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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이세무사 Oct 02. 2023

2천만 원짜리 점심 (해외현지법인명세서)

술술이세무사

"술술이 세무사님, 00 세무서에서 전화 왔는데요?"


"00 세무서요??"



세무서 전화는 좋은 일인 경우가 희박하기에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간이 콩알만 하고, 경험도 부족해서 그렇겠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극복이 될 줄 알았는데,

수십 년 경력의 훌륭한 세무사님도 세무서 전화에는 깜짝깜짝 놀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는 세무사들의 직업병이라는 생각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일까?'


오만가지 생각과 함께 전화를 당겨받았다.



“안녕하세요 술술이 세무사입니다.”


”안녕하세요 00 세무서 법인세과 000 조사관입니다. 주식회사 000 담당하시죠?"


"네, 제가 맡고 있습니다."


"20XX 년 법인세 신고 자료 중에 '해외현지법인명세서'가 제출이 안된 것으로 확인이 되네요?"



주식회사 000, '해외현지법인명세서'

몇 년 전 일이라 어렴풋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어서 제출을 못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아, 그런가요? 확인을 좀 해보겠습니다. 혹시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해외현지법인명세서' 미제출 시에는 과태료가 있습니다."


"과태료 금액이 얼마나 될까요?"


“그게.. 잠시만요."



'해외현지법인명세서'의 과태료 금액은 미제출 서류 건별 1천만 원으로 그 무시무시함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짐짓 모른 체하며 과태료 금액을 문의하였다.

과태료가 납세자의 의무대비 너무 크다 보니 담당자에게도 금액의 과함을 인지시키고 혹여 미제출이 맞더라도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천만 원이네요."


“1천만 원이요??!”


“미제출에 대한 사유가 있으면 반영할 수 있으니까 내용을 좀 확인해 보시겠어요?”


“아이고.. 1천만 원은 너무 큰데요?”


“이게 꼭 부과되는 것은 아니고.. 일단 잘 검토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해외현지법인명세서

해외에 단 1주라도 직접투자(은행, 증권사를 통한 간접투자는 제외)를 한 내국법인(거주자)

해외현지법인명, 국가, 투자일, 출자금액, 지분율 등 투자 관련 내용을 정리한 '해외현지법인명세서'를 과세기간 또는 사업연도 종료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6개월 내(일반적으로 6월 말)에 세무서에 제출해야 한다.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 제58조)


제출하는 서류의 양은 한 장 내지는 두, 세 장에 불과하지만 역외탈세 방지 등을 위해 미제출 시 과태료는 아래 서류 건별 1천만 원 (개인의 경우 500만 원)에 이르며 부과한도는 5천만 원이다.


1) 해외현지법인 명세서 (1주라도 해외직접 투자 시 제출)

2) 해외현지법인 재무상황표

 (투자금액이 1억 원 and 지분율 10% 이상 또는 지분율 10% 이상 직. 간접 투자하며 특수관계가 있는 경우)

3) 손실거래명세서

4) 해외영업소 설치 현황표


지면상 더 기재는 어렵지만 미제출 시 500만 과태료가 부과되는 '국제거래명세서'라는 서류도 있습니다.




전화를 끊고 법인세 신고자료를 확인해 보니


1. 당초 법인세 신고 시 '해외현지법인명세서'는 미제출된 것이 맞았다.


2. 주식회사 000은 해외직접투자신고(100% 자회사)를 하였다. ('해외현지법인고유번호' 발급)

-지분율 100%로 특수관계가 성립하여 '해외현지법인 재무상황표' 또한 제출대상으로 확인됨


3. 그러나 코로나 등으로 출국이 어려워지자 투자금 송금은 하지 않았다. (영업 미개시)


4. 투자금은 이듬해 송금되어 그 이후로는 꾸준히 '해외현지법인명세서' 등 서류를 제출하였다.


결론

'해외현지법인명세서' 및 '해외현지법인 재무상황표' 미제출로 2천만 원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는 상황.



입에 담기조차 무서운 금액 2천만 원

머리가 지끈지끈거려 온다..


다만, 앞서 담당자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 세무서 입장에서도 2천만 원에 이르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과태료를 무분별하게 부과하는 것은 무지한 납세자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기도 하고 성실한 신고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계도하는 것 또한 국세청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해외로 송금된 금액이 0원이니 영업이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했고,

해당연도의 '해외현지법인명세서'와 '해외현지법인 재무상황표'를 작성했더라도 자본금이 없어 재무상태표나 손익계산서,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에 기재할 금액은 없으니 세무서 입장에서도 제출의 실익이 없을 것이다


송금액이 없으니 역외탈세방지라는 법령 취지에도 반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같은 국제적인 천재지변, 말 그대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래 과태료 면제사유(제5호)에 해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걸어본다.




과태료가 면제되는 사유 (국세조세조정에관한법률 시행령 제97조 제3항)

1. 신고의무자가 화재ㆍ재난 및 도난 등의 사유로 자료를 제출할 수 없는 경우
2. 신고의무자가 사업이 중대한 위기에 처하여 자료를 제출하기 매우 곤란한 경우
3. 관련 장부ㆍ서류가 권한 있는 기관에 압수되거나 영치된 경우
4. 자료의 수집ㆍ작성에 상당한 기간이 걸려 기한까지 자료를 제출할 수 없는 경우
5. 제1호부터 제4호까지의 규정에 따른 사유와 유사한 사유가 있어 기한까지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내겐 세무일을 하며 생긴 지론이 있다.

배움에는 돈이 따른다.


앞으로 1~2억이 나갈지도 모를 일을 2천만 원으로 막을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인가


'2천만 원이면 싸게 배웠다.'


이렇게 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배웠다고 마음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말이야 쉽지 참 어려운 일이긴 하다..)

운이 좋으면 2천만 원짜리 가르침을 공짜로 얻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럼 차분해진 마음으로 정리를 시작해 보자.


1. 먼저 미제출한 '해외현지법인명세서' 및 '재무상황표'작성하고


2. 외국환은행에 제출한 해외직접투자신고서 및 이듬해 투자송금확인첨부했다.


3. 마지막으로 미제출에 대한 사유서를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사유서에는

해외직접투자는 사전신고가 원칙으로 투자신고를 먼저 하였으나

이후 코로나 등 통제불가능한 변수가 발생하여 국제교류에 큰 어려움 생기다 보니 해당연도에 해외법인설립이 불확실해졌고

이로 인해 투자금 송금이 이루어지지 않아 영업이 미개시되는 등 해당연도에는 투자신고 외에 사실상 해외현지법인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인 상황인 을 기재하였다. 또한 정상참작을 바라며 투자금 송금이 이루어진 다음연도부터는 꾸준히 '해외현지법인명세서' 등 관련서류 제출이 이루어진 점을 추가했다.






"세무사님 일 다 끝나셨으면, 식사 가시죠?"



오전 내내 진행한 서류준비가 마무리되니 시계는 점심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를 너무 굴린 탓일까? 칼로리 소모가 컸는지 상당히 배가 고팠다.

00 세무서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남짓

직원들과 든든하게 백반 한 끼 하고 세무서로 출발하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은데..


뭐랄까


점심먹는데 시간을 기면 간절함이 퇴색될 것 같은, 행운이 사라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1분 1초라도 빨리 담당자를 만나 얼굴을 보고 직접 자료를 건네고 싶다.



"점심은 먼저 드세요, 저는 00 세무서 갔다 오겠습니다."



서류가방을 들고 사무실 문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팩스나 메일로 주셔도 되는데 직접 오셨네요?"



00 세무서 법인세과 상담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신사분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조사관님. 과태료 금액 듣고 너무 놀라서 직접 뵙고 전달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그렇죠? 그게 금액이 참..."


"그때 당시 코로나로 인해 투자신고만 하고 송금은 안 했던 모양이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서류를 미제출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그때 코로나가 심하긴 했죠? 출국도 안되고. 다행히 그 이후로 해외 관련 서류는 다 제출하셨더라고요."


"네 맞습니다."


"내용 확인하고 이상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모네의 '푸르빌의 절벽 산책로'가 눈앞에 보이듯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대화가 끝이 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글서글한 인상만큼 배려심 깊은 좋은 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무엇인가를 장담하기는 이른 상황이지만 조그맣게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점심 안 먹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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