부분과는 케미가 잘 맞는 공간. 이곳에 머무는 시간 계속 계속 그렇게 나의 후쿠오카를 찾아가고 싶다. 물론 고요하고 잔잔한 곳에 머문다 해도 내면의 파도가 잠잠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 나를 놓을 것인가." 요즘 나의 큰 화두는 이것이다. 시간의 유한함과도 연결된,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 질문을 한동안 곱씹을 것 같다.

'비 오는 날 아침에 글을 쓰면, 왜 그런지 비 오는 아침과 같은 느낌의 글이 되어 버린다. 나중에 아무리 손을 봐도 그 글에서 아침 비의 내음을 지우기는 어렵다. 양들이 모조리 사라진 쓸쓸한 방목지에 소리 없이 내리는 비의 내음. 산을 넘어가는 낡은 트럭을 적시는 비의 내음. 내 글은 그런 비 오는 날 아침의 내음으로 가득 차 있다. 반은 숙명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이 와중에 하루키의 윗 문장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이곳에서 쓴 나의 글에는 어떤 내음이 스며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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