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술술이세무사 Dec 19. 2023

세무사 무료 기장

세무사의 하루

"기본 3개월 무료라고 하는데 여기는 어떤가요?"



내담자의 말이 끝나자 술술이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저희는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종이 한 장 안 들어갈 빽빽함이 느껴지는 말투



"그래요?? 다들 그렇다는데 여기는 좀 다른 모양이네요?"


술술이의 단호한 말투에 살짝 당황해 보이는 내담자.

분위기 전환을 위해 바로 대화가 이어지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술술이의 입은 닫혀있었다.



"..."


"그러면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새해 달력이 나와서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술술이고이 챙겨 온 새해 달력을 탁자에 올려두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터벅터벅


물 건너간 기장계약 때문일까? 질질 끌리는 발걸음에서 힘없음이 느껴진다.


'X개월 무료입니다. 그 말 한마디면 되었을 것을..'


사실 술술이는 아침 10시에 출발해 대중교통을 갈아타며 1시간이 걸려 약속장소에 도착,

내담자를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1시간 가까이 상담을 진행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담 말미에 내담자의 요구에 맞춰 '무료' 한 단어만 말했으면 계약이 성사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무료'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술술이에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고지식한 녀석..'


버스정류장에 앉아 몇 대의 버스를 보내도록 술술이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가진 것이라곤 책상 2개, 컴퓨터 하나뿐이지만

자신이 하는 일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생각하는 술술이.

그래서 돈보다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그 일을 '무료'로 광고하고 있는 현실을 맞닥뜨리니 지켜온 가치관이 흔들리는 괴로움을 느꼈다..


돈 안 되는 자존심을 지킨 기쁨보다

앞으로 살아갈 험난한 세상이 더 걱정되는 술술이었다.




후기


마트에 가서 '앞으로 계속 과자를 살 테니 3개까지는 공짜로 주세요.'라고 하지 않듯

세무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전문자격과 책임을 갖고 제공하는 서비스인데 으레 무료이겠거니 생각하는 사장님의 모습에 저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무료 세무사'


저 자리에서 'ok'를 했다면 그분은 '세무는 당연히 몇 개월 무료구나.' 생각했겠죠?

하지만 제가 겪어본 세무라는 것은 몇 개월 무료를 기준으로 경쟁을 할 만큼 가벼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느 때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려있을 만큼 무섭기도

어떨 때는 주룩 눈물이 흐를 만큼 감동을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차라리 입을 닫는 선택을 했었네요.


그 이후로도 가격을 내세워 저를 광고하거나 사업의 미끼로 사용한 적은 없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는 저답게 살아가렵니다.


이전 11화 세무사 강의 요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